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하얀 비행기, 도피


전쟁이 있었다. 혼란이었을까. 길거리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끊이지 않는다. 마차가 다니던 숲 속의 넓은 길에 마차와 병사들이 달린다. 추격전이다. 머리를 두건으로 둘러싸맨 사람들이 병사들을 피해 조용히 도망친다. 나는 성 안에서 탈주를 준비한다. 새하얀 하얀 경비행기는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짐은 묶고, 헬멧을 쓰고, 날아올랐다. 시간은 오후경. 따뜻하던 공기는 위로 올라갈 수록 서늘해져서 뺨을 스친다. 이대로 날아가면 자유로울 수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행긱 흔들린다. 원래부터 운전을 하는 법은 잘 알지 못했다. 아래서 소란이 울린다. 병사들이 비행기를 발견했다. 화약 냄새와 큰 소리가 나고 비행기에 폭탄이 스친다. 빙글빙글, 꼬리를 잃은 새처럼 비행기는 추락하다가 사람들이 도망치던 숲 속 대로변 가운데에 종이비행기처럼 떨어진다. 바람이 좋았는지, 비행기가 가벼웠는지, 나는 다치지는 않았다. 뒤에서는 병사들이 밀려왔다. 무섭거나 슬프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화가 났다.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흙으로 다져진 대로변을 달렸다. 마차가 있다. 짙고 붉은 빛에 가까운 칠한 나무결과 흑적갈색 말이 눈에 두드러지게 들어온다. 꼬리에 매달려 마차 지붕위로 올라간다. 스카프가 바람에 날린다. 마차는 달리고 달리지만 등 뒤에서 몰려오는 병사들의 소란에서는 도무지, 도망칠 수가 없을 것만같다.



독재자와 물의 방, 오빠의 죽음, 탈주


잡혀간 것은 어두침침한 감옥이었다. 아니 그 곳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지하실? 아니면? 바다처럼 넓은 물 가운데에 물에 반쯤 잠긴 새까만 사면체가 떠 있다. 그 안은 텅빈 까만 방이고, 바닥의 일부가 검은 물에 잠겨있다. 그 방에서 빠져나가려면 검은 물 속으로 잠수해서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야한다. 희미한 빛이 새어들ㅇ오면 온통 검고 푸른 그 방안에서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 큰 방안에서 오빠아 둘이 갇혀있있다. 이따금 간수가 음식을 준다. 방안은 물에 젖어있고 가구도 없었지만 어쩐지 피로해지지는 않는다. 나가지는 못하겠지. 오빠가 물 속으로 잠수한다. 출구를 찾아 더듬고, 다시 나와서 숨을 들이쉬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 마른 물고기처럼 하얀 팔이, 다리가 물 아래에서 흔들린다.


헤엄치고 또 쳐서 출구를 발견했다. 밖으로 나가본들 그 곳은 아득하게 펼쳐진 물뿐이다. 지쳣 죽을 것을 걱정하며 헤엄쳤다. 멀리 점처럼 보이던게것은 또 다른 사면체였다. 다른 포로가 있을까? 출구는 건물 밖에서는 찾기 쉬웠다. 이상하게 이 '감옥'에는 창도 달려있다. 물에서 지친 몸을 끌어올려 창가에 매달린다. 그 안에는 성을 장악한 독재자가 있었다. 적을 두려워해서 물의 방안에, 물의 감옥 안에 숨어야하는 독재자. 병사들과 하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입구를 틀어막아버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온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병사들이 나를 본다. 손짓으로 동생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병사들이 밀려온다. 여동생의 흰 팔다리가 물 속을 자맥질해 멀어져간다. 나는 창가에 매달려 독재자에 대한 욕설을 퍼붓는다. 창이, 함성이, 꿰뚫는다. 이 것으로 됐어. 동생은 빠져나갈 것이고, 나는 오빠의 역할을 다했다.



두 명의 공주, 한 마리의 아기용, 축제같은 탈주, 


울면서 건물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얗고 아름다운 우리의 성. 새벽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그 것이 아름답고 스프다. 멀리멀리 도망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성벽을 따라 뛰어 탑으로 올라갔다. 높이, 그저 더 높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 두툼한 흰 돌벽이 원을 그리듯 비호하고 있는 탑. 그 한복판에 서서 이름을 불렀다. 왕가의 가장 어린 소녀만이 부를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이름. 성벽 위에서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국의 공주, 나와 비슷한 나이의, 나를 도와주러 온, 나의 친구. 그녀가 벽 위로 뛰어내려 나를 끌어안는다. 이제 가자, 기다렸지? 밝고 화려한 목소리에 시름은 조금도 없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타고온 것을 본다. 목에 리본을 묶고 푸른눈을 천진하게 뜬 귀여운 아기- 드래곤이다. 용으로서는 아지 어린 그 아이는 날개는 5미터는 될 것같고 몸은 3미터는 될 것같다. 친구와 함께 등 위에 올라탔다. 용을 구슬같이 맑고 높은 목소리로 짧게 울고는, 길고 길 불꽃의 한숨을 토한다. 푸른 불길이 붉게 물들어 번진다. 음악소리같은 것이 들린다.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위로 춤추듯 빠르게, 아기용의 날개가 호를 그린다. 축제처럼 들뜬 기분으로 성을 빠져나온다. 나의 백성들도 그렇게 자유가 된다. 벅차오르는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큰 소리로 소리질렀다. 탈주고 도망이며, 축제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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