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래 12월 8일의 쓰다만 일기였는데 11일 일기로 재활용. 8일 내용은 와카 이야기가 다에용.
2. 월식을 보고 왔습니다. 11년 만이고 다음 월식은 또다시 7년 후. 10시 언저리부터 기숙사 옥상을 토끼굴 드나들듯이 뛰쳐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 체감온도 -10도라는 한국에 비하면 아직 한참 따뜻합니다만 그래도 츄리닝 바지에 반팔 차림으로는 좀 추워서 처음에는 코트 입고 나갔다가 나중에는 아예 전기담요를 두르고 나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식긴 했지만 참 따뜻했습니다.
3. 9시 반언저리만해도 하늘에 구름이 살짝 있었는데 바람에 죄 쓸려가고 월식이 절정일 때쯔음에는 밤하늘이 정말 맑았습니다. 달빛이 점차 줄어들고 불그스름해진 어두운 달 주변으로 흰 별들이 하나둘씩 선명해져서는.. 구름한점 없는 하늘에 흩어진 별이며 붉은 달이며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현실이 아닌 것처럼 맑고 예뻤어요. 차가운 공기가 서늘하게 흐르고 그 위로 흩어진 별, 별, 별. 그리고 또 붉은 달. 목을 직각으로 꺾다시피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보면 볼 수록 얼마나 거짓말 같았는지요. 저 빛 하나하나가 다 별이고, 또 달이고.. 새삼스럽지만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또 하염없이 실감했습니다. 7년후에 이 월식이 다시 올 때가 되면 서른살이 다된 저는 뭘하고 있을까 생각도 하고. 옛 사람들이 하늘을 동경하고 또 두려워한 이유를 알 것같아요. 이렇게도 신비스럽고 멀고 또 가까운데 얼마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겼을지. 평소에 잘 올려다볼 일이 없는 하늘인만큼 실컷 만끽하고 들어왔습니다. 사진으로 남겨두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같아요.
4. 내일은 발레를 보러갑니다. 학교 친구가 티켓을 줬거든요. 발레 스튜디오의 발표회라고하는데 팜플렛도 티켓도 엄청 재대로된 거라서 깜놀했습니다. 처음보는 발레라 기대가 큽니다. 헤헤. 뭔가 교토에와서 문화 생활을 엄청시리 반끽하는 기분이 들어요. 성실한 학교 생활과 등가교환중입니다. 발레도보고 야경도보고 여행도 하고 유적지도 가고 등등등등. 인생에서 휴가가 있다면 이 교토에서 다 쓰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해질 정도입니다. 돌아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orz
5. 3~6일에 걸쳐서 윤이 놀러왔었어요. 교토와 오사카와 USJ를 한꺼번에 쏘다니고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쏘다니고 저녁에는 영화를 꼬박꼬박 보고(+츄하이와 간식도 함께). 도쿄 윤네 집에서 14박 15일을 보낼 때도 그랬지만 둘이 같이 있으면 참 편한 걸 넘어서서 느긋해져요.. 오사카 첫날은 아침 9시 반 기상 11시 출발(...), USJ를 가던 둘째날도 10시 반 출발(...) 오전 여행 그건 뭔가요 먹는 건가요?
6. 쓰다보니 자세히 남겨두는게 미래의 나를 위해 좋겠다 싶어서 쓸 준비 타닥타닥. 이미 많이 까먹어서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음.
