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기어내려오다가 바닥에 짚은 손자국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주말의 오후였다. 바닥을 짚었던 손가락을 비비자 회색 먼지가 덩어리로 뭉쳐나왔다. 마지막으로 청소한 때를 떠올리다가 적어도 1,2주내에서는 그런 기억이 없음을 깨닫고 날짜 헤아리기를 포기하고 일어섰다. 작은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바닥에는 발자국이 동그랗게 찍혔다. 다락에 들어있는 청소기를 꺼내며 기관지가 튼튼해서 다행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떠올렸다가 말았다.
화장실에 놓아둔 걸레를 가져와 청소기를 대충 닦고나서 작동시키자 기계는 둔하고 조용한 소음을 내며 발자국이 찍힌 위에 네모난 길을 만들었다. 그나마 기어들어가는 침실이나 식탁 언저리는 그나마 나았지만 동선에 포함되지 않은 장소는 부옇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대로 거실과 작은 방과 침실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먼지와 머리카락과 자잘한 쓰레기들을 치웠다. 청소기를 끄고 좀 깨끗해졌을까 싶어 허리를 펴자 이번에는 깨끗해진 바닥 위에 어지럽게 찍힌 더러운 발자국이 보였다. 자신의 것이다. 황당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발만 적당히 닦고 슬리퍼를 신었다. 바닥청소는 좀 이따가 하자 싶어서 주방으로 향했다. 먹고난 식기는 바로바로 씻어놓는 타입이었던지라 식기들은 그런대로 깨끗했지만 먹고난 레토르트나 인스턴트 식품의 쓰레기는 휴지통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 봉투를 오므리고 입구를 묶은 다음에 그대로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쓰레기를 쌓아놓는 취미는 없는데. 손을 탁탁 털며 한숨을 쉬었다. 쓰레기든 먼지든 잠깐만 방심하면 그대로 쌓이곤 했다. 내친 김에 냉장고를 열자 먹고 남은 양배추 반통이 냉장고 안에서 시들시들해져있었다. 늘 4분의 1쪽만 샀었는데, 재래시장의 아주머니가 끈질기게 밀어붙이지만 않았어도. 버릴까 싶어 양배추를 집어들었다가 먹을 것을 버리면 안된다고 고운 눈썹을 찌푸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밀어넣었다. 스튜에라도 넣어먹을까. ..토끼라도 길렀으면 먹이로 주는 건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집을 비우는 일의 특성상 동물을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되지도 못할 거 생각해서 뭐하나 싶어 냉장고 문을 닫고 일어섰다.
책장의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로 닦아내고, 묵혀두었던 빨래를 돌렸다. 셔츠를 털어 옷걸이에 차곡차곡 걸어 햇빛에 말리려 바깥 행거에 걸어놓고서 청소기를 다시 돌렸다. 내친김에 필터까지 교환해서 쓰레기봉투를 꽉꽉 채워서 밖에 내다버렸다. 빨래를 거둬온 다음에 샤워실로 가 땀투성이가 된 몸을 씻었다. 사다놓은 목욕용품은 아직 절반도 다 쓰지 못해서 리필을 뜯을 날은 아직 먼 것같았다. 몸을 닦고 나와서 옷을 입었다. 부엌의 냉장고를 다시 열고 저녁을 뭘로 해먹을지 잠시 고민했다. 청소에 지친 나머지 요리할 생각이 들지 않아, 결국 야채대신 한켠에 쌓아놓은 레토르트용 1인용 카레 하나를 뜯어서 전자렌지에 넣었다.
간단하게 차린 식사를 앞에 두고 몇숟갈 떠먹다가 아무래도 입맛이 없어 tv를 틀었다. 딸깍거리는 수저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던 식탁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뉴스는 좋아하지 않지만. 리모콘을 손에 들고 tv를 끄려다가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손톱 끝으로 리모콘을 툭툭 두드리며 화면을 보았다. 별 흥미도 없으면서 내일의 날씨를 전해주는 아나운서에게 집중했다. 비올확률은 50%. 흐린 날씨가 되겠습니다. 변덕스러운 기후에 익숙해져있었지만 룰렛도 아니고 비올확률 반반이라는 일기예보에 의미도 없이 피식 웃었다. 잠깐 사이에 카레는 식어버렸다. 아버지가 봤다면 식사중에는 딴 짓 하는 게 아니라고 핀잔을 주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되지, 식사때는 식사에 집중해라.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리모콘을 들어서 화면을 끄고 다시 접시로 눈을 돌렸다.
tv의 소음이 사라지자 식탁은 다시 조용해졌다. 묵묵히 식사에 집중하며 방금 보았던 일기 예보를 떠올렸다. 내일 강우 확률은 50대 50.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우산을 챙겨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밖에서 우산을 사든가 맞고 오는 수밖에 없다.
이제 마중 나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신파도 아니고 왜 이렇게 감성적이냐 너. 한두번 겪은 일도 아닌데. 매번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바보같았다. 애도 아니고 왜 익숙해지질 않는 걸까. 좀 한심한 기분이 들어 한숨을 푹 내쉬고 접시에 남아있는 카레를 마저 긁어서 입 안에 밀어넣었다.
어제 일기예보를 봐놓고도, 다음날 그는 우산을 챙겨가는 것을 잊어버렸다. 절반의 확률은 안 좋은 쪽으로 들이맞아 그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와 불을 켜고 수건을 집어들어 머리 끝에서 떨어져내리는 물기를 닦으면서 그는 자신의 기억력을 조금 탓했다. 감기에 걸릴 것을 생각해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고 목까지 푹 담갔다. 따뜻한 김에 모락모락 나는 욕실 안에서 뜨거운 수프를 끓일 생각을 하며 그는 일부러 우산을 안 들고 나간 게 아니냐는 마음 속의 물음을 부정했다. 그는 아이가 아니었고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받아줄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나. 그저 잠깐 잊어버린 것뿐이다. 그 뿐이다.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그는 또 다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려는 기억을 지웠다. 외로워하는 자신을 잊었다.
fin.
01. 雨 (비) / Raining
혼자살면(=집안일을 도우면) 어머님 매직을 깨닫게 됩니다. 먼지는 맨날 쌓이고 설거지감도 혼자 안 사라지고 빨래도 저 혼자 개켜지지 않고.. etc. 궁상맞은 게 쓰고 싶었습니다. 애정입니다 록온. 엄청 좋아해요. 두 사람 다.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