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끄러움에 가득찬 옛날 일기를 꺼내 읽었습니다. 지금도 부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일테지만 OH 초등학교 6학년 OH이 쓴 일기는 어찌나 유치찬란하고 자기애가 가득한지 진짜진짜 읽다보면 손발이 오글거리다못해 사라질 지경입니다. 그래도 꽤 흥미진진한 것이 일단은 과거 기록이다보니 그 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씩 적어놓은 당시 상황같은게 약 10년이 지난 지금와서 보면 무지 신기해요. 미국이 이라크 침공했다고 투덜거리는 말로 써놓은 거라든가 대구 지하철 참사때문에 슬프다고 쓴거라든가. 기록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2. 기억은 참 변질되기 쉬운 건가봐요. 지난 1년? 2년? 3년? 며칠이나 되었는지. 전 2003년 1월 15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제 햄스터가 눈감았던 날이. 일기를 뒤져보니 1월 21일이더라구요. 오후 한시 반. 언제부터 15일로 바꿔서 기억하게 된 건지.. 기록이 없었다면 기억하지 못했겠지요. 참 신기한 기분.
3. 띵이가 우리집에 온 게 2001년 봄인지 2002년 봄인지 아직도 헷갈립니다. 아마 2001년이 맞을거라고는 생각해요. 햄스터를 준 언니가 6학년이었던 것같거든요. 저보다 한살 많았고. 2001년 5학년, 2002년 6학년, 2003년.. 중학교 들어가기 전 1월 21일이었네요. 두살 반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부분의 기억은 착각이고 한살 반이었을까요. 그 때쓰던 일기를 한번 날려버렸기 때문에 언제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떠난 날은 기억을 하고 있네요. 흐려지기도 하고 잘못되기도 했지만.
4. 일본에서 사귄 베트남 친구와 타이친구가 각각 한국에 놀러오기로 했습니다. 같이 돌아댕기려면 좀 바쁘기도 할 거고 빡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즐거울 것같아요. 저는 별로 성격이 좋은 편도 아니고 인내심도 없는 편이라(친구들과 여행했을 때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잘 대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많이, 즐겁게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은 먹거리부터, 흥흥흥.
5. 내일은 뭔가 소개팅을 하게 될 것같습니다. 통산 두번째. 자존심은 쎄도 자존감은 없는 터라 예의 "왜 나를 좋아해요?"가 발동될락말락하는데 그냥 웃으며 만나볼랩니다. 좋으면 친구가 되면 되는 거고, 뭐 그러는 거죠 뭐. 흥흥.
6. 4번이랑 5번때문에 한껏 신났었는데 애기 생각을 하는순간 순식간에 다운. 한번만 안아도 봤으면, 한번만 놀 수 있었으면, 미련은 산처럼 남아서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또 울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냥 그 마음이 퇴색되는게 불안할 뿐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했었다고, 여전히 영원이고 보석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는데 한편으로는 생각해요. 햄스터 한마리지 않았냐고. 2년 좀 넘게 같이지낸 것뿐인데도 그렇게 매달리고 기억하고 있어서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도 생각해요. 그 애는 여전히 영원이라고. 손안을 꽉 채우던 온기와 심장소리와, 똘망한 작은 눈과, 사랑했던 모든 것. 사랑했던 모든 것.
7. 아기와 강아지를 참 좋아하고 동물들도 좋아해요. 그 원점에는 아마 그 애의 심장소리가 있을 거에요. 빠르게 뛰고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행복해서 죽을 것같았던 모든 시간들. 여전히 여전히 사랑하는 아기라서, 그 애와 같이 있던 시간들이 여전히 소중했으면 합니다. 사랑했으면 합니다.
8. 언제고 독립을 하면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에요. 고양이도 생각해봤고 그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저는 제 이기적인 사랑을 다 퍼부어줄 상대를 여전히 찾고 있어서 강아지쪽이 좋을 것같다고 생각했어요. 꼭 끌어안고 심장소리를 듣고, 나를 사랑해주는 눈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동물들이란 어쩌면 그렇게 솔직하고 한결같고 예쁠까요. 사람보다 먼저 떠나지만 않아준다면 언제까지나 행복할텐데. 행복할텐데.
9. 또 무슨 이야기를 쓰려고 했더라... 한국에 돌아가면 책을 실컷 읽고 싶습니다. 영화도 실컷보구요. 취하는 것도 노력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좋습니다. 느낀 짜증이나 슬픔같은 건 잘 싸안아서 녹여버리고 더 좋은 것들은 남겨둘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바램으로 끝날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저에 대한 자신감이랑 책임감도 좀 가지구요. 매일매일이 배움의 연속이고 반성의 연속이지만.
10. 으아아, 웃으면서 쓰려고했는데 추억은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네요. 사랑스러워서 울뻔했던 그 날들이 지금은 정말로 울게 만듭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인형을 끌어안고 자야지. 맞다, 한국에 돌아가는 날을 2월 5일로 확정했어요. 짧고도 길었던 교토 생활도 이제 안녕. 여기서 배운 많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