-전략, 사랑하는 카에데.
파파는 슈테른빌트에서 오늘도 힘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랑 놀러간 바다는 즐거워보여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보내는 엽서인데 파파 걱정만 가득해서야 모처럼의 여행이 즐겁지 않잖아. 걱정말고 놀고 오세요. 일도 힘들지 않고(위험하지도 않고)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뭐니해도 좋은 파트너가 있으니까.
그리고 식생활에 대해서는 정말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원래도 파파 잘 챙겨먹었다구? '어차피 또 볶음밥같은 것만 해먹고 있지? 파파 어차피 그런 거 안 챙긴다고 할머니도 걱정하셨는걸, 인스턴트 같은 거 안되니까-'라고 야무지게 걱정해준 우리 카에데쨩, 걱정 마. 파파는 매일 맛있는 거 먹고 있습니다. 진짜야. 그도 그럴게-
...그, 뭐랄까.
<아침은 같이 먹어요 코테츠 상>
-카에데의 (전) 왕자님, 현 슈테른빌트의 숨겨진 인기 히어로 넘버원인 바니쨩이 그렇게 말해줬을 때는 솔직하게 기뻤다구? 조심조심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했을 때는 귀여워서 얼른 고개를 끄덕여버렸을 정도로. 아무튼간에 2부 히어로는 1부 히어로에 비해 일도 내용도 소박한 만큼 시간도 여유로우니까, 바나비는 그 시간을 맹렬하게 요리공부에 쏟아부었던 모양이라서. 넵, 원래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열정을 가진 쪽, BBJ입니다. 처음 몇 번인가는 실패작을 만들고 아쉬워하고 (깨끗히 다 먹었지만) 영광의 상처를 얻으면서 고전을 거듭하더니(치료는 파파가 해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저씨 볶음밥의 레벨을 아득히 추월해버렸습니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근데 그, 뭐랄까. 문제는.
"여기요 코테츠상, 아침은 가볍게 옥수수 스프에요. 맏물 옥수수를 싸게 샀어요. 루는 제 취향대로 볶았어요. 코테츠 상은 진한 쪽이 좋다고했지만 아침은 조금 수분기가 있는 편이 나을 것같아서. 아, 미트로프는 닭고기로 만든 거에요. 그쪽은 시저 샐러드- 어차피 그냥 샐러드는 풀이라고 어색해할 거잖아요? 빵은 허니 토스트에 스콘이에요. 디저트는 블루베리 요거트, 과일은 아보카도에 오렌지와 딸기. 마실 건 오렌지 주스, 우유랑 탄산수, 카페오레와 블랙 원두커피."
"...헤에. 가,가볍네."
"필요하면 올리브 오일이랑 오리엔탈풍 소스도 있으니까요. 아, 코티지 치즈하고 마스카르포네 치즈도."
...거진 뷔페 레벨이 되어있지 않아? 바니쨩?
“가볍게 차렸으니까요”
...그런 얼굴로 웃으셔도.
저 우아한 소개문과 함께 차려진 식탁이라고 치자면, 하나같이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홈페이지 소개 코너에 올릴 수 있을 것같이 정성들인 세팅이었습니다, 카에데 쨩에게도 먹여주고 싶었어. 레스토랑에서도 안나올 것같은 섬세한 세팅에 식기는 죄다 안티크, 음식은 모조리 수제. (블루베리 요거트에 이르면, 심각한 얼굴로 요거트 제조기와 블루베리 농장(직매가능처)를 찾고 있었던 걸 본 기억있음) 덧붙여 접객 대회에 나간다면 손끝만 까딱거려도 여자 손님들이 일제히 만점을 줄 것같은 왕자님 스마일이었습니다.
-넵, 아무래도 가볍게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쪽, BBJ인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엄청나네.. 바니쨩.“
“이베리코 햄도 주문해놨는데 아직 도착을 안해서.”
“이베리?”