7. 12월 4일에 윤이 왔습니다. 교토 여행 첫날. 한마디로 축약하면 정말 헤맨 여행이었습니다. 평범한 길을 구불구불 돌아가기를 하루종일 했던 교토여행. 윤은 아침 10시 21분 신칸센, 교토역 도착. 저는 전날 준비한 대로 노트북 가방에(여행에 노트북을 챙겨가는 이유가 영화때문인 여자) 옷 몇가지 넣어서 아침 10시 10분쯤 출발. 더 일찍 나오려는데 호텔 위치를 체크 안해뒀다싶어 그거 체크하다가 좀 늦어졌어요.. 버스가 역에 도착한 건 10시 40분쯤. 여기서 저는 아무 생각없이 지하철 역을 지나서 뒤쪽 하치오구치 입구까지 돌아갔다가 거기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신칸센 중앙출구에 있던 윤을 찾아냈습니다. 오른쪽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바로 갈 수 있다는 건 여행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알았음(...) 윤을 보자마자 반가움 작렬에 덥썩부빗 와아와아 작렬. 그리고 짐은 교토역 로커에 처넣고 여행 출발. 500엔 패스를 끊어서 바로 도후쿠지로 고고씽.
8. 단풍 마지막 날이었던지라 인파가 쩔었습니다.. 무서운 일요일의 교토. 다행히 단풍도 예뻤던지라 느긋하게 봤어요. 입장료 400엔을 치르고 들어서자마자 사진찍기를 작렬한 저. 진짜 사람 많아서 꽉곽 차 있었습니다. 메지로랑 한번 갔던 적이 있었으니 어설프게 가이드 시늉도 해보려했지만 예쁜 단풍 앞에서는 말이 필요없지요. 느긋하게 보면서 마구 걸어다녔습니다. 즐겁즐겁. 나와서는 야키모치를 사먹으며 청수사로 이동하는 버스..를 찾았는데 도후쿠지 뒷문으로 나오는 바람에 정류장까지 한참 걸었던데다 아무 생각없이 직감에 의지해 이동하는 바보짓을 저지르므로써 또 헤맸다는 게 안 자랑orz 깨달았습니다. 저는 쩔어주는 길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윤도 저 못지 않은 길치라는 걸..orz
9. 청수사 도착해서 일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커피 딸린 덮밥 런치를 우적우적 먹는데 어라 너 이렇게 여유로워도 괜찮은 거니?를 서로에게 물어가며(그래도 어디까지나 여유롭게) 냠냠냠. 먹고나서 살짝 비가 왔어요. 낮에는 맑았는데 오후부터 비가 왔다 안왔다를 반복한듯. 청수사 절반쯤 걸어올라가다가 인력거를 보고 괜히 분위기 타서 타봤습니다. 타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재밌었고 즐거웠고. 인력거 탄 바람에 다른 루트로 돌아섰으므로 산넨자카-오미아게미치를 건너서 청수사까지 다시 고고씽. 거기서도 보고 수다떨고 수다떨며 걷기걷기. 인파가 조금만 적었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좀 아쉬웠어요. 청수사 보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 점이란 기념품점은 다들리면서 느긋하게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청수사 올라오는 뒷길에서 유리세공점에서 우디와 어울릴 것같은 크리스마스 유리장식에 눈이 뒤집혀 둘다 돈을 좀 쓴터라+인력거 비 크리로 기념품은 별로 안샀어요. 일전에 후시미이나리에서 샀던 금전운을 불러온다는 쪼매난 여우세공을 윤한테 줬는데 윤이 답례로 고양이를 사줬습니다. 둘다 지갑에 넣어뜸. 헤헤.
10. 청수사 다보고나서 나오면서 길을 대체 어떻게 걸어간건지 네네노 미치를 지나 야사카 신사를 지나 마루야마공원 끄트머리에 들렀다가 기온거리로 내려가서 그 거리를 구불구불구불구불 헤맨 끝에서야 교토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날 최소한 5km는 걸은 것같더라구요..?; 그렇게 먼 길이 절대 아니었는데. 한군데정도 더들릴까 했는데 이미 저녁이어서 교토역으로 돌아가 야경을 만끽하고 오사카로 갔습니다. 둘다 호텔 위치는 모르는 상태(...)였습니다만 오사카역에서 역관님께 주변 지도를 달라고 했더니 간단하게 해결. 씩씩하게 걸어서 기타우메다에 도착, 체크인하고 씻고 기모노스러운 잠옷으로 갈아입은다음 둘이 침대에 앉아 사이좋게 영화감상을 시작했습니다. 만화도 봤고. ..."우리 오사카까지 와도 하는 짓 별로 안바뀌네.." "그렇지 뭐.." 아마 인도 오지에 날아가도 저녁에는 컴퓨터를 할 거에요 윤이랑 저는..orz 체크인 하기 전에 편의점에서 사온 츄하이를 마시면서 안주로 녹차경단을 먹었습니다. 맛있맛있.
