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프를 함께 보낼 때는 거의가 아저씨네 집입니다. 바니네 집이 더 넓고 쾌적하고 편하지만 어딘가 살풍경한 데가 있어서 바니 자신이 자기 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는 바니네 집을 갔었기 때문에 크고 좋은 집에 주눅이 든 아저씨는 한동안 자기 집에 부르는 걸 꺼려했습니다. 바니는 몇번 코테츠 상의 집에 가고 싶다고 채근한 끝에 거의 반강제로 집에 쳐들어갔고 술병이 굴러다니는 참혹한 집 꼴을 봤습니다. 아저씨로서는 치부를 드러낸 듯한 부끄러운 상황이었지만 바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평소처럼 뭐라뭐라 잔소리를 늘어놓은 이후에 약 삼일에 걸쳐 집을 깨끗히 치우는 걸 도와줬습니다. 술병들을 버리고 액자에 쌓인 먼지를 닦고 부엌에 쌓인 식기들을 치우고. "아저씨니까 술 좋아하는 건 뭐라고 못하겠지만 적당히 해두세요. 히어로가 몸관리 못해서 쓰러진다면 웃음거리도 안되니까."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청소기를 돌리는 바니를 봤을 때 아저씨는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웃어버렸습니다. 아, 토모에도 저랬었는데.
대청소를 한 이후에는 아저씨 집에 빈번하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가끔 바니네 갈 때도 있기는 하지만. 바니의 집에서 둘이 같이 있을 때 예의 클래식 음악이 자동세팅되어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니의 표정이 어떻게나 어두워졌던지 아저씨가 저도 모르게 바니를 꽉 안아주었을 정도였습니다. 아저씨는 "이쪽은 부모가 살해당했단 말이야!!"라고 외친 이후부터 바니의 어두운 부분이 어떻게 바니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어렴품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니는 이제 두번다시 코테츠 상을 집에 부르진 말아야지했었는데 그 후 아저씨가 꽤 둔하고 눈치없는 척하면서 집에 자주 찾아옵니다. 바니는 집에서 거의 요리를 안하지만 부엌은 첨단 시스템으로 갖추어져있는데, 거기서 꽁치 굽겠다고 그을음을 만들며 법석을 피우거나 전자조리기 못쓰겠다고 툴툴 거리거나 접시를 깨먹는 코테츠상을 보면서 뭔가 마음 속이 따뜻해지는 걸 느낍니다. 사람 사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
함께 보내는 주말은 기본적으로 느긋하게 보냅니다. 아저씨는 아침잠이 없어지는 나이라서 바니보다 일찍 기상. 아침 8시 정도에 한번 눈을 뜨고 자기한테 꼭 붙어자는 바니를 보고 함번 꼬오오옥 안아준다은에 두번째 잠을 청합니다. 바니는 늘 아침일찍 일어났지만 실은 저혈압 체질. 아저씨네 집에 머물기도 하고 자기도 하면서 많이 느슨해진 결과 주말은 원하는 만큼 푹 자고서 일어납니다.
아저씨가 두번째 잠에서 깨는 건 오전 10시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그날의 사건이나 뉴스를 체크합니다. 히어로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아저씨는 슈테른빌트의 수호자. 그러고나면 반쯤 잠든 채로 욕실까지 걸어가서 씻고 나오고,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리면 부엌으로 바로 걸어들어갑니다. 수건 재대로 안써서 항상 물을 뚝뚝 흘리기때문에 바닥은 흥건, 나중에 바니한테 혼납니다.
부엌에서 이런저런 아저씨스러운 조미료나 물건을 사용해서 남에게 내놔서 욕은 안먹는데 특별하게 섬세한 맛은 없는 남자의 요리를 만들고 있노라면 잠이 덜 깬 바나비가 비척비척 걸어나옵니다. 욕실로 걸어가다가 아저씨가 만든 물웅덩이에 미끄러집니다. 아저씨가 사색이 되서 튀어나오면 앓는 소리를 내며 잔소리를 퍼붓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데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했잖아요! 넘어져서 꼬리뼈같은 거라도 다치면 어떻게 할거에요! 저야 젊다고 치고 코테츠 상은 이제 다치면 안되는 나이니까!" 그렇게 나이먹지는 않았다고 태클을 걸고 싶지만 조용히합니다. 뭐라고 하면 3배로 돌아오니까.
