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AX의 노래는 화장을 고치고였지요. 싱기방기한 것이 어린 시절에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었었어요. 이 노래가 20대 중후반의 여성들에게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자기들의 지나간 세월을 생각나게 해서라는 그런 기사. 지금 생각하면 전형적인 홍보용 기사인데 어릴 때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아 그렇구나! 20대한테 인기 많은 곡이구나! 하고 믿었더랬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A라면 무작정 A라고 믿는 성격은 여전합니다만 그래도 어린애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있었구나 싶어졌어요.
2.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한 건 금요일 수업시간에 봤던 쉬리 때문에. 감상을 이미 썼던가? 총 세번 봤습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한번은 여기 와서 여름에, 한번은 일한교류사 수업시간에. 어릴 때는 그냥 사랑하는 연인끼리 총을 겨누고 서는 슬픈 영화였는데 나이들어서 보니까 훨씬 세밀한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엉기어있는 관계라든지 배경이 어찌나 복잡한 기분이 들게 되던지요. 나라의 분단이나 빈곤이나 싸움이나 사랑이나.. JSA가 제작하면서 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가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며 만들었는데 정상회담이 체결되면서 다행히 대규모 개봉이 되었다던 인터뷰를 읽었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심스럽구나 싶기도 하고.
3. 각본이 진짜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어서 감탄했어요. 요즘 영화보다보면 연출이나 화면은 화려한데 서사 구조가 허리가 동강나있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영화 중간에 빨리감기한 조선 명탐정 잊지 않게따) 툴툴거리게 되는 때가 많은데 연결 구조 확실하고 빈틈없이 꽉 짜여져있어서 보는 내내 배부른 느낌이었습니다. 이방희하고 최민식(미앙 이름이 기억 안난다..ㅠㅠ)를 쫓는 장면에서 차에서 내린 동료+한석규가 눈 마주친 바로 다음 장면에서 중간 건너뛰고 각자 쫓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거랑 초반에 밑도끝도 없이 던져놓은 북한 특수부대의 훈련신은 한번만 봐서는 딱 눈에 들어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음 덕후같다.. 근데 확실히 '한국인'하고 그 외의 국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이해도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무래도 장본인 같은 세대라서리.
3. 여기까지 써놓고 28일까지 방치했다가 이어서 쓰는 일기입니다. 할 일이나 적어야지 싶어서 켰다가 또다시 중얼중얼하고 싶어서 타닥타닥 두드리는 중. 주말에는 윤이 놀러옵니다. 엣헤이! 그 전에 해야할 일은 김치 사놓고 물 사놓고 외박 허가서 받고 방 치우고 빨래하고 숙제하고 등등등. 말을 보시면 알겠지여 네. 있는 힘껏 미룰 수 있는데까지 미뤄놓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느긋하니 좋았사와유.
4. 기숙사비도 냈어요. 한달을 기다렸는데 내기 직전에 1500원으로 올라뛴 환율 네놈 잊지 않겠다 오체분시 해주마. 음 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시티은행까지 반은 헤매고 반은 찾으면서 달려가 뽑은 4만 5천엔. 룰루랄라 하면서 집에와서 돈이랑 합쳐보니 얼라? 생각보다 적네? 응? ...다음 월급(=장학금) 나올때까지 천엔으로 살아야하는겨?
..그리고 열심히 가난뱅이 모드로 들어가 한달 내내 가슴살만 먹을기세로 닭가슴살을 잔뜩 질러왔는데 그걸로 요리를 두번 해보기도 전에 때맞춘 장학금이 들어왔고 가난뱅이 모드로 지내겠다며 부푼꿈(?)을 안고 있던 망상도 피시시 무너졌습니다. 툴툴툴.
5. 음 또.. 아 지난 주말에 단풍구경 다녀왔어요. 동창회에서 초대받아서 데마치야나기에서부터 출발. 가려고 했던 장소가 딱 일본 tv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곳 베스트 1로 꼽힌지라 사람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절반은 수다로 보내고 절반은 산 올랐으며 덤으로 붙어온 100%는 oh 쿄요리 oh로 채워진 하루였습니다. 단풍은 사실 쬐끔 물이 덜 들었던 것같아요. 날씨가 추워져서 그랬나 울긋불긋함은 아직 절반정도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산속의 신사도 예뻤고 씽나서 산자락을 오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여주인께서 ND 졸업생이시라 싸게 먹을 수 있었던 쿄요리. 한국으로 치면 전통 한정식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요. 담백하고 건강하고 미려한.. 그런 코스요리였습니다. 엄청나게 건강식인 것같은 느낌이었어요. 담아내는 것도 예뻤고. 굉장히 신기한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나중에 료칸체험만 하면 일본와서 해보고 싶은 건 다해보고 갈듯. 동창회 분들 감사했습니다!
6. 집에오자마자 다같이 좀비마냥 쓰러지고 9시즈음에 일어나서 그 때부터 고기요리 시작. 블록으로 사온 삼겹살, 양파, 버섯을 굽고 양상추를 다듬어서 삼겹살 완성. 먹은 사람은 수경언니 용언니 성은언니 나 벤쨩 마리나언니 여섯. 거기에 용언니가 어머님께 받으신 간장게장을 꺼내오시자 밥상을 마지데혼또니레아리 진수성찬. 쳐묵쳐묵쳐묵쳐묵쳐묵.. 배부르고 맛난 하루였습니다. 응.
7. 또 뭐 기록해둘만한 거 없나.. 아 가위손 다시봤어요. 응응 이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위노나 라이더와 조니뎁 + 얼음조각상과 눈 가운데서 빙글빙글 춤추는 킴..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보니 우아. 색채 대비가 쩔어요. 에드워드의 성은 유령신부+크리스마스의 악몽인데 킴이 사는 거리는 초콜릿 공장. ..초콜릿 공장도 아닌가. 빛 쏟아지는 거리에 원색의 집지붕에 어머니의 의상도 화려한 보라색. 눈이 아플 지경인 화면에서 에드워드의 성이 칙칙하고 우울한 색깔로 카메라가 옮겨가는데 그 부조화스럽기까지한 대비에 경악하고 경탄. 후기..랄 것까지는 없지만 최근작들은 미친 색감이어도 배경이 어둡다고 해야하나 어느 정도 진중한 느낌인데 (..앨리스를 그렇게 취급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그런 팀버튼 작품에서 그렇게 원색적인 색채를 본 게 신선했어요. 어릴 때 순진한 감상은 다 어디로 날아갔냐 너. 그리고 엄청 노골적으로 새로운 사람의 등장을 탐색하고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해먹는 거리의 주부+킴의 망할 남자친구라든지, 킴이 가위손의 손을 들고나왔을 때 미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성을 응시했던 미용실 아줌마라든지. 아름다운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씁쓸한 이야기였구나.. 싶었습니다. 스탠포드 와이프를 한번 봐야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