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오 다 끝나고 생각이 정리되면 적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싱숭생숭해져서.
닐에 대한 제 감정은 애정과 미움이 복잡하게 뒤섞여있습니다. 제가 펠트나, 티에리아나, 하여간 이 인간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이 떠난 후에 한대 패줬을 거에요. 웃기지말라고 사람 바보취급하지 말라고 마음껏 때렸을 겁니다. 사람 감정은 장난질이 아닌데. 이 인간은 퍼주고 퍼주고 퍼준 것도 다 진심인 주제에 자기 안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여주지는 않았어요. 티에리아에게도 세츠나에게도 펠트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준 주제에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록온이 아니라 닐로 있는 순간에 떠올리는 건 테러와 가족밖에 없었어요. 나쁜 인간같으니라구.
그리고 저는 록온을 싫어하는 만큼 좋아합니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어요. 갈 길 잃고 헤메던 CB에게 제멋대로여도 좋으니 나가자는 말을 던진 것도 이 인간이고, 티에리아에게 CB를 수복하게 만든 것도 이 인간이고, 세츠나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준 것도 이 인간이에요.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다메다메한 구석부터 오지랖 넓은 상냥함에 자기가 실패자였다고 알고 있었던 어리석음까지. 몇번이나 말했지만 이 사람 못난 사람 맞아요. 하지만 그 못난 구석까지 다 해서 그는 록온 스트라토스였고, 변화하지 못한 실패자로 죽으면서도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아해요.
까놓고 말해서 전 라일을 기대했고, 그래서 처음에 라일이 싫었어요. 정확히는 얘가 자기 과거에 맺혀있는 테러사건을 '과거의 일'로 치부한 순간에요. 전 닐 디란디를 엄청 사랑했거든요.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형의 발을 부여잡고 있었던 피맺힌 시간을 과거로 치부했습니다. 라일이 멀쩡한 반응인 거 맞아요. 과거에 얽매여봤자 변하는 건 없다고, 돌아오는 건 없다고 닐도 인정했었으니까. 얘가 그 걸 거짓말로 말한 건지 진심으로 과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얘는 닐을 부인했어요. 어리고 꼬꼬마고 치기어린 거 압니다. 그래도 용서할 수 없었어요. 닐의 후속인 네가 닐을 무시하지마. 딱 그 기분. 와, 라일이 보면 화냈겠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차마 그를 싫어한다고 하지도 못한 건, 그리고 CB에 이 인간이 녹아든 건 이 인간이 록온의 얼굴을, 목소리를, 체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눈앞에서 잃었는데 그 인간이랑 똑같은 얼굴이 알짱거리면 싫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닐과 같은 길을 걸어가주지 않은 라일에게 실망했어요. 그리고 이 인간이 그와 다른 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형을 자신을 얽매는 족쇄로 보고 있었던 이 인간에게 CB의 일원이나 시청자가 요구하는 게 말도 안되는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 가진 걸 다 잃어버린 그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어린애같은 그가 싫지 않습니다. 좋아합니다.
이제 저는 닐의 해답을 라일이 찾아주기는 바라지 않습니다. 닐의 계승이라니, 나는 닐의 동생이 아니라 라일이라고 말한 저 인간에게 무리한 요구잖아요. 다만 라일의 해답이 있을지 그게 무섭습니다. 아뉴는 그를 떠나지 않았고, 그와 함께 돌아왔어요.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자신을 선택한 걸로 안심하기에 라일은 엄청 어린애라서 그녀의 죽음만으로도 무너져버렸네요. 지금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이 살아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있는 걸까요. 정말 아무도 없는데. 아뉴가 마지막에 그를 선택했다고 해도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더 괴로운 이 남자인데. 라일의 아뉴의 곁으로 가는 엔딩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자란 인간을 지탱해줄 사람이 있을지, 그게 너무 걱정스러워요. 복수로 사는 인간의 말로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거, 네 형님이 증명했습니다 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