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원래라면 햇살이 부드러워지는 계절이었을 거다. 발그스름하게 물든 벚꽃이 거리를 수놓고, 쌀쌀한 바람에 싱그러운 풀내음이 스며서 추위를 잊게 만드는 그런 계절. 아직 성근 추위가 여기저기 감돌고 있어도 고개를 내미는 풀잎에, 세상에 번지는 신록에 가슴이 들떠 저도 모르게 옷차림이 가벼워져야하는 그런 계절.
하루종일 오랜 책자와 씨름하던 네가 고개를 들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앞에 늘어놓은 도시락 통이며 요리재료에 치여 무엇을 채워넣을지 한참이나 고민하고 있었음이 빤히 보인다.
「카오루 군은 뭐가 좋아?」
「응?」
「연어랑 우메보시랑 닭고기중에서.」
어느 것이나 신경써서 먹어본 적은 없고, 불호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다. 애시당초 저 것들이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른다.그렇다고 <신지 군이 만드는 건 다 좋아>같이 곧이곧대로 된 대답을 입에 올렸다간 요리에 치여 피곤해져있는 신지 군의 미간에 내 천자의 주름이 잡힐 것도 분명하다. 저 재료들, 색깔은 어떤 거더라. 흐린 기억 속의 서랍을 어떻게든 뒤져서 대답을 궁리했다.
「그러니까.. ,연어?」
말끝이 조금 올라간 건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다. 뭔가 핑크색이었던 건 기억 나는데. 긴장하고 신지 군의 반응을 살폈다. 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요리재료를 다듬고 있던 신지 군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행이다.」
「?」
신지 군의 안도에 고개를 갸웃하며 반응을 살피자, 대놓고 안도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신지 군이 뺨을 붉히며 웃었다.
「그게, 아스카는 죽어도 치킨이라고 하고 미사토 상도 고기가 아니면 싫다고 하고, 아야나미는 뭐든 좋다고 했지만 동물성은 못먹는다고 했고.」
내 생각에는 그게 자기 취향 말한 것같지만, 거기서 피식 웃어버리는 게 신지 군다웠다. 손가락으로 재료와 먹을 사람을 하나하나 꼽아보더니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먹어줄 사람 달리 없으면 재료에서 빼야 되나 싶어서.」
「신지 군이 만드는 게 힘들면 난 다른 거여도 상관없는데.」
「..나도 좋아한단 말이야, 연어.」
핀잔을 주듯이 말하고 손을 다시금 바쁘게 놀리기 시작하는 신지 군의 귓볼이 희미하게 붉다. 그렇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뒤로 미뤄둘 수 있는 사람이었지. 결코 요령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부분들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살짝 다가가 신지 군 옆자리에 섰다.
「그럼 얻어먹는 보답으로 나도 도울까.」
「어, 고마워..」
조금 당황하며 신지 군이 옆으로 비켜 설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가지런히 뭉쳐놓은 주먹밥, 보기좋게 늘어선 폭신폭신한 계란말이. 봉투 안에 들어있는 유부. 배추에 양파. 도마 앞에 서서 칼을 집어들고 재료를 끌어당겨 손질하기 시작했다.
「다 만들면 다같이 꽃놀이 가는 거지?」
「응, 미사토 상이 좋은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기대된다.」
「응, 나도.」
거기서 신지 군은 쑥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진심으로 웃었다. 날짜는 4월. 꽃이 피고 신록으로 물들어야할 계절이지만, 봄의 풍물시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언제까지나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더운 태양이 그려내는 한 여름의 풍경은 일 년 내내 지속되니까. 그런데도 꽃을 보고, 음식을 만들면서. 웃으면서 계절의 기억을 덧그리는 너희들은. 너는, 참 행복해보여서.
「신지 군?」
「왜, 카오루 군.」
「좋아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순수하게 입에 담았다. 음악처럼 울려퍼지는 말이 귀로 다시 들어오며 마음에 파문을 그렸다. 생각지도 못했는지 동그랗게 커진 까만 눈동자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서툰 신지 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게, 자기 의견을 내놓는 게 한없이 서툰 신지군.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네 편이 될게.
「...저,저기, 그러니까...」
고마워.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서 어색한 듯이 한 마디 대답을 하고 신지 군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옆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달아오른 귓볼이 더욱 새빨개졌다. 이제는 피어날 일이 없는 벚꽃잎 끝에 아련하게 물드는 붉은 빛처럼. 아, 역시.
-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fin
봄 : 紫がかった雲 (보랏빛을 띤 구름)
카오루는 신지가 예뻐서 죽으려고 할게 분명합니다. 이건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