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격조했습니다. 여기서 글을 쓰지 않는 기간동안은 어떻게든 음, 트위터에서 놀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것대로 즐거웠었어요. 그래고 우악스러우리만치 제 자신의 조각들을 모아서 쌓아올리는 데에 혈연이 되어있는 사람으로서 아주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건 신기한 기분이기도 하고.. 슬픈기분이기도하고 그렇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우울한 날에는. 전 제루샤가 아니고 주디도 아니니까 우울한 월요일은 아니겠지만요. 수요일이던가.
2. 3월부터 지금까지 아주 열심히 일을 했고, god콘서트를 다녀왔고, 많이 무기력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책이나 만화나 영화는 실컷 읽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부터 할까. 아 맞다, 자동차를 샀습니다. 제가 아니라 우리집이요. 95년형 아반테를 97년에 사서 17년동안 타고다니던 집으로서는 무진장 큰 사건입니다. 품명은 말리부. 차를 바꾸기로 2월에 결심했고, 봄즈음에 견적서를 받았고, 5월즈음에 제 회사랑 연관지어서 조금 할인을 받았고, 그리고 6월즈음에 차가 왔습니다. 저는 아직 한번밖에 못탔는데 승차감도 좋고 네비게이션도 달려있지만 제가 뒷좌석에서 뒹굴고 잠들면서 컸던 아반떼처럼 정이 들려면 아직 한참 걸릴 것같아요. 저 신차를 타고있는 한 아반떼에서 그랬던 것처럼 앉는 자리에 누워서 뒷유리창에 발을 까딱대기는 힘들겠지요. 여섯살때에나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길게 눕는게 아니라, 거꾸로 앉는 거에요. 참고로 하자면)
3. 취직하고서 9개월째. 통장에 모인 잔고는 솔직하게 큰 금액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많은 것같은 그런 거. 생각보다 돈이 너무 쉽게 모여서 당황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 지출 내역이래봤자 만화, 영화, 가아아아끔 술값,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끔 화장품 정도거든요. 옷이나 신발은 연간 두세번도 살까말까하고 그나마 비싼 건 안 사니까요. 롯데상품권 아직도 40만원이 남아있습니다. 등록금 빚같은 것도 없었고. 회사 들어가고서 모은 돈은 한 1400만원이에요. 제 월급이 한달에 150만원 안팎이고-상여금이 있긴했지만- 그나마 초반 5개월정도는 수습기간과 월급 오르기 전이라 110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 이 자식 대체 뭐냐. 싶어집니다.
4. 돈 이야기는 하는게 아니라지만 여튼 그러합니다 남들만큼 돈을 써보고 싶기는 한데 도무지 뭔가에 집착을 가질 수가 없어서 사는 걸 즐겁게 생각할 수가 없어요. 라기보다는 욕구를 충족하기까지가 느긋한 것같습니다. 사야지 맘먹고 여전히 안 사고 있는 마이클 코어스 가방도 그렇고 (2년쯤 지났음) '갖고싶어!!!' 상태가 되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서요. 그 점에서는 아반떼도 그렇고, 저희집 시간이 시간이 참 천천히 흐르는 편인가 봅니다. 시간은 많고, 아마도 느긋해요. 당장 이루거나 하지 않아도 하려고 마음 먹은 것은 언제든 이루게 되어있습니다. 그점에서 시간은 굉장히 우리편이에요. 내버려만 두면.
5. god 콘서트도 그.. '내버려뒀더니 이루어졌다'중 하나였습니다. 꼬꼬마시절에는 그 사람들이랑 같은 장소에 있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추억팔이같은 콘서트였다고 말하지만 추억을 팔아줘서 고마웠고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어렸던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그 때 우상같았던 사람들을 다시보면서 아, 그랬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빡빡한 스케줄같은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같은 거요. 저는 지금도 내가 좋아했던 god가 팬들을 사랑하고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해요. 방송에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던 데뷔 이전의 힘든 시기를 말할 때 그 사람들이 묘하게 행복해보였었거든요. 하루 십수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기저할 때까지 몰리고 사생활이 없었던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이 행복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속사와의 사이가 별로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시절 연예계가 그렇게 사람을 존중해주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욕먹으면서 레코딩했다는 이야기, 사실 생각하면 이상한 거잖아요. "6,7집은 잘 기억이 안나. 싫은 일은 참많았는데." "데뷔 전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 행복했었어." 음, 뭐랄까. 저는 god를 좋아했지만 god가 말하는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는 잘 믿을 수가 없어요.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저는 타인처럼 좋아할 거니까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짝사랑하는 것같은 소소한 마음으로.
6.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여기에 썼던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지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다르다는 걸 알았던 만남이었습니다. 다정한 사람이라서 상처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제가 갖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은 없는 것같아요. 만지고 싶거나 닿고싶거나 함께하고 싶다는 감각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의 것이고, 그냥 나에요. 다름 사람에게 높은 방어벽을 쌓고 그 뒤로 숨어드는 버릇은 여전해서 누구앞에서든 나를 보이고 싶지가 않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마음을 비집어 열기는 하지만 저는 남과 교류하기에는 불성실한 사람이고- 음, 그래서 가끔 외로울 때가 있어도 내 안에 잠겨서 둥둥 떠있는 감각이 훨씬 즐겁습니다. 남을 생각하고 좋아하다가 배신당하거나 끝나거나, 어쨌든 상처입게 된다면 정말 견딜 수 없어질 거에요. 그러니까 시작하지 않는 편이 제게는 훨씬 편안해요. 영화나 문하작품에 나왔다면 그렇지 않아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할 가치가 있어-운운하는 엔딩으로 개화될 것같은 인물의 대사입니다만, 현실은 작품이 아니니까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데에도 망설임없이 아름다운 곳이고, 길게 길게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같은 기분이 든 적은 없어요.
7. 최근 신나게 빠져들고 있는 이 극심한 허무주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무섭거나 두려운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가 되었든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나게 기운이 빠져서 그냥, 서글퍼집니다. 내일은 온리전이고 사랑하는 친구랑 만날 테니까, 이 막막함을 좀 긁어서 어디다 치워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이 좋아하는 나를 연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제가 뭘 좋아하는지를 생각하는게 허무해지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