투덜투덜 바니가 욕실에서 씻고나오면 아저씨가 아침을 대령합니다. 평범하게 샌드위치에 오렌지주스같은 경우가 많지만 세 번중 한번은 일식입니다. 두부가 들어간 일식 된장국, 잡곡밥, 무간것을 곁들인 연어토막구이, 장아찌절임, 시금치무침. 아저씨는 토모에를 잃고나서는 거의 스스로 요리한 적이 없고 일식 음식도 먹은 일이 드물지만 바니가 집에오면서 가끔 만들게 되었습니다. 바니는 대체로 잘 먹지만 낫토는 무리였습니다. 아저씨를 따라서 무간 것 위에 간장을 뿌리다가 실수로 왈칵 쏟아버려서 바니의 연어는 간장범벅이 됩니다. 부루퉁한 얼굴로 짜단 소리하나없이 먹고 있자 아저씨가 웃으며 자기 반찬이랑 바꿔줍니다. 젓가락질은 서툰 편이라 반찬을 자꾸 집다가 놓치는 걸 보고 재미있어하면서 정갈한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어 먹여줍니다. 감사합니다, 아앙-하고 받아먹고 바니 얼굴이 빨개집니다. 아저씨도 빨개집니다.
식사를 마치고서는 잠깐 서로 꼭 붙어있는 시간이 생깁니다. 아저씨가 설거지하는 동안 바니가 등뒤에 딱 붙어있어서 아저씨가 얼굴을 붉힙니다. 멧쨔 데레데레 타임.
식사를 마치고나면 가볍게 산책을 나갑니다. 걸어서 몇분 정도 거리에 공원이 있어서 둘이 산책합니다. 바니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도 있지만 주말 아침 치고는 공원에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식후 간식으로 사과를 하나 사서 둘이 나눠먹으며 산책로를 걷습니다. 안쪽에는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걷기도 합니다.
적당히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둘다 늘어집니다. 소파에 누워서 함께 tv프로를 봅니다. 아저씨는 어느 틈에 바니한테 무릎배개를 한 채로 소파에 누워있고 바니는 자연스럽게 아저씨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까만 흑발이 손가락에 감기는 감촉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저씨는 티비를 보는 척하다가 힐끗 시선을 돌려 바니를 바라봅니다. 바니는 화면에 몰입하고 있어서 눈치 못챕니다. '역시 속눈썹 길다니까..'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남자애 치고는 너무 예쁘장한 얼굴이지 않느냐 말도 안되는 질투도 해봅니다. 사실 아저씨는 바니가 까만 머리카락을 흰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감촉을 좋아하는 것만큼 바니의 반짝반짝하는 금발이 손가락 사이에서 사르륵 흘러내리는 걸 좋아합니다. 무심코 손을 뻗었는데 바니의 뺨에 닿습니다. 응? 하고 바니가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자연스레 허리를 굽혀 키스해줍니다. "무슨 일 있어요?" 아저씨는 새빨개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막습니다. "너, 카사노바도 그쯤이면 범죄야..." "?" "여자한테 칼맞거나 하면 안돼." "코테츠 상 외에는 아무한테도 안하니까 이상한 소리하지마세요." 눈을 찡그리며 진짜로 짜증내서 아저씨는 또 심장에 직격당합니다. 이 파트너 심장에 나빠 하고 투덜투덜하고 있으면 바나비가 조용히하라며 손가락끝으로 입술을 쓰다듬습니다. 이 파트너, 심장에 나쁩니다.
tv 방송이 끝난 후에는 바니가 저녁을 만듭니다. 솔직히 말해 요리실력은 별로지만 보고있는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썩 잘 된 요리와 한병의 와인을 함께 하고 나서 욕실로 들어갑니다. 아저씨네 집 욕조는 좁아서 둘이 같이 들어가면 꽉 찹니다. 아저씨가 장난스레 바니의 머리를 감겨줍니다. 샴푸를 하는 동안 눈을 감고 있는 바니의 속눈썹이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눈위에 입을 맞춥니다. 눈을 감고있던 바니가 눈을 뜨고는 웃으면서 팔을 두르고는 키스합니다.살과 살이 스치는 감촉이 기분좋고 입안을 휘감은 바니의 감촉이 좋아서 아저씨는 파르르 몸을 떱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만지면서 욕실에서 나온 후에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집니다.
둘다 지쳐서 쓰러진 후에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이 듭니다. 달이 뜬 깊은 밤에 밤잠이 얕은 바니는 한번 깹니다. 자기한테 빈틈없이 팔을 두르고는 딱 달라붙어서 자고있는 아저씨의 옆 얼굴을 내려다봅니다. 곤히 잠든 숨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자기같다는 뻔뻔한 생각을 합니다. 아저씨의 이마에 입맞추고는 고쳐 끌어안고 푹잡니다.
평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