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뉴 리터너가 인간들 사이로 보내져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리본즈가 그녀를 그들 사이로 보내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장본인인 아뉴는 자신이 인간들 사이에 섞여들어야한다는 것을 다소 불쾌해했지만 마지막에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짜증나.'이노베이터로서의 기억을 받기 직전 그녀는 장난스레 말하고 다정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다녀올게, 리바이브. 내가 뇌양자파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너무 괴롭히면 안돼?>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온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가볍고 밝았고, 사랑스러웠다.
떨어져있어도 헤어져있어도, 그녀는 나의 일부였다. 내가 그녀의 일부이듯이. 같은 것을 나누어갖고 태어난 이노베이터였기에 그녀는 나였고, 이어진 의식 속에서 아뉴와 직접 대화할 수는 없어도 그녀가 겪은 것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인간 '아뉴 리터너'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이행했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갔다. 우수한 CB의 일원. 적극적으로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착한 성품의 선량한 여자. 평범한 인간 여자. ..그리고 그 평범한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다소 당혹했을 따름이다. 인간으로 내려간 그녀가 어떤 감정을 겪든, 누구를 만나든 그녀는 여전히 나와 이어져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나의 반신이었다. 그저 나중에 아뉴가 어떻게 이 기억들을 받아들일지 흥미로워하면서 이따금씩 전해오는 그녀의 의식을 전해들었다.
"나에게 손을 대면 인질의 안전은 보장 못합니다. 같은 타입인 저와 아뉴는 사고를 이을 수 있으니까요."
- 즐기고 있구나? 리바이브.
- 약간은. 기분은 어때?
- 다소 난감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도 큰일이고.
그녀의 기억을 일깨워 이노베이터 아뉴 리터너를 되찾았을 때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당혹스럽게 쳐다보는 인간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웃음이 묻어나오는 아뉴의 의식을 들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총구의 감각이 전해왔다. 그녀의 팔에 붙들려있는 어린 CB의 소녀는 가볍게 떨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인질을 별로 헤치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수도 있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아직도 인간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거야?
- 그렇지는 않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당신도 잘 알잖아.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는 나와 같았다. 그녀는 나의 동류였다. 그래서 그 남자를 만난 아뉴의 내면에 망설임이 묻어나왔을 때도 의혹은 쉽사리 잠재울 수 있었다. 인간들을 입에 담는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차갑게 싸늘했고 희미한 우월감이 배어있었다. 그녀가 총구를 놓쳤을 때조차, 그녀가 당황해하고 있었을 때조차 그녀의 내부의 '이노베이터'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단지 거기에 아주 작은, 아주 작은 낯선 감정이 섞여들어있었을 뿐. 그래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고 있어, 라일.>
언제나 이어져있던 의식의 한구석을 그녀가 닫아버렸음을 알았을 때, 애써 자신은 그 것을 무시했다. 내부가 아닌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으려했다. 그녀와 동조하며 그녀 내부의 변함없는 감정들을 마주했다. 안도했다.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그녀가 몰아넣었던 감정들을 잊었다. 마주닿은 그녀의 의식은, 대답을 돌려주는 아뉴의 목소리는 변함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따금씩 아뉴가 흔들릴 때 새어나오는 감정의 파편들이 애닮은 애정에 젖어있음을 알았어도, 그녀가 그 것에 당황하면서도 그 감정들을 경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나의 일부였다. 변할 리가 없었다.
- 뭔가 문제라도 있어?
- 리본즈. ..아뉴를 여성형으로 만들지 말아야했어.
- 불만이라도? 그녀를 잠입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어.
- 그래도..
아뉴에게 성별을 부여하지 않았으면 쓸데없이 인간에게 흔들리지 않아도 되잖아. 차마 형태로 만들지 못하고 숨겨놓은 의식을 리본즈는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상위에 있는 그에게 감정을 숨기는 것은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신경쓴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살짝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모른 채하고 대답했다.
- 신경쓰지 마. 어차피 인간같은 건 대수롭지도 않은 거니까.
- ...
- 그렇게 걱정되면 함께 가는 게 어때? 아뉴의 손으로 그 남자를 끊어내라고 하면 그만이야.
- ..그만둬, 리본즈.
- 힐링도 함께 보내지. 선전하고 와.
동조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그의 마지막 말에 심술궂은 미소가 배어있음은 싫어도 느낄 수 있었다. 짜증나는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말을 전달받고 있을 아뉴의 의식을 느껴보았다. 사명감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안에 당혹과 불안이 스며있었다. 그리고 아주 옅은, 옅은 그리움.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떠올리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라일 디란디'. 그 동안의 아뉴를 반추해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남자를 처단하는 장면을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악취미다, 이건. 그녀는 지금 이상으로 슬퍼하겠지. 그따위 인간때문에. 비참한 기분에 머리를 감싸안았다.
- 너무 멀리 가지는 마.
- 무슨 소리야? 건담을 떼어내는 게 내 역할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그녀의 기체는 멀어져갔다. 그녀의 의식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아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직접 느낄 수 있기에 장본인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아뉴는 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아뉴 리터너. 그녀를 쫓아가려던 기체를 되돌려 다른 마이스터들과 대치한 것은 전장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뉴가 스스로 그 감정을 끊어내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어린아이같은 고집을 부렸다.
