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 위로 내던져진 배트가 긋고간 소음이 욕실 안에서 메아리쳤다. 부서진 타일 조각들 사이로 떨리던 진동음이 멎고나서도 반고리관 속으로 스며온 소리는 도무지 멈추지 않아 전신이 덜덜 떨렸다. 눈 앞에는 손발이 묶인 채 쓰러진 남자가 죽은 듯이 쓰러져있었다. 물에 흠씬 젖어있는 옷은 자신이 욕조에 거꾸로 처박았던 탓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구석으로 굴러간 배트. 거기에 갈색으로, 빨간색으로 온통 튀어있는 섬찟한 자국들은 전부 그를 구타한 흔적이었다. 머리 속을 징-하는 소음이 내달렸다. 오한이 밀려왔다. 애원하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인형처럼 축 늘어진 연인의 보랏빛 멍이 퉁퉁 부어올라 일그러진 얼굴에는 피가 맺힌 입술이 묘한 웃음을 맺은 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같아 저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미친사람처럼 달려들어 그를 껴안았다. 자루 속에 들어있는 조각난 덩어리들처럼 그의 팔다리가 축 늘어져 흔들렸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주워모으듯이 끌어안았다.
-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있어?
눈물로 흐려져서 쏟아내는 말은, 먹먹하고 먹먹해서 자신조차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품안에서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상냥하고 다정한 연인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괴로운 잔상들이 솟아올랐다 어지럽게 무너져내려 의식이 혼탁해졌다. 목소리의 끝부분에서 울컥 치솟았던 감정이 그대로 오열이 되어서 터져나왔다. 그의 목과 어깨 위로 짐승같은 울음을 토했다. 그가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대어왔다. 그가 힘없이 입을 벌려 자신의 어깨를 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텐데. 어깨에서 번지는 연약한 아픔에 목이 메어 그를 더욱 더 세게 끌어안았다.
-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지. ..그게 문제야, 병신아.
어깨 위로 고일 듯이 쏟아지는 씁쓸한 말이 아프고도 아팠다. 상처투성이로 망가진 연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축축하게 어깨를 적시는 눈물이 아프고 아파서 그를 껴안은 채 목놓아 울었다. 망가지고서지고만 다정한 연인.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다. 괴로운 일이다. 그를 놓아주고 그를 떠나가는 게 옳은 일이다. 머리 속을 헤집어놓는 당연한 상식이, 당연한 도덕이 그를 안은 자리에서부터 산산히 부서졌다. 피가 엉겨붙은 상처를 보면서도 이대로 그를 안고 있을 수 있는 것에 안도했다. 힘없이 늘어진 다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설 수 없다. 끈으로 휘감겨 졸려있는 손은 자신을 저버릴 수 없다. 망가진 그를 안고서야 안도하는 자신이 괴로워서, 그리고도 놓지 못하는 자신을 경멸해서 터져나온 오열은 멈추지 않았다. 자그마한 욕설을 쏟던 연인은 이내 입을 다물어버린 채 두 팔로 단단하게 껴안아왔다. 그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절실함이리라 생각했다. 이제 곧 무너지는 자신을 어떻게든 지탱하려 애쓰기 위한. 되돌려주고 싶은 다정한 말은 산더미처럼 있었으나, 그의 피가 엉겨붙은 손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속삭였다. 조각조각 난 그를 끌어안은 채 그저 통곡했다. 죄책감과 혐오, 슬픔과 분노가 어지럽게 뒤섞여 또다시 의식이 혼탁해졌다. 그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도이 고통의 나선을 끊을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하여 울었다.
새빨갛게 물든 손에 부서진 그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은 자신은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fin.
얘랑 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