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입니다 .슈테른빌트 전역에 핑크빛 리본과 소녀들의 환성이 남치는 날입니다. 히어로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다들 초콜릿의 달콤한 냄새 아래에서 들떴습니다. 히어로쯤 되고 보면 발렌타인 초콜렛은 받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법. 상큼하게 웃은 스카이하이가 거리 순찰중에 받았다네 고마운 일이야 그리고 고마운 일이야!를 외치며 품안 가득 초콜릿을 안고왔 습니다. 인기 1,2위를 다투는 스카이하이답구나 생각하는 찰나 수레로 실어온 초콜릿이 등 뒤로 따라옵니다. 과연 인기 순위 넘버 원, 두 손에 넘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거군요.
블루로즈도 넘치도록 초콜릿의 물결에 파묻힙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고고한 여왕님포즈로 저런 거 다 못먹으니까, 하고 코웃음을 치던 블루로즈의 귓가는 사실 희미하게 빨개져있습니다. 카리나로 돌아와서도 역시 저렇게 다 못먹어, 말하지만 아투는 귀여운 투정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 아가씨, 받는 것보다 주는 게 걱정입니다. 며칠 전부터 메일친구가된 카에데와 이런저런 디자인이며 재료를 가지고서 상의하기를 며칠. 마음을 담아 만든 수제 초코는 옥션에 올리면 분명 몇천,면만 이상의 슈테른달러로가격이 매겨지겠지만 정작 주고 싶은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아서야.
평범한 걸음으로 바나비가 들어옵니다. 오늘따라 유달리 멋진 남자의 페로몬이 느껴져서 파이어 엠블럼은 무심코 엉덩이를 쓰다듬습니다. 물론 안토니오의 엉덩이입니다. 초콜릿 하나도 없네,하고 귀여운 포장의 초콜릿상자를 한아름 안아든 드래곤 키드가 말을 겁니다. 난처한듯 바나비는 입을 다물지만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트럭 세 대 분쯤 되는 초콜릿이 빌딩 앞에 쌓여있습니다. 정말 곤란하지요. 단거 저렇게나 못 먹습니다. 말투는 덤덤하지만 안토니오는 승리자의 기운을 느끼고 패배감에 고개를 떨굽니다. 과연 KOH를 차지한 남자! 감탄하며 파이어 엠블럼이 다시 엉덩이를 쥡니다. 물론 안토니오의 엉덩이입니다.
다들 히어로인만큼 각자의 개인 사물함에도 팬들로부터 받은 많은 초콜릿이 .쌓여있습니다. 딱 하나, 와일드 타이거의 사물함은 왠지 쓸쓸합니다. 에 이게 다야? 키드가 당황해서 말합니다. 오리가미 사이클론 앞으로도 네 다섯박스 분량은 쌓여있는데 대 여섯개정도가 다입니다. 전 히어로에게 도착한 아니에스의 초콜릿(올해도 더 활약해주지않음 곤란하다는 협박 가득한 문구 첨부) 을 제외하면 팬에게 받은 것은 두세개가 될까말까. 타이가는 남자아이 팬이 많으니까...하고 저도 모르게 블루로즈가 말을 흘렸지만 도무지 위로가 되지않을 것 같아 당황합니다. 이래서야 팬들의 초콜릿 틈에 살짝 넣는다던 계획이 엉망이야..! 정작 코테츠는 아직도 지각중. 어제까지 오리엔탈 타운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오는 휴가를 냈었던 만큼 여행의 노독이 안 풀리는 걸까요.
한편 바나비는 그러면 그렇지하고 기합을 줍니다. 어차피 코테츠 상이 많이 받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 어차피 코테츠 상은 자기한테 줄 초콜릿을 준비하고 있을테니 여기서는 내가 두 팔을 걷고 힘내자! 정성은 가득하지만 센스는 없고 살짝 촌스럽기까지 한 초콜릿을 받고나면 답례라고 화려한 저녁데이트를 선물하는 거다! 사실 이 사람, 남자의 페로몬이 풀풀 풍긴건 아저씨 때문이었습니다. 호텔에서의 저녁식사(프라이빗 룸, 예산은 1인당 예산은 n백 슈테른 달러, 그 뒤로는 야경이 보이는 스위트룸에서 와인. 예산은 n천 슈테른 달러. 시간도 노력도 자신감도 하늘을 찌르는 답례품으로 코테츠 상을 몸도 마음도 한방에 천국으로 보내주겠어! 마음도 성격도 씨꺼멓습니다. 검다못해 광택이 날것같은 흑심을 픔고도 바나비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남얼굴로 상큼하게 미소짓습니다. 아저씨 니게로.