“그런 거 있어요. 드시죠, 어쨌든”
“헤에, 난 마-"
"마요네즈는 금지."
"에엑"
"모처럼 공들여서 만든 거니까 맛 해치지 말고 먹어주세요. 정 먹고 싶으면 다음에 신선한 계란을 사와서 만들어드릴테니까"
마요네즈를 먹고 싶다는 말에 왜 계란에서부터 공수해온다는 걸까요. 파파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카에데쨩. 덧붙여 물을 용기도 없습니다. 세상 다시 없이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짓고있는 파트너에게 찬물을 끼얹는 짓은 할 게 못되는 거잖아. 아무렴, 딱히 답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진실은 파내기보다 묻어두기를 택하는 편인 남자, 코테츠입니다. 아 타이가입니다.
"...와아- 아저씨 엄청 호강이야-"
"어째 불만이 많아보이는데 기분탓인가요."
"아,아니 딱히 불만이랄건 없는데 이런 거 익숙하질 않아서.. 난 좀더 평범한게-"
"그러면 내일은 볶음밥으로 할까요? 코테츠상이 좋아하는 걸로, 새우넣어서. 중화풍 소스 만드는 법도 배우고 있으니까요."
"아저씨가 만들어주던 건 시판용 굴소스 사용이었는데, 바니쨩"
"그건 그것대로 맛있었어요. 그 보답으로"
“보답의 크기가 안 맞아..”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보석이라도 잘라놓은 것같은 초록빛 눈동자로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건 반칙이야 바니쨩. 기운빠져서 중얼거리는 게 최대한의 저항이라면 저항이지만 영 힘을 쓸수가 없잖아.
"...바니쨩, 너무 나를 오냐오냐해.."
"그런가요?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냐오냐오냐오냐해"
"? 보통이잖아요. 아, 레모네이드도 있어요. 어제 좋은 레몬을 사서"
"오냐오냐오냐오냐.."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남기는 것도 아까울 만큼 (그리고 슈테른빌트의 여성 팬들이라면 분명 부스러기 하나에도 돈을 지불할 만큼) 애정이 듬뿍듬뿍 담긴
아침은 부담스러울만큼 호화로운 대신 솔직하게 맛있었거든. 오물거리는 입을 행복한 듯 바라보는 사람이 눈앞에 앉아있어서야, 남길 수도
없어서. 기껏해야 최선을 다한 저항이라는 건 고작 질문 하나, 반항을 가득담아서.
"..나 엄청 과보호 당하고 있는 거같은데 기분탓이야?"
"기분 탓이에요"
"가끔은 내가 아침 만들어줘도 되는데“
“한창 요리가 즐거울 때니까, 제 즐거움을 뺏지 말아주세요.”
“..여러가지로 바니쨩한테 사육당하고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드는데..""기분 탓이에요"
"어어어엄청 사랑받고 있는 것같은데"
"기분 탓..은 아니네요"
-아, 그런데서만 솔직해지고 치사하게!
"맛있어요?"
"사랑으로 꽉차서 엄청 달달합니다.."
"잘 됐네요"
카에데쨩, 파파는 그렇게 우아하게 이어지는 말에 한번 저항하지도 못하고 스푼을 들었습니다.딱 좋게 데워놓은 토스트를 한입 물고 수프를 뜨자, 그건 정말이지 천상의 맛이어서. 솔직하게 맛있다고 해주었더니 슈테른빌트의 왕자님, 세레브 오브 세레브인 파트너는 세상 다시없이 행복한 얼굴로 웃어줬더래요. 아, 정말이지.
-전략, 사랑하는 카에데,
이래저래 행복살이 찌는 것만이 걱정인 매일, 파파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못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먹어서 걱정입니다. 그리고 또 사실대로 말하면, 요즘 파파의 유일한 고민은 어떻게하면 파파의 볶음밥을 보답으로 먹여줄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면 저녀석, 또 기쁜 듯이 웃어주려나.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