대치한 두 기체가 끌어안듯이 마주하고, 부서져나간 콕핏에서 아뉴는 자신을 겨냥한 남자를 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같은 그녀의 마음에 가득찬 말이 넘쳐흐를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라일. 라일. 라일. 미안해요. 나, 당신을. 당신 곁에서. ..라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동조하기 위해 보낸 의식은 그녀의 거절 속에 되돌려보내졌다. 사뭇 미안한 듯 그녀가 짧게 내 이름을 불렀다. 리바이브. 미안해요. 소리도 되지 않은 선명한 의식은 그렇게 박혔다. 비명이 나올 것같은 것을 억눌렀다. 그래서 콕핏에서 몸을 빼내던 그녀의 의식이 리본즈에게 삼켜들어갔을 때, 자신은 차라리 안도하고있었다.
섬광과 함께 가뎃사의 콕핏을 입자 빔이 꿰뚫고, 부서져나간 파편이 떠도는 전장 위에 리본즈의 것이 되어야할 기체가 빛을 뿌리고 간 후에, 닫혀있던 그녀의 의식이 열렸다.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는......
그녀는.
- 아뉴가 당하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야.
- ...
- 도대체 그 솔레스탈 비잉은 어디까지 우리들을 방해할 참이지?
- ...
- 정말이지 난 처음부터 싫었다구, 왜-
- ..입 다물어, 힐링 케어.
- 지금 뭐라고 했어?
- 닥치라고 했다.
- 넌 분하지도 않아? 아뉴는 네 동질 타입이라구? 네 파트너가 그렇게-
- 닥쳐..!!
- 리바이브, 잠깐-!
정신세계는 강제로 닫혔다. 예상치도 않게 거절당한 힐링의 당혹감이 전해왔지만 리바이브는 개의치 않고 그를 밀어냈다. 닫아버린 의식 속에서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막을 수 없는 공허함이, 텅빈 괴로움이 거기에 있었다. 브링을 잃은 디바인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그와 제가 원하는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던 힐링은 거의 얽히는 일도 없었다. 그런 힐링이 장난스레라도 말을 걸고 싶어했을만큼 그의 침묵 밑에 가라앉아있던 감정은 불쾌했다. 더블오라이저와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 그가 느꼈던 감정의 폭풍은 가까이있던 자신에게도 전해져왔다. 갑작스러운 상실과 분노. 괴로움. 하위종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그 자신조차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그 모자란 감정들은 지독하게도 예리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는 행복했다. 브링도 디바인도 그 자신을 잃지는 않았다. 손을 말아쥐며 리바이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는 나를 버리고 그를 택했어, 아뉴 리터너.
전쟁터에 빛의 입자가 가득 찼을 때 아뉴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해온 그녀의 감정이, 배신이 믿을 수가 없어서 의식을 닫으려는 순간에 그 것이 동조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뉴 리터너는 리바이브 리바이벌과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빛에 의해 이어진 것뿐이다. 그녀의 의식은 사라지기 전 이미 동류인 자신을 잘라냈다. 미안해요. 당신을 버려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한 목소리는 그런 의미였다. 인간에 대한 경멸보다도, 이노베이터의 프라이드보다도 그녀는 그 남자를 택했다. 가슴의 빈자리는 아뉴가 살아있었어도 메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뉴."
인간들처럼 소리내어 중얼거린 그녀의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낯설었다. 최후의 아뉴 리터너 또한 그렇게 낯설었다. 자신은 마지막으로 들렸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의식을 닫을 수도 없었다. 지역을 메운 거대한 빛의 바다가 연결한 강제적인 의식의 동조에서는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이어진 그녀의 마음이 잔잔한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인간 남자와 이어진 채, 울 것같은 슬픔에 떨면서도 그에게 닿았다는 행복감에 떨고 있었다.
"...바보같은 여자..."
입밖으로 낸 목소리는 잔뜩 흐려져있었다. 너무 놀리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되돌아오던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언제까지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미 떠나버린 반신은 자신의 원망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목소리가 괴로워 손으로 눈을 덮었다. 어두워진 시야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빛들이 있었다. 같은 이노베이터의 것이다. 이어져있는 그 동류들의 빛 속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fin.
03. 月が泣く(달이 운다) / あなたへの月
20화 본편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았지만 자기 반신을 눈뜨고 잃어버린 리바이브도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가공할 디란디가의 위력. 똑같이 반신에게 단절당했어도 리본즈를, 이노베이터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리제네와 달리 뼛속까지 이노베이터인 리바이브는 엄청 당혹스러워할 것같아요. 리제네 참 별나긴 별나구나..
아뉴가 라일에게 남긴 말, '私たち、解り合ってたよね?'를 참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했어요. 당신도 나를 이해해주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어요. 서로 이어져있었어요. 거짓이 아니었어요. 우리들, 서로 사랑하고 있었죠? 의식 단계에서부터 이어져있는 리바이브는, 이노베이터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解り合う。정말 마지막 순간의 아뉴는 인간이었네요. 리바이브 불쌍해..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