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은 분명히 좋았다.
이건 전적으로 배트맨, 아니지 브루스 웨인 덕분이었다. 자신은 지나가는 말로 '좋은 레스토랑 좀 알려줬으면 해'라고 넌지시 말했던 게 전부였으니까. 그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지만 다음 날 클락 켄트의 이메일 계정에는 온 도심에서 손 꼽을만한 레스토랑 목록이 줄잡아 스무개는 적힌 목록이 날아왔다. (거기에 하룻밤에 10만달러 단위의 금액을 써버리고도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가십계의 왕자-배트맨 말고, 브루스 웨인은 그렇다는 뜻이다-가 손수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나 합리적인 가격대인 것을 보고는 그만 뭉클해지기까지 했었다.)
그래,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가격대와 맛은 모두 합리적이었고, 인테리어는 70년대의 클래식한 오토바이나 기타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서 적당히 남자들이 좋아할 취향이었고, 음식은 맛도 양도 많아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불쑥 들어와 맥주 한잔 걸치며 대화하기에는 정말이지 딱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레스토랑은 좋았고, 방문한 사람이 나빴다는 거였다.
치즈가 뿌려진 채 눅눅해진 감자튀김하나를 애꿎게 씹으며 하염없이 벽면을 보던 시선을 돌려 눈 앞을 보았다. 머리 하나가 작은 소년이 똑같이 굳은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감자튀김이라도 씹고 있던 자신과 다르게 무릎 위에 놓인 손은 부동자세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들어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지 30분째다. 클락은 크립토나이트가 눈 앞에 있을 때도 느끼지 않았던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참기 위해 감자튀김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여전히 이어지는 침묵. 클락은 히트 레이가 아니고서야 상처하나 낼 수 없는 목을 식은 감자튀김으로 거의 질식시킬뻔하고서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챙그랑! 말의 효과는 그의 생각을 아득히 초월했다. 소년은 등 뒤에서 전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 고양이처럼 튕겨올랐다. 그 여파로 그의 앞에 놓여있던 소세지와 매쉬드 포테이토 접시는 식탁 위에 노란 소스 얼룩을 그리며 나뒹굴었다. 상상도 못한 상황에 클락은 잠깐 말을 잃었다. 소년의- 코너 켄트의 얼굴에서 새파랗게 핏기가 빠져나갔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전 그러려던 게 아니라-"
"아니, 아니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다치진 않았니?"
클락은 위로하려고 했지만 자기 말이 별로 효과가 없음을 알고 혀를 씹을 뻔했다. 코너는 거의 '네 존재가 저스티스 리그 전체를 망쳤구나 이 쓰레기같은 놈'이라는 말을 들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황한 클락은 대체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명백하게, 역효과였다. 코너는 이제 '너같은 놈과는 말을 섞기도 싫구나'라는 말을 들은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허둥거리며 소스 얼룩을 닦으려고 냅킨을 집어들던 클락은 그만 손등으로 물잔을 치고 말았다. 와장창! 이번에는 식탁 위가 아니라 식당 바닥이었다. 주여, 가지가지 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저-"
"곧 치워드리죠. 그리고 닦을 것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식탁보 위에 접시를 엎었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던 웨이터 한 명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사실 그녀는 음식을 시켜놓고 30분 가까이 말이 없었던 이 괴상한 두 사람에게 서비스 음료라도 줘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원조교제라도 하는 줄 알았건만 가까이서 본 두 사람은 꼭 닮은 푸른 눈에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형과 동생, 아니면 삼촌과 조카? 도저히 이렇게 어색해할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미팅에 끌려나온 새내기 대학생 마냥 굳어있는 두 사람을 곁눈질로 보면서 그녀는 빗자루를 가지고 깨진 유리들을 쓸어냈다. 미끄러진 안경을 치켜올리며-damn it, 이제 보니 꽤나 멋진 남자였다- 성인 남자쪽이 난처한 푸른 눈동자로 정중하게 말했다.
"어 그리고, 새 음식을 주문해도 될까요?"
"전 그냥 먹어도 괜찮은데요."
그녀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꽉 굳어있던 소년이 빠르게 말했다. 이건 확실히 형에게 말을 건네는 동생이라기보다는 상관에게 사죄하는 부하같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년에게 격려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두 분이서 같이 드실만한 메뉴판을 갖다드리죠. 보통 패밀리 메뉴는 4인분이 기본이지만 2인용이나 3인용 메뉴도 준비하고 있거든요."
요즘은 싱글맘이나 싱글파더 분들도 많으니까요, 사람좋게 거기까지 말하고서 웨이터는 눈 앞의 두사람이 뱀앞의 개구리처럼 꽉 굳어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제..제가 무슨 실례되는 말이라도 했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안경을 밀어올리며 성인 남자쪽이 말했다. 이제 그는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소년은 아예 야단맞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불쌍한 웨이터는 울정도로 당황해서 황급히 메뉴판을 갖다주고는 도망치듯 테이블을 떠났다. 그녀의 1년 2개월의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이렇게 이상한 손님들은 처음이었다.
"죄송해요. 거의 못 먹었는데."
"괜찮아. 다른 메뉴를 시키자. 뭐가 좋을까?"
"..좋은 걸로 고르세요."
코너는 기운 없이 말했다. 영 저스티스의 팀원들이 봤다면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움츠러들고 힘없는 말투였다. 클락은 똑같이 당황하고 지친 채 그를 보았다.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은 채 내리깐 푸른 눈. 솟아나오는 한숨을 억누르면서 클락은 평생분의 용기를 쥐어짰다.
"이쪽 메뉴에 맛있는 게 많더구나. .....어, 음, 가족할인도 된다고 하고."
브루스가 들었으면 어처구니 없어했을 정도로 어색한 말투였다. 클락은 자신이 바보가 된 것같다고 생각했다.
클락이 멍청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는 동안 코너는 테이블보 아래에서 자기 무릎을 꽉 쥐고 있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할인이라는 단어 앞에, 그건- 코너는 떨리는 심장을 감추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는 똑같이 평생분의 용기를 쥐어짜서 고개를 들었다. 눈 앞의 남자는 안경 너머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분명히, 처음봤을 때 보다 더 온화해진 눈이었다. 코너는 당황해서 메뉴판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전 으깬 감자가 좋아요."
한참만에 그렇게 말했을 때, 눈 앞의 남자가 온화한 웃음을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