11. 으 여기까지 쓰니 지쳤다......orz 그냥 오사카부터는 사진을 올릴까봐여. 간략하게만 쓰자. 아침 일찍이랄까 적당히 일어나자고 했지만 결국 9시 반까지인가 잤습니다. 알람은 8시부터 해놨는데 깸-윤이 아직 자네? 더 자자-자다 깸-윤이 아직 자네? 더 자자를 반복한 게 한시간 반이라는 게 유머.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었습니다. 양식을 택하고 쳐묵쳐묵. 맛있었지만 이 내용물로 800엔이란말인가.. 하면서 깊은 고뇌.하지만 크림빵 맛있었어요. 둘째날도 양식으로 먹었는데 옥수수스프가 나왔던 둘째날이 더 좋았습니당. 밥먹고 오사카역까지 걸어가서 거기서부터 주유패스를 끊어 돌아다녔습니다. 아쿠아라이너- 오사카성 - 역사박물관 - 난바 도톤보리 - 통천각 - 헵파이브 관람차 - 우메다 스카이빌딩을 차례로. ..음? 딴데도 돌았었나..
12. 둘째날 특별히 재밌던 것 두가지. 12시 반쯔음에 아쿠아라이너를 타러 어여어여 갔었는데 오사카홀 앞에 열라아아아아아 긴 줄이 서 있었어요. "설마 저거 아쿠아라이너 줄 아니지?" "서..설마;" 둘다 공포로 얼어붙어서 이동했는데.. 으아니, 2PM 콘서트를 기다리는 관객 줄이었습니다. 어쩐지 유도 표지판에 한글이 같이 써있더라.. 굿즈 하나에 2,3000엔씩 하는 표지판을 보며 아이고ㅠㅠ 를 연발. 때아닌 한류붐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재밌던 건 통천각 보러갔을 때. 저 이날 하루종일 OSAKA 100배 즐기기라고 써있는 책을 가슴에 안고다녔는데 쟝쟝요코쵸역인가 그쪽으로 내렸었거든요. 아저씨들이 퇴근하면서 한잔 걸치는 그런 길인데다 인적도 드물어서 치안이 안좋은가 불안불안하면서 갔었는데 통천각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타는 아저씨할아버지가 계속 저한테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시는 겁니다. 뭐..뭐지? 하고 불안해했는데 아저씨는 웃고 계시고.. 자세히 보니 삿대질하는 손가락은 총모양. 머리 속이 번뜩 하면서 으윽, 하고 총맞아 쓰러지는 시늉을 했더니 아저씨 할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고 웃으면서 지나가셨습니다. ...이거시 오사카!!!! 아마 제가 오사카가 쓰인 책을 안고 있어서였겠지만 오사카답다싶어서 엄청 기뻤어요. 과연 오사카, 길거리에서 총쏘는 시늉을 하면 쓰러지는 시늉을 해준다는 게 사실이었어..!! 쓰러지는 시늉을 한건 나지만..!!!
