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살의 저녁, 딘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새벽이었고 주변은 어슴푸레하게 밝았다. 침대는 축축했다. 어젯밤 진흙과 땀으로 젖어 씻지도 않은 채 누웠던 탓에 말라붙은 진흙과 핏자국이 엉겨붙어 검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자신은 식은땀에 젖어있었다. 딘은 숨을 멈춘 채 그 상태로 몇십초 정도 몸을 굳히고 있었다.
후욱, 마치 처음 태어나 숨을 쉬는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 딘은 머리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방울처럼 터지는 것을 느꼈다. 그 것은 차례로 뇌를 흔들어깨우듯 기억 속의 불씨에 불을 붙였다. 몸을 잠식하고 있었던 악몽이 다시 선명하게 살아나 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명한 재와 불꽃의 냄새- 무언가가 타들어가는 풍경까지도. 그 꿈 속의 광경은 결코 처음보는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독히도 오래되었으리라. 딘이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시절부터 시작되어, 단 한번도 놓아준 적이 없는 그 기억들은.
그 악몽들에는 항상 아름다운 추억들이 엉거붙어있었다. 어쩌면 그 꿈 속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그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텍사스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며 자랑스레 말하던 아버지의 자부심 가득한 얼굴과 그 것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지으며 바라보던 어머니. 부푼 배 위를 부드럽게 감싼 어머니의 하얀 손과 다정한 얼굴. 그 옆 선을 따라 따스한 태양빛이 빛의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금발머리를 투과해 반짝이는 빛을 잡으려 자신은 작고 통통한 손을 뻗었다. 어머니는 치맛자락에 매달려오는 자신을 끌어안아주었다. 햇살 속에서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고 딘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에서 자신을 받아안던 단단한 손과 까칠한 수염까지 모두 다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모든 찬란하고 아름다운 기억.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엉겨붙듯 매달린 암흑 속으로 천천히 침잠해 들어가, 끝내 불타는 집과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 어머니의 날카로운 비명으로 좀먹어들어가는 악몽으로 끝났다. 언제나 항상.
딘은 볼 안쪽을 지긋이 물었다. 송곳니에 깨물린 여린 살이 찢어지며 피 맛이 고였다. 딘은 몸을 웅크린 채 외면하듯 배개 속으로 고개를 묻었다.
"딘?"
자그마한 목소리가 어슴푸레한 새벽빛 사이로 울렸다. 딘은 가까스로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맞은 편 침대에서 샘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묻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일곱 살짜리 꼬마는 이불 속에서 헤이즐넛 색 눈동자를 뜨고 웅크린 형을 걱정스레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딘은 이를 악문 채로 목소리를 꾸며냈다.
"뭐야, 새미. 또 깼어?"
"그냥, 이제 조금 있으면 네시 반이잖아."
샘은 작게 말했다. 네 시 반, 그건 딘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총구를 점검하고 문가에 놓인 보호 주문들을 살펴보고, 창문에 뿌려진 소금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하는 시간을 의미했다. 보통은 그 상태로 일어나 아침 준비와 정해진 훈련을 해야했고, 운 좋게 아버지가 없는, 오늘같은 날이라면 한 시간 정도는 더 잘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것은 샘과는 상관없는 시간이었다. 딘은 미간을 찌푸렸다.
"넌 더 자도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아버진 아직 안오셨어."
"하지만-"
"빨리 자, 새미. 어린애는 원래 자야하는 거야. "
나이보다 열 살은 많은 것같은 어른스러운 목소리를 꾸며내며-그 것은 다분히 아버지의 그 것을 닮아있었다- 딘은 짐짓 엄하게 말했다. 자신 또한 열 한살짜리 어린애이고, 아이들끼리 모텔에 묵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지역의 아동복지국 차원에서 아버지를 골치아프게 만들 일들이 일어날 그런 나이라는 건 딘에게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샘은 딘이 잔소리를 퍼부으며 가르친 대로 이불을 목께까지 끌어올렸으나, 여전히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딘을 보고 있었다.
"형, 괜찮아?"
불안함이 배어있는 여린 목소리였다. 딘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누굴보고 묻는 거야?"
거만하기까지한 목소리에, 맞은 편에서 샘이 자그맣게 웃는 기척이 났다.
