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흰자위가 파랗게 맑은 눈으로 웃으며 나를 음미했다. 깔끔하게 쥐지 못해 살짝 엇물린 젓가락 끝이 나를 집어올렸다. 빨간 입술이 바다생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벌렸다 닫히기를 반복했고 내 몸은 그 안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너는 어금니가 살짝 뒤틀린 하얀 치아를 갖고 있었다. 그 치아로 나를 씹어부수었다. 부정교합의 살짝 뒤틀린 치아 사이에서 내 몸은 산산히 부수어지고 또 부수어졌다. 말랑한 살덩이, 그 빨간 혀로 나를 휘감아 녹이고 짓이겨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나를 되씹었다. 빨간 입안에서 질척이고 끈적이며 무너진 나는 한점의 살덩이가 아닌 무엇인가가 되어 온통 젖어든 네 식도 안으로 미끄러졌다. 꿀꺽하고 네 목젖이 울릴 때마나 내 부서진 몸은 식도의 벽을 더듬고 애무하며 너의 안으로 안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만족스러운 너의 한숨은 온통 나의 주변을 뒤덮어 동굴 속의 신음소리처럼 탐스럽고 음란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너의 내부에 자리잡았다. 네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식도와 위와 소장과 대장의 끝까지 나는 네 안을 헤집으며 너와 함께 살았다. 끈적이는 덩어리가 되어 너의 내장을 미끄러져나가며 나는 녹아내리고 부서지고 질척거리며 분해되었다. 뜨겁게 녹아내린 나의 덩어리를 너의 세포가 물고 움직였음을 너는 알까. 혈관 속으로 타고 도는 바늘 끝으로도 집어낼 수 없는 작고 작은 덩어리 하나하나에 달라붙은 나는 너의 영양소가 되어 너를 채웠다. 너의 숨결에도 혈관에도 살갗에도 내가 섞여들었으리라. 탐욕스럽게 삼킨 너의 손끝과 입술 끝에서 네 안으로 흘러들어간 그 순간부터 잠식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물같은 액체로, 질척한 고체로 너의 곁을 떠난다. 내 모든 것을 불살라 너에게 쏟아부은 이 몸뚱이에는 가련한 찌꺼기와 추한 오물만이 남아 버려질 준비를 한다. 너의 탐욕스러웠던 붉은 혀가 굳게 다물리고 흐물거리며 몸을 열었던 입술이 들뜬 흰 치아 사이에서 되씹히는 동안 이제 추한 것이 된 나는 너를 떠난다. 너는 내가 떠나는 그 순간에도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릴테지만, 이미 너의 안에서 빠져나온 내 귓가에는 그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들뜬 희열과 기쁨 사이에서 목 안쪽을 타고 솟아올라 하아, 하고 쏟아지던 그 음란한 생의 목소리. 필경 내 귀에 들리지 않는 만큼 더 아름다울 것이다.
이 것이 이별이다. 네가 먹어치운 나는 한낱 오물이 되어 너의 내부에서 외부로 밀려난다. 영영 멀어지는 이별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너의 내부를 헤집고 맴돌았던 나의 일부들은 세포에 녹아들고 혈관에 녹아들어가, 결국에는 너의 일부로 남는다.
그러니 이 것은 이별이되 이별이 아니요, 나는 나로 돌아가되, 여전히 너로 남아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