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카페의 입구에 서 있는 연보라색 머리의 키가 훤칠한 청년은 들어섬과 동시에 주변의 시선을 모았다. 20대 초반쯤이나 되었을까 싶은 좋은 나이에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겠다 싶은 외모. 외갓집은 전 지구 통틀어서 유례가 없는 천재 발명가집안이자 최고 자산가인 캡슐 코퍼레이션. 아마 공부도 그럭저럭 할거다. 정말 엄친아가 따로없지.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 유행어를 머리 속에 떠올리며 팡은 오른손을 들었다.
"여기, 트랭크스 오빠."
"야아, 팡-"
제법 냉정하게 생긴 얼굴이 시선이 마주치자 마자 화사하게 웃었다. 카페테리아 내의 여자들은 거진 절반 이상 숨이 막혔으리라. 따갑게 꽂히는 눈총을 깡그리 무시하고 팡은 손을 살래살래 흔들었다. 가볍게 걸어오는 걸음이 연예인마냥 리드미컬해서 주변에서는 또 작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저게 단련과 단련을 거듭한 끝에 생긴 거라는 걸 알면 다들 무슨 얼굴을 할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오랜만은 무슨.. 오빠야말로 좋아보이네."
"그 꼬마 팡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제법 이상한데? 이제는 거진 숙녀가 다 됐잖아."
"나도 이제 열 다섯이라구?"
눈을 가늘게 하며 웃는 팡의 모습은 확실히 어린 소녀라기보다는 예쁜 미녀에 가까웠다. 나이보다 성숙해보이는 건 훤칠한 키와 예쁜 외모 탓이리라. 엄마를 닮아서 크고 까만 눈동자에 대충 걸친 청바지에 티셔츠로도 가려지지 않는 좋은 몸매. 분명 소녀다운 향이 묻어있었지만 어리다고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박력이 있다고 할까. 마주 앉아있는 두 사람은 제법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보이기만 한 거긴 하지만.
"니가 열 다섯이구나- 그런가, 오반 형 결혼한 게 엊그제같은데."
"무슨 애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아빠가 엄마랑 결혼했을 때 오빠 태어나긴 한 거야? 난 분명 부르마 아줌마 뱃속에 있었나 했지."
"..팡.."
누굴 닮았는지-아마도 할머니 유전이리라-은근히 독설가인 여자아이를 두고 스물 여덟살의 트랭크스는 살짝 머리를 감싸쥐었다.
"일단 난 너보다 연상이라구? 열 살 이상 오래 살았단 말이야."
"알게 뭐야.. 도대체가 오빠는 나이를 전혀 안 먹는단 말이야. 아직 대학생같은 걸 뭐."
톡톡 쏘아대는 말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트랭크스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의 핏줄 탓인지 20대 후반에 들어서도 여전히 어릿한 외모가 남아있는 트랭크스와 역시 할아버지의 핏줄 탓인지 일찍 성장한 팡은 겉보기로는 연인사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나이가 가까워보였다. 외견으로는 열 여덟과 스무살 정도일까. 그래도 팡이 나고 자란 걸 옆에서 지켜봐온 트랭크스에게 이 어린 숙녀는 거의 딸같은 존재였다. 그 것도 제법 문제 많은 딸이라고 할까. 트랭크스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샌가 시킨 후르츠 펀치를 꿀꺽꿀꺽 삼킨 팡은 잔을 내려놓았다.
"오빠는 좀 더 나이들게 입고 다닐 필요가 있다구. 안경이라도 써보면 어때? 여자는 연하로 보이는 남자는 무시한단 말이야."
"나한테 그래도.."
"자기 관리가 없는 거야. 언제까지나 젊은 줄 알고 있는 거야? 오빠도 2년 후면 꺾인 30대잖아?"
"파,팡..."
"주변에서 오빠가 제일 동안일 거 아냐. "
식은땀을 흘리는 트랭크스를 상대로 팡은 별 거침없이 말을 우수수 쏟아냈다. 별 악의는 없는 것은 분명했지만 제법 뼈아픈 소리에 트랭크스는 어깨를 움츠렸다.
"나,나라고 해서-"
딸랑-
그 때 카페테리아의 문이 열렸다. 순간 카페 내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몰렸다. 캐주얼한 차림의 소년은 큰 소리를 낸 것이 미안한지 조금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부스스하고 조금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차림에 앳된 피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귀여워-! 하는 함성이 조그맣게 일었다 사라졌다.
"여, 오천- 여기야!"
"오천 삼촌."
"와, 팡, 트랭크스!"
확 얼굴이 밝아진 오천은 종종 걸음으로 테이블을 향해 뛰어왔다. 그 모습을 보다가 팡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다소 사이즈가 큰 옷. 힙합식이라고 해석해줄 수도 있겠지만 잘 해야 아빠옷이나, 아니면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친구의 옷을 빌려입은 것이리라. 앳된 피부에 웃음기 어린 눈동자가 제법 귀.여.웠.다.
..아마 이대로 교복을 입히면 고등학생으로 충분히 보이리라.
"..트랭크스 오빠."
"하아?"
"전언 취소. 오빠, 겉늙어보여."
"파,팡..."
그건 위로가 안돼!!;
저도 모르게 트랭크스는 속으로 절규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마이 페이스의 소녀는 트랭크스의 반응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제 또래로 보이는 삼촌에서 의자를 밀어주었다. 순간 그게 누나와 남동생으로 보여서, 트랭크스는 그 말 했다간 무슨 보복이 돌아올지 모른다며 꾹꾹 눌러 참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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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둘 다 왔으니까 부탁좀 할게."
"뭐?"
"수련 말이야, 수련."
"하아?"
"대체가 말이야, 아빠는 일이 바쁘다고 상대해주지도 않고, 엄마도 너무 약하고, 18호 아줌마도 크리링 아저씨도 이런 걸로 방문하긴 뭐하고, 할아버진 우부 오빠네 가 있고, 주변에 대련을 부탁할 사람이 없단 말이야."
"에.. 호,혼자 하는 거 아니었어?"
"산 옮기기랑 무공술이랑 벽돌 깨는 것 따위는 이제 질렸어. 오빠네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중력 제어실도 이제 재미 없어."
"파,팡네 할아버지한테 부탁하면-"
"그,그래-;;"
"지금 외할아버지를 말하는 거야? 장난해?"
"아니 무도장을.. 마련해줄 거라고.."
"그래, 그거.."
"늦어. 미스터 부우도 요즘 바쁘단 말이야. 대련해줘, 대련."
"우,우린 일이-"
"없는 거 다 알아. 베지터 씨가 말해줬거든. 지금 휴가 중이라며? 잘됐네, 상대해줘."
"....파,팡..;"
"걱정마, 난 초사이어언 3같은 건 아직 못되잖아.(방긋)"
손 가 남자들 참 안 늙지요. 팡도 얼른 크고 늦게 나이 먹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