파트너의 꿍꿍이도 동료 히어로들의 찜찜한 불안감도 모르고 아저씨는 절찬 지각 중. 키드가 있잖아, 우리 초콜릿 나눠줘야되지 않을까... 하는 말을 꺼낼까 말까하는 찰나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 들어옵니다. 세상 제일 행복해보이는 히어로 혹은 제알 멍청해보이는 히어로 수준의 헤벌레한 얼굴입니다.
품안에는 단촐하지만 제법 부피가 있는 쇼핑백을 안고 있습니다. 모두들 안녀어여어어엉!! 평소보다 백배쯤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얼굴에 마소가 가득합니다. 걱정하던 사물함 건, 힐끗 보더니 우와아 팬들한테 초콜릿 받아버렸어~ 아저씨 기뻐어어어~~같은 소리를.하고 상글벙글 집어듭니다. 하지만 뭔가 가볍습니다. 품안의 봉투는? 소중한 듯 끌어안고있는 그것을 툭 내려놓자 안은 역시나 초코. 다행이다 초콜릿 받았구나 타이가도, 하는 동료들의 안심도 의미없이 코테츠는 봉투를 엽니다.
「다들 해파 발렌타인!! 이거 너희들 거야~~!」
엑. 잠깐만.
다들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코테츠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꾸러미를 건네즙니다. 하이요 스카이하이! 되도않는 아저씨 개그로 건내주는 초콜렛 상자. 사각형의 손바닥 만한 상자가 예쁜 연초록색 한지로 싸여있습니다. 스카이 하이는 얼결에 받아듭니다 . 다름 파이어 엠블럼! 다음 키드! 다음 블루로즈! 안토니오 너도! 다음 바나비! 아 오리가미도! 성의없는 순서에 바나비는 귀를 의심합니다. 내가 처음도 끝도 아니라니! 무심코 받은 초코상자를 봅니다. 예쁜 초록색 포장은 예쁘게 싸서 끝부분을 꽃처럼 펼쳐놓은 것이 묘하게 어린아이같은 포장입니다. 금빛 리본이 달려 화사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거, 포장도 크기도 다른 히어로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당혹 반 실망 반으로 입을 열려는 찰나 어이없다는 안토니오의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뭐야 타이가. 갑자기 전원 분 초코라니.」
「마,맞아, 이런 거 받아도 안 기쁘고! 」
거든답시고 입은 열었으되 얼굴이 빨개져서 더듬거라는 블루로즈의 말에는 좀처럼 신빙성이 없습니다만, 안토니오가 푸념섞어 말을 잇습니다.
「아저씨한테 초콜렛 받아봤자- 」
「아저씨 아니지롱~~~ 구슬같이 귀엽고 영리하고 예쁘고 반짝거리는 우리 딸내미 작품이지롱!!」
엩.
얼굴을 붉히던 블루로즈가 얼어붙습니다. 그 옆에서 바나비의 동요는 얼굴에도 안 나오지만 내부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시기보다 격렬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아저씨의 자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어제 카에데가 만들어줬다~~?? 부엌에서 어어엄청 열심히, 초콜릿이랑 사투를 벌여가면서! 어찌나 귀여운지!」
이하 어딜 어떻게봐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딸바보의 장광설이 십분 이어집니다. 탈력한 얼굴로 블루로즈는 상자를 내려다봅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 포장 디자인, 엊그제 카에데 쨩이랑 이메일로 이야기했었던 것도 같아.. 블루 로즈가 꾸물꾸물 포장을 엽니다. 초록빛 포장 안에는 네모난 와인색 상자, 열어보니 안에는 귀여운 호랑이 무늬로 찍어낸 동글동글한 초콜릿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어 귀여워, 하고 저도 모르게 말하고 보니 상자 위에 카드도 달려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아빠를 잘 부탁해요! - 카에데,> 꼭꼭 눌러쓴 귀여운 글씨가 사뭇 흐뭇합니다. 질렸어 정말. 블루 로즈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립니다.