"내가 잘못했어."
"그래, 그래야지."
"형."
10분쯤 지나고, 작은 목소리가 다시 딘을 불렀다.
"왜?"
딘은 애써 귀찮은 척 대답했다. 목소리는 망설이는 듯 침묵했고 딘은 거의 배개에서 머리를 반쯤 일으킨 채 샘을 보려고 온 신경을 팔고 있었다- 딘은 걱정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썼다. 몇 분쯤 지난 후에서야, 샘은 투정부리는 것 같은 작고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잠이 안 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불만인 듯 거기에는 부끄러움이 배어있었다. 딘은 멈칫했다가 이내 안도감을 짐짓 숨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동생에게 말했다.
"너 진짜 계집애같아, 새미. 악몽이라도 꾼 거야?"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계집애도 아니야."
딘은 들으라는 듯이 킥킥 웃는 소리를 냈다. 계집애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거야말로 계집애같은 거야, 새미- 평소같으면 그렇게 핀잔을 주었겠지만 지금은 동생의 그 목소리가 반가웠다. 형의 웃음소리에 심경이 상했는지 부루퉁한 얼굴이 되어있던 샘은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채 몇분도 지나기 전에 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자면 안돼?"
어리고 작은 목소리였다- 딘은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내리누르고, 최대한 귀찮고 짜증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야, 새미. 일곱 살이나 먹었으면 혼자 자는 법을 배워야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목소리는 딘 자신이 듣기에도 안도감을 억누르느라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안돼?"
어둠 속에서 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몇번 더 놀려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딘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만이야."
내일이나 그 모레도 반복될, 어쩌면 딘 자신은 절대 지킬 마음이 없을 으름장을 놓으면서 딘은 샘의 침대로 다가갔다. 방긋 웃은 어린아이가 침대 구석으로 들어가며 자신의 침대 절반을 내주었다. 샘의 침대에는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시트가 깔려있었다. 딘은 먼지와 진흙투성이인 자신의 옷이 동생의 침대를 더럽힐까봐 주저하다가 청바지를 벗고 티셔츠와 팬티차림 만으로 침대에 들어갔다. 지저분한 건 별 차이 없긴 했지만 청바지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어린 동생은 냉큼 기다렸다는 듯 딘의 품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고수머리는 딘의 턱 밑에 끼워넣고, 두 팔은 딘의 허리를 단단히 감고, 자라면서 살짝 앙상해진 두 다리를 딘의 다리 사이로 밀어넣어 빈틈없이 채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샘은 강아지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형 다리가 차가워."
목 안쪽에서 웃는 목소리는 한없이 행복해보였다.
"네가 아직 갓난쟁이라 체온이 높은 거야."
의젓한 목소리로 핀잔을 주면서도 딘은 자부심에 차서 샘의 고수머리 위에서 흠뻑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의 우유냄새와 청결한 샴푸냄새가 났다. 지저분하거나 더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딘은 어제 치약을 짠 칫솔을 들고 욕실까지 따라들어가 샘이 입안과 치아 사이를 빈틈없이 문지르게 만들고, 모텔의 마지막 남은 싸구려 비누와 샴푸를 전부 써서 샘의 머리를 감기고, 귀 뒤까지 씻게 만들었었다. 자신은 재대로 씻지도 못한 채 잠들어야 했지만 딘은 그렇게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샘은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청결하고 완벽한 상태였다. 딘은 벅차서 중얼거렸다.
"잘 자, 새미."
"잘 자, 형."
다정하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며 딘은 동생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 단단히 끌어안았다. 품안은 완벽하게 채워졌고, 거기에는 악몽이나 고통이 끼어들어갈 틈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새벽 공기 속, 완전한 평온이 그 곳에 있었다.
fin.
딘의 샘에 대한 헌신을 좋아합니다. 유전자 레벨로 새겨졌을 것같음. 어릴 때 샘은 샘 윈체스터이기보다는 '딘 윈체스터의 동생'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아 정체성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샘이 (어떤 의미로든) 딘을 넘어서면서 또 박살 났을 관계지만. 그래도 샘의 뼈와 살과 정신을 키운 건 딘. 새미만이 어린 딘에게 있어 온전한 보상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