우메다 스카이에서 만난 할머님할아버님 단체 관광객도 엄청 소란스럽고 엄청 귀여우셨어요. 엘레베이터에 타고 야경이 보이자 "어머나 예뻐라~!"를 연발. 할아버님이 저와 윤을 보시더니 "예쁘구만~ 아가씨들 말고 야경이!" 하고 껄껄, 옆에서 다른 분들이 속공으로 "어이 아가씨들도 예쁘다고 해야지!!" 라며 츳코미. ..이거시 오사카!!>
13. 아 일기 너무 길어.. 쓰기 귀찮아..ㅠㅠ USJ랑 둘째날 여행기는 나중에 다시 쓸래요. 손가락 아프다 헤헤 이하는 12월 8일날 썼던 와카 이야기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덕후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따
14. 와카 645번. 오늘 배웠던 와카의 뒷 이야기(?)가 열라 재밌었으므로 좀 기록해봅니다. 이 와카의 배경설명이 죵니죵니 긴데 일어를 생략하고 적으면 이렇습니다.
"모모라는 사람이 이세 지방을 다녀간 때에, 무녀가 될 여인에게 몹시도 조심스레 들려, 다음날 아침에는 왔던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이후 여인이 보내온 노래입니다."
무녀=斎宮라는 직책인데, 신에게 몸을 바치는 신관같은 직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남성과의 사귐도 없어야 할 터인데 금기되는 일을 저지른 겝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가 떠나고 나자 그 당혹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쓴 와카가 이 것.
君やこし我やいきけむ思ぼえず夢かうつつか寝てかさめてか
(키미야코시와레야이키케무 /오모보에즈/유메카우츠츠카네테가사메테카)
그대가 오셨는지, 제가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깨어있었는지 잠든 채였는지조차.
"당신이 온 건지 제가 간 건지 알 수가 없네요. 꿈이였는지 현실이었는지, 자고 있던 거였는지 일어나있었는지..." 불안하고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그대로 보이는데다 여성이 남성에게 보낸 사랑노래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배우는 저로서는 저런 남한테 알려지면 안될 노래가 어떻게 이렇게 고금와카집에 실릴 지경이 된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잌ㅋㅋㅋㅋㅋ 이거 스캔들감이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서 열라 재밌었어요. 저 이후의 두 사람의 행보가 궁금해서 귀를 쫑긋세우고 들었는데 저 노래에 대한 남성의 답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새카만 마음 속 어둠에 현혹되고 말았습니다.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는 세상 이들에게 맡겨두지요."
해석등등은 차치하고 한가지만 꼽아보면, 저 '세상 이들'이라는 건 해석이 둘로 갈리는데 첫번째는 평범하게 세상 사람들이고 두번째는 여성 본인을 의미하는 거라고 합니다. 으악 이 자식 일 저질러놓고 회피하는 것도 모자라 여자한테 맡겨두냨ㅋㅋㅋㅋㅋㅋㅋ 쪼잔햌ㅋㅋㅋㅋㅋㅋ 하고 즐겁게 웃었다는 이야기. 저만 웃긴가여..
2. 이 와카를 배우면서 키누기누노즈카이라는 표현을 배웠습니다. 한자로는 衣衣, 혹은 後朝라고 씁니다. '다음 아침'이라는 거나 '옷과 옷'이라는 게 의미심장해서 재밌지 않아요? 남녀의 연애가 여성의 집에 남자가 와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던 고풍스러운 헤이안 시대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하룻밤을 보내고나서 다음날 와카를 보내어 이 남자와 연애를 계속할지 말지를 정할지를 정하는 풍습이래요. 이 키누기누노즈카이를 재대로 쓰지 못하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고. 열라 고풍스러워..! 하면서 학구적인 의미에서 우왕 재밌구나하면서 들었는데 그걸 말하시는 교수님이 계속 곤란해하시면서 사전을 찾아보세요, 아니다 안 찾아보는게 나은가.. 하고 쩔쩔매셨던게 마이 귀여웠습니다. '키누기누, 즉 옷자락과 옷자락이 겹친다는 뜻입니다. 그냥 겹치는 게 아니라요...(침묵.) 말 안하는게 나을까요?ㅜㅜ'로 이어지시는뎈ㅋㅋ 마이 귀여웠습니다.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