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청아한 바다가 넘실거릴 듯이 시야를 채우고, 흰 모래사장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는 곳입니다. 바다는 때때로 그 물결 사이로 보석을 감추고 있는 것마냥 태양 아래에서 반짝입니다. 하늘 위로 내걸린 흰 구름이 그 바다 끝자락부터 물에 녹아들 듯이 곱게 펼쳐져 나부낍니다. 그 시린 파란색, 하늘색, 하얀색, 연하늘색, 연파랑색.. 푸르스름하고, 새하얀 그 빛깔들이 고운 푸른빛 그림을 그립니다. 그 앞머리로 이어지는 모래빛 백사장은 또 어떠한지요. 하얗고 고운 모래들이 줄지어 흰 선을 내그어, 바다는 그 손을 내밀듯 흰 거품을 일으키며 그 고운 빛깔 위로 숨을 토해냅니다. 하얀 파도가 스칠 때마다 모래 위로 짙은 물빛이 일었다가, 태양아래서 다시 또 색을 잃기를 반복합니다. 석영이 반짝이는 빛깔은 하늘에서 태양이 그 빛 조각을 흩뿌린 듯이 곱고, 또 선명합니다. 가슴 깊이 들이마시게 되는 그 향기는 또 어떠한가요. 그립고도 부드럽고도 광활하여, 이 곳에서 들이쉬는 모든 숨은 태초로부터 이어지는 먼 그리움에 가서 닿을 겁니다. 그 넓고도 넓은 지평선 너머로, 인간의 눈이 비치지조차 않았을 깊고 넓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이 아름다움에 취할 듯이 눈을 감습니다. 눈꺼풀 사이로 비추어들어오는 태양빛 하나 조차, 숨끝에 떨어지는 바다 향기 한줌조차, 뜨겁고도 차가운 바닷가의 공기 한 톨조차,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눈부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 단 하나, 이 저를 제외하고.
그 안에서 저만이 사랑하지 않는 대상입니다. 멀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심장은 거칠게 녹슨 소리를 냅니다. 녹슬어 망가진 양, 철의 비린 내음을 풍기며 삐걱입니다. 매번의 실수와 잘못된 부분들이 쌓이고 아려와 유리조각처럼, 유리가루처럼 심장을 찌르고 있는 탓입니다. 구릿빛 녹슨 거울에도 차마 비추어볼 수 없을 내 자신이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제 손으로 목을 누르고 있습니다. 소리 하나 없이 울음 하나 없이, 무지가 넘쳐나는 자신을 세상에서 지우고 싶습니다. 이 눈부시고 고운 곳에서, 살갗 위로 소금물이 배어와 짜고 시리고 맵고 쌉쌀한 듯이 손 안으로 그러모아도 부족하고 부족해서 또 흘러내리고 마는, 그런 자신을 원망합니다. 껍질을 벗겨 바닷가에 내어놓은 달팽이처럼. 아둔한 눈은 먼 곳을 보지 못하는데, 여린 살갗은 상처 아닌 상처들도 모두 상처로 받아들입니다. 물 위에서 떠오르다가 가라앉듯이 그렇게 나날이 부유하는데, 지표도 중심도 없는 이 마음은 대체 어디로 흘려보내면 좋단 말입니까.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나날이 이렇게 눈부신 와중에도 죽고 싶다며 웃게 되는 것은 그런 부족한 자신이 아파오기 때문입니다.
바다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싶습니다. 물 위로 몸을 띄우고 가운데로, 가운데로 정처없이 팔을 저어 흘러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 짜디짠 물 한가운데에 홀로 남으렵니다. 작열하는 태양에 지치고 흔들리는 물에 피로를 더해가다보면, 이 몸은 눈을 감은 채 그 넓고 넓은 물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괴로움도 아픔도 잊고, 어둡고 다정한 그 속에서 녹아 사라질 겁니다. 푸른 물 속으로.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내가 보이지 않고 내가 없을 그런 세상 속으로.
그제서야 세상은 완전하게 아름다워지고, 나는 완전하게 평온해집니다.
fin.
최근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될 때가 간혹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