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생각했던 일기 제목은 '더러워'였습니다. 매우매우 적나라한 표현. 욕조에 들어앉아있을 때나 청소하고 있을 때는 여러가지 많이 줄줄 떠오르는데 막상 써서 남겨두려고 하면 좌르륵 사라지네요. 아침 나절 꿈을 실컷 꾸다가 눈뜨면 사라질 때와 비슷한 기분입니다. 딱히 그게 아니라도 기억력은 형편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음.. 지금 쓰고 싶었던 게 뭐더라. 오늘 하루 했던 세가지 일- 은행, 구약소, 방청소, 수강신청 준비, 맛있는 저녁등등. 줄줄히 써보겠습니다. 

 

2. 아침에 눈을 뜬 건 오전 8시. 쓰레기를 내놔야한다고 자기 전에 백번은 중얼거리고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휴일이지만 일찍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온 것이 8시 45분쯤(정신은 8시에 들었지만 침대에서 일어난 건 45분 후!). 쓰레기를 내놓고 왔습니다. 이 때만해도 아직 조용했는데.. 기숙사의 옆, 그러니까 제 창문 바로 앞에서 철거공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드릴 소리와 망치소리에 시름시름 앓고 뒤척이면서도 그래도 일어나기 싫다고 버팅기던 것이 두세시간쯤. 일어나서 비척비척 세수하러 나가는데 수경언니가 은행가신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있는데(첫달 건 3달정도 밀려서 냈지만) 유학생의 경우 교토시 지원으로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거든요. 다만 교토중앙신용금고의 통장으로만 돌려주기 때문에 그 곳의 통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은행은 반년 이상 체류한 사람이 아니면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 만들지 못했어요. 그런데 보험료 절반지원을 신청하는 기간이 9월 30일까지라네요? 어마 뜨거워라. 부랴부랴 나갔는데..

 

3. 통장 만드는데 한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레아리. 시티은행에서 도장들고 갔더니 3분만에 통장이 튀어나오고 5분만에 카드와 텔레뱅킹이 완료되었던 아름다운 기억이여.. 거기에 저는 외국인 등록증을 한국 집에 놓고왔던 터라(...) 안된다는 답변도 받았습니다. 보험료를 반환받을 시 아낄 수 있는 돈은 약 8천엔. 아침도 못먹은 배고픔과 당황 속에서 헤메다가 일단 귀가. 수경언니는 생각보다 늦어진 통장 발권때문에 서둘러 학교로 가시고, 저는 개판이 된 방으로 돌아와 어제 만들어놓은 양파닭다리살볶음(간장+맛술+폰쟉+참기름+후추 양념)에다가 깨작깨작 밥을 먹고서 거의 충동적으로 구약소로 갔습니다. 아 그 전에 아부지랑 통화도 했네요. 처음에는 등록증을 한국에서 배송받을 생각이었는데, 그냥 재발급받자 싶더라구요. 니죠죠역 구약소까지 달려가는 동안 배경음악은 glee의 animal. ohoh, i want some more, ohoh, what are you waiting for~ 

 

4. 3층으로 올라가 싹싹하게 재발급 신청. 재발급사유에 솔직하게 "한국 집에 두고왔어요" 라고 썼다가 곤난해하신 담당자 할아버님이 "좀 더 자세히 써주세요"라고 말하신 게 안 자랑. 그 말에 "한국 집에 두고왔어요(2011년 8월쯤 본국에 돌아갔다가)"라고 덧붙인 것도 안 자랑. 어쨌든 발급에는 3주가 걸리고 그 동안 대신이 될 녹색 임시 증명서 두 장을 발급받아왔습니다. 도합 700엔. ..자전거 팔아도 안나올 금액인 1300엔을 치르고 수리한 자전거 펑크만큼이나 뼈아픈 지출. 

 

5. 집에오니 방안은 여전히 개판이었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갓빨아서 창문에 내 걸었다가 아침에 맞은편집 지붕을 부수고 있던 작업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빛의 속도로 커텐을 치면서 바닥에 흩어놓은 옷가지들. 책상 위에는 수 많은 영수증과 프린트. 침대 위에는 노트북과 시라바스 세권과 종이들. ..참고로 말하면 8월에 한국 갔다가 돌아온 후 아직 바닥을 한번도 안 닦은 상태였습니다.. 9월 25일까지 거진 한달 반간 먼지는 참으로 켜켜히도 쌓였었겠지요. 사람이 안 살아서 그랬는지 생각만큼 지저분해지지는 않았었지만 공기도 묘하게 고인 공기였고.. 평소같으면 청소는 미뤄둘 수 있을 때까지 미뤄두는 편인데(당당하다) 목이 칼칼하고 눈이 아프며 머리가 아프고 콧물이 나오고 열도 좀 있는 것같던 상태가 잘 생각해보니 방안에 있을 때만 그랬지 말입니다. 몸살감기(맨날 무리하고나면 바로 쓰러지는데 이번에 야간버스 10시간 타고 발이 탱탱탱탱 팅팅팅팅 부었을 정도였으니)였나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 탓인 것같아서 결국 하기 싫다고 징지잊ㅇ징징징지잊잊ㅇ징(오타지만 오타 아님) 거리다가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쳐박아놓은 옷장의 옷부터. 의외로 엄청 많아서 하나하나 개고, 아무렇게나 넣어서 구겨진 옷들은 빨래통에 넣고 했습니다. 옷장 제일 윗칸, 그리고 아래 수건이나 양말칸 두개를 차곡차곡 개고나서는 수많은 영수증들을 버리고 종이류도 버린 후에 책상 위를 정리. 그리고 바닥의 먼지를 걸레로 빡빡빡빡. 책상과 선반과 바닥이 말끔해지고나서는 침대의 시트를 전부 갈았습니다. 그리고 설거지하고, 방걸레를 빨아놓고, 그리고 욕실로 직행. 

 

6. 물 아래서 세월아 네월아 멍때리기+망상하기를 반복하면서 30분동안 이래 저래 뽀송뽀송하게 씻고, 내친김에 반지도 치약으로 뽀득뽀득 닦아주고 뽀송뽀송해져서 나왔습니다. 이 때가 9시 조금 전. 수경언니도 오셨고 용지 언니께서 두 손 걷어붙이고 부대찌개를 끓이셔서 다같이 맛나게 먹었습니다. 아 맞다, 어제 주문한 김치도 왔어요. 맛있고 달짝지근하긴 한데 음.. 신김치때도 맛있을지가 좀 걱정. 삼촌네 설렁탕 집에서 먹는 김치맛이 났었어요. 역시 엄마김치가 짱이긔.

 

7. 그리고 밥먹고 반주로 츄하이도 한잔했는데.. 라무네 맛이었음에도 불구하고(까놓고 말해 뽕따맛) 98엔짜리답게 끝맛이 씁쓸한 것이 조금 별로였습니다. 어찌어찌 몽땅넘기고 나니 축 쳐지고 풀리더라구요. 그냥 맛없음 먹지 말걸. 츄하이는 98엔짜리랑 138엔짜리랑 맛이 엄청 다른 것같아요. 여튼 호로요이가 짱이긔. ..뭔가 익숙한 오치다?

 

8. 오늘 엄마 아빠랑도 통화했습니다. 드힝. 사랑해용. 아우 벌써 열한시네요. 내일은 아침 1교시부터 수업이니 일찍일찍 자겠습니다. 여튼 매일 굴러다니던 화요일을 바람직하게 보낸 것같아 좀 뿌듯한 하루였어요.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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