「어쩔 수 없네, 카에데쨩을 봐서라도 답례품! 」
블루로즈가 웃으면서 자기 라커에서 초콜릿을 꺼내 던집니다. 고백카드는 넣지 못했어도 정진정명의 본심 초코지만, 가볍게 던진만큼 아저씨는 놀란 얼굴을 하고 가볍게 받아줍니다. 오, 생큐- 웃는 얼굴이 좋아서 블루로즈는 마음을 담아 톡 쏘아댑니다. 착각하지 말고! 카에데쨩한테 주는 답례품이니까! 말해놓고 아차하지만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응응 카에데한테 전해줄게~ 나도 하나 먹고~하고 받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네~」
소녀다운 포즈로 말한 파이어 엠블렘도 초콜릿 상자를 꺼냅니다. 근방의 고급 쇼콜라 샵에서 사온 것. 과연 부유한 히어로 답습니다. 다들 하나씩, 하고 톡톡톡 던져줍니다. 소녀심이야, 3배로 화이트 데이에 돌려받을 테니까. 여성 동지들은 빼고.
여성 히어로는 환성을, 남성 히어로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이 고급 초콜릿의 3배라면 대체 얼마를 지불해야할까요.. 오리가미 군, 창백한 얼굴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스카이하이가 웃음으로 치웁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그리고 마음이 중요해! 키드도 초콜릿을 풉니다. 이거 받은 거지만 같이 먹자, 응원해주는 마음은 다 같은 거니까! 꺄꺄하는 소리, 초콜릿의 단내, 그야말로 훈훈한 분위기입니다만.
그러니까
내
초콜릿은요
코테츠상
바나비의 안력은 안경을 뚫고 나올 듯합니다. 아저씨,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상 최강의 헤벌레한 얼굴로 바니의 시선을 스루합니다. 어이 이 아저씨. 젊고 어리고 건강하고 잘생긴 연인에게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거냐.(※히어로로서는 있을 수 없는 난폭발언) 울컥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넣으며 염원을 담아 노려보는데 아저씨가 부스럭 부스럭 봉투 안에서 상자를 꺼냅니다. 어, 좀 다릅니다. 크기도 더 크고, 하트모양 박스고, 포장도 다르고. 아저, 아니지 코테츠 상, 설마..! 바나비 얼굴이 확 밝아집니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저씨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상자를 건넵니다.
「카드 읽어볼래?」
내
발렌타인
이벤트는
틀리지 않았어!!!!!!
역시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티는 내지 않는 것이 바나비 브룩스 주니어. 초사이어인 저리가라급으로 기를 모으면서도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평온한 척 하트상자를 받아듭니다. 코테츠 상, 이렇게 당당하게 주다니요! 기쁨으로 몸부림치면서 상자에 붙은 카드를 엽니다.
<파파, 항상 고맙습니다♡>
엩222
귀여운 하트마크, 사랑스러운 문구. 하지만 파파? 파파? 언제부터 이런 플레이가취향이었단말인가요코테츠상당신이원한다면지금당장이라도양자로들일각오는되어있지만(※망상입니다)
번뇌로 불타오르는 바나비 앞에서 상큼하게, 그리고 무정하게, 그리고 잔인무도하게 행복 1000%의 얼굴로 코테츠상이 박스를 도로 뺏어갑니다.
「읽었어? 읽었어?<아빠아아 고마워어>래!! 우리 카에데가!!」
우리 카에데쨩이! 내가 업어 키웠던 우리 카에데가!!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어어~~ 기쁨으로 광란의 블루스를 추기 시작한 아저씨 앞에서 바나비는 사륵사륵 고운 재로 녹아서 흩날립니다.
내 발렌타인 이벤트,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