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그 푸른 빛 안으로 뛰어내려 영영토록 살 수 있기를.
1.
소녀는 거리에서 살았다.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었다. 종이상자로 지은 집은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고 더위를 피하게 하지도 않았다. 비가 내리고 몸이 젖어들어 추위 속에 움츠러드는 동안에도 소녀는 맑은 눈을 잃지 않았다. 길을 걷던 한 부유한 사람이 그 눈을 보고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다. 거리를 벗어나 옷을 바꿔입고 단장을 하게 되어도 그 눈은 바뀌지 않았다. 노래를 시작해야지. 내가 알고 있는 노래를.
2.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가 출항한다. 오사카에서. 간소한 짐을 꾸려서 배를 향했다. 고기잡이 어선같이 생긴 배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선창에 서 있었다. 넘두실거리는 푸른 물 위에 떠 있는 배는 적지않음직하게 낡아있었다. 패스포트를 가져왔나 싶어 주머니를 뒤적인다. 나의 것이 나왔고 다른 하나가 더 있었다. 학교의 여자아이의 것이다. 그 아이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득 깨달았다. 그 아이에게는 바보 오빠가 있었고, 그 치는 엊그제 내 주변을 뱅뱅 맴돌며 내 물건들을 만져보려 애썼던 것같다. 이대로 들고 돌아갈까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었다. 이 여권이 없어서야 이 나라를 떠나 어디에도 갈 수 없지 않은가. 선착장에 서 있는 이름도 잊은 친구에게 이 것을 그녀에게 전해주고마, 하고 부탁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것을 받았다. 돌아가자. 배 위로 뛰어 올랐다. 배에서 일하는 듯한 후줄근한 차림의 소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다 했어.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런, 돈을 바꿔오지 않았네. 저쪽에서라고 못 바꿀 것은 없지만. 물살이 흔들거리는 동안 배는 선착장에서 적지않이 떨어져있었다. 가방을 맨채 뛰어서 건너려다 몸이 휘청했다. 안되는데. 가방을 먼저 선착장 쪽으로 힘껏 던진다. 힘이 부족했는지 가방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안돼는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맑고 차가운 연녹색 바다물 속으로 수직으로 뛰어내린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짜릿하다. 가방을 건져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가자 같이 뛰어들었던 소년이 황당한 듯 쳐다본다. 씨익 웃어주고 만다. 선원과 선착장의 사내들이 호탕해서 좋다며 껄껄 웃었다. 환전소까지 걸어올라가 물에 젖은 돈을 바꾸었다. 10만엔은 남겨두고 잔돈을 다 털어 7만엔만 바꾼다. 오늘자 환율은 제법 높고 시간은 다섯시 언저리. 나는 돌아간다. 벅차오르는 기분에 발을 까딱이며 창구 입구에 기대었다.
3.
친구의 집을 찾았다. 친구의 집은 폐허가 되어있다. 너른 정원에 괴물이 오간다. 쓸쓸한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