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고통 속에서 밝아온 아침이었다. 겨우 눈을 떴을 때는 욕실 타일 위에 쓰러져있었다. 직전에 욕조에 쳐박혔던 탓에 스웨터와 바지는 아직도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물 속에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이번에는 정말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 후에 건져내준 모양이다. 묘하게 단조로운 생각을 하며 몸을 굴려 웅크렸다. 마음같아서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다리와 팔이 묶여있는 상태로는 재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기사 풀려난다고해도 피멍투성이인 몸이 뜻대로 움직여줄 것같지도 않았다. 손목을 조여오는 끈이 죽도록 아파 신음을 흘렸다. 아픈 건 거기만은 아니었다. 배트로 맞았던 허벅지에는 뭉근한 피딱지가 앉아있었고 주먹으로 얻어맞은 오른쪽 눈은 퉁퉁 부어 뜰 수도 없었다. 회사에도 못가겠구나.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미 회사를 그만둔 것이 생각났다. 기억이 이상해지는 것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파닥이던 심장이 엉뚱한 곳으로 피를 모아올리기라도 한 걸까. 신경질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픈 몸을 뒤틀어가며 미친사람처럼 웃었다. 입술이 다시 터져 입앗에 피맛이 고였다. 상황이 웃기고, 웃기고, 웃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웃고 있자, 배트를 끌어안은 채 욕조 앞에 주저앉아있던 남자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눈을 희번뜩였다. 어제였다면 그 시선이 무서워 미친듯이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온 지금은 공포조차도 하얗게 식어버렸다. 몸을 비틀며 웃고 있자, 남자는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개의치 않고 계속 웃었다. 다가운 남자의 손에는 배트가 들려있었다. 어제 자신을 후려갈겼던 그 흉기에는 핏자국이 군데군데 배어있었다. 그런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겨우겨우 웃음을 억누르고, 혀를 내밀어 터진 입술끝을 핥았다.
-죽여.
억눌렀어도 웃음은 가라앉지 않아서, 피와 함께 내뱉은 말에도 광소가 배어있었다. 흔들리는 남자의 눈동자를 쏘아보며 미친놈처럼 씨익 웃었다.
-이따위로 안 살 거야. 죽여.
한 번 더 말해줬다. 남자는 휘청거리며 배트를 치켜들었다. 그대로 머리를 작살내면 되겠네. 비웃음처럼 말을 흘리며 또아리 튼 벌레처럼 타일 위에 몸을 옹송그리고 쓰러졌다. 저항할 마음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서 후려치라고 몸을 뒤틀었다. 남자는 고장난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가 별안간 배트를 옆으로 집어던졌다. 타일 위에 날카로운 소음을 긋고 배트가 구석으로 굴러갔다. 남자는 넝마처럼 되어있는 자신을 끌어안았다. 인형을 껴안는 어린애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
남자의 말은 더듬더듬 이어지면서 부서져내렸다. 그 틈새마다 울음소리가 맺힌 것같았다. 방울방울 스미던 그 것을 참지 못하고 남자가 오열했다. 멍과 상처자국으로 덮힌 몸 위에 소금같은 눈물이, 남자의 통곡이 떨어졌다. 그 눈물자국 하나하나마다 화상을 입은 듯이 화끈거리는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으로 몸을 떨면서도 남자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 어깨를 물었다. 그는 움찔거렸지만 몸을 뒤로 빼지는 않았다.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지. ..그게 문제야, 병신아.
비웃을 생각으로 해준 말이었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는 걸 깨달았다. 입속으로 나지막한 욕설을 중얼거렸다. 제기랄, 이게 다 얻어터져서 그런 거야. 남자는 자신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고 머리 속은 고통으로 하얗게 변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새하얗게 변한 머리 속에서 미칠듯이 메아리치는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눈가에 맺힌 것을 닦아버릴 듯이 그대로 그의 품 안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죽을 듯이 아프고 추워서, 기댈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