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엘 완결ㄷ 났다고 하고, 백성귀족도 사고 싶고, 이래저래 사고 싶은 것이 많은 8월입니다. 오늘은 그린빌에서 만나요(유시진 작)을 다시 읽었어요. 이 분의 책은 한결같이 건조하고 마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데, 온화하고 고요해서 담담히 어루만질 수 있게 됩니다.
2. 음 만화책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같아요. 촉촉하게 젖은 것같은 감성과 마르고 건조한 감성. 어느 쪽이든 '감성'이라서 표현이 다르다뿐이지 감수성이 파르르 흔들리게 되기는 합니다. 유시진님 책은 그 중에서 건조하게.. 마르게? 이야기를 적어내려가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는 소설보다는 훨씬 촉촉한 느낌이 들기 쉬운데 유시진님의 책은 어지간한 소설들보다 건조해요. 그렇다고 이게 척박하거나 갈증을 느끼게하는 건조함은 아니고.. 굳이 말하면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린 나무같아요. 수분은 없는데 차분하고, 코끝에 마른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거에요. 음, 은은한 건조함이라고 해야할까. 수분기가 뚝둑 넘쳐흐르는 작품도 있고 어느 정도 억누르면서 서세하게 뽑아내는 것도 있고 책들마다 제각각이지만 유시진님 책은 나무가 맞는 것같아요. 미도리카와 유키는 옅고 섬세한 베일로 한겹 감싸놓은 이슬. 임주연님은 유리컵에 담아 햇빛 아래에 놓은, 희미하게 단맛이 나는 맑은 물. 권교정님은 비교적 마른 계열인데 좀 더 이성적인 느낌. 햇볕 아래서 부유하는 마른 먼지가 향수를 일으키는 그런 거.
3. 어떻게 받은 느낌을 묘사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네요. 그린빌을 읽을 때마다 손이 머뭇거리면서 멈추게 되는 건 도윤이의 독백을 바라볼 때입니다. 가는 머리카락 끝에 걸려서, 당기면 당기는 대로 큰 덩어리가 나오는 거나. 물 위에 부유한 채 조용히 우는 거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두 팔로 감싼 몸 안에 마른 몸의 궤적이나. 목소리는 덤덤해요. 슬퍼하지도 감정을 내비치지도 않고, 조용하고 마른 듯 건조하게. 한점도 내비치지 않기 대문에 더 절실한 건지. 아니면 과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하지 않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인지. 저에게 이 책은 많이 말라서 읽고 나면 진짜로 목이 말라옵니다. 그만큼 공감할 수도 있구요. 저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감성과잉인 인간이라 도윤이처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하나하나 더듬어가면서 담담하게 윤곽을 확인하는 모습에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음, 정신없지는 않고, 그냥 조용히, 끌리듯이. 향기를 들이마시듯이.
4. 최근 매우 좋아하는 모 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이 났어요. 만일 친구거나 했다면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멋대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것도 오만이고 과한 맹목이 될 것같으니 그냥 조용히 접어두려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비의 말도, 이언이의 말도, 그들의 시각도 있었는데 제가 더듬어 찾은 감정은 항상 도윤이가 상처를 찾고 바라보는 그 과정에 있었다면, 그리고 그 애의 대답을 찾아내는 모습이 소중했다면 그건 제가 그 부분을 이 책 안에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 좋아하는 책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내일은 공개강의같은 게 있지만 치과 진료가 있어서 패스. 초원의 집 전권을 빌려와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로라 잉갤스 와일더 혹은 초원의 집, 혹은 긴 겨울. 다 읽을 거에요. 드라마 세대도 원작도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망한 충판사 전집 시리즈에 있는 '긴 겨울'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언젠가는 라익락 피는 집의 다음 권도, 하얀 매 완역판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게 즐거운 건 항상 이런 순간인 것같아요. 전부인줄 알았던 게 사실은 일부였고, 더 크고 선명하고 자세한 세계가 있다는게. 그런 의미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언제가 되어도 제게는 보물입니다. 하이데와 백작의 엔딩신은 지금도 응원해줄 마음이 들지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