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1. 사회소설입니다. 확실히, 완벽하게, 흠집하나 없이. 

2. 모방범은 얽힌 추억이 참 많..다면 많고 없다면 없는 책입니다. 학교 도서관에는 이 책 1권이 없었거든요. 저는 미미 여사 초기의 사회소설 경향이 강한 글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굳이 찾아 읽을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스탭 파더 스탭이나 에도시대 시리즈같은 시대물 쪽이 훨씬 재밌었기도 했고요. 그러다 시게코가 등장하는 속편을 읽고 나서, 전편도 읽어볼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학교 도서관을 몇번 찾아갔는데, 학교 도서관에는(중략).. 였습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겨우 읽게 됐네요. 

3. 미미 여사의 책은 참 신기하다면 신기한 게,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금방 묶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시대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만큼 비슷한 색채가 완연합니다. 고교쿠 나츠히코와 친해지면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를 쓰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그런 영향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까지 읽고나서는 문체의 변화(랄까 소설의 변화랄까)에 한층 더 생각하게 됐어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랑 겁나 닮았어! 여러가지로 몽땅 다! ..그러니까 사회 소설이겠죠.  

4.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살인범이 나오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일련의 사건도 무엇도 아닌 사회 전체에 있는 각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살해당한 사람, 피해자, 혹은 관련 없는 제 3자, 다른 사건의 연관자.. 하나의 사건을 던져놓고 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과 시선을 천천히 조명하며 달리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사회 소설이구나 싶어졌달까. 

5. 저는 일본의 사회소설을 썩..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병든 사회의 일면을 해부한다던가,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조명하는~ 같은 그런 글이요. 병들어있는 단면을 보여준다는 게 잘못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그 흐름의 납득하는 게 어렵습니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면서 정작 중요한 건 반전이나 추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사람들- 그 내부 의식의 피폐함이나 부족함이나 잔혹함이라면 이런 소재를 택할 필요가 없지 않아? 싶어져버리는 거에요. 묘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고 하나. 그런 부분은 차라리 한국 현대 소설(무지 싫어합니다만)처럼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 까득까득 긁어내버리는 독백체 소설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80년대 한국의 빈곤한 사회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처절하게 씹어댔던 것같은 그런 무게감이 일본 사회 소설에서는 부족해요. 개개인의 질병과 그에 따른 사회붕괴같은 말을 하고 싶다면, 만화적인 연출이나 극적인 사건을 집어넣을 게 아니라 더 현실적인 소리를 내도 좋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굳이 넣었어야해? 싶을 만큼 지향점이 다르단 말이지요. 그 외의 다른 어떤 소재로 풀어내면 좋겠냐고 질문받으면 할 말은 없긴 한데 뭔가 묘하게 석연치가 않습니다.

6. 거기에 일본 소설 특유의 만화적인 분위기가 섞여들어가면 그 시점부터는 으으음.. 하고 앓게 됩니다.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피해자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린다거나, 혹은 (이 소설에서라면) 아미가와가 시게코의 지적에 이성을 잃고서 범행을 고백하는 장면같은 거요. 와이드쇼의 메인에서 공표하고+거기에 광고가 절묘하게 삽입된다니 이 무슨 만화적인 일본 드라마냐.. 싶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면서도 비판거리가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엔딩 부분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7. 이야기는 한 여성의 핸드백과 오른팔이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범인은 전화를 걸어오고요. 사건의 피해자 가족 요시오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는 르포라이터 시게코, 그리고 발견자이자 다른 사건의 피해자인 소년 신이치로 넘어가며 확대됩니다. 여기 신이치의 가족을 죽인 사건의 가해자의 딸인 히구치 메구미가 섞인 가운데 사건은 여러 장면을 넘나듭니다. 요시오와 범인의 전화통화, 경찰의 입장, 피해자 소녀의 시점. 끝에서 범인 히로미와 가즈아키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보도가 알려지면서 1부가 끝납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범인 히로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에게 죽은 누나를 투영하는 가족과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히로미, 그의 오만하고 피폐하고 거만한 프라이드, 그에게 이지메 당하던 순한 친구 가즈아키, 가즈아키의 여동생 유미코, 히로미의 동료이자 우상이었던 피스, 삐뚤어진 가학심. 누나의 유령을 보는 공포에 미쳐서 히로미가 아케미와 마이를 살해하고 피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죠. 본격적으로 살인을 하면서 그들은 이 것이 이벤트이며 자신들은 그 것을 연출하는 연출가이자 배우라는 환상에 빠집니다. 가즈아키는 그걸 말리려하다가 히로미와 함께 죽고요. 

3부에서는 두 범인의 죽음 이후, 진범 아미가와 고이치-피스-가 사건의 중심에 등장해 "가즈아키는 범인이 아니었다"라며 그들을 옹호하는 인물로서 매스컴에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건을 이끌고 요리하며 자신의 입장을 즐기지만, 약 사십 일 정도 지났을 때 르포라이터 시게코와 경찰 측에서는 약쪽에서 그의 수상한 점을 깨닫고 조사에 들어가고, 방송에서 시게코가 아미가와의 프라이드를 정면으로 고백하면서 그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합니다. 

8. 많은 등장 인물이 나오고 각자의 목소리가 분명해서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체가 살인 사건 전체와 맞물리며 깨끗하게 돌아가서 어색하거나 정신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것이 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는 대부분 주역만을 비추지만 거기 얽힌 사람들은 수십 수백명이니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있겠죠. 오노 후유미씨가 십이국기의 후기에서였나요, 저는 전쟁을 묘사하면서 한 인물의 사건으로 마무리 지어버렸지만 그 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으면 수백권도 모자랄 거라고 했던게.(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불분명한 문장입니다) 그런.. 한 사건에 대해서 카메라를 개인에게 들이대는 게 아니라, 줌을 넓게 맞추어 그 곳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들은 것같은 소설이었습니다. 

9. 그런 전개 방식의 깔끔한 부분은 마음에 드는데, 그 핵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감정이-개념이-  하나가 아니었던 게 영 아쉬웠어요. 뭐라고 해야할까요.  많은 시각들이 나온만큼 여러방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것같습니다. 몰아부치는 매스컴의 보도 형태라든가, 시게코에게서 보이는 여성의 직업과 가정에 대한 양립이라던가, 카즈아키에게 있었던 투명한 감옥이라든가, 메인 인물인 아미가와 코이치와 히로미, 그 각각이 품고 있었을 가정사와 트라우마라든가, 요시오와 마리에에게 일어난 유족이 겪는 피해, 그리고 도망친 후루카와에게서 보이는 가정의 붕괴. 기타 등등등등등. 
뭣 하나만 잡아도 석달 열흘 논문을 쓸 수 있을 것같은 다양한 입장들이 있었는데, 아주 잘 연개되어서 정리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을 꿰뚫는 묵직한 주제가 있고, 거기에 하나하나 중첩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메인의 사건이 있고 거기에 있는 다양한 일면들을 보여준 것같은 느낌이라 책의 부피에 비해서 느껴지는 무게는 가벼웠습니다. 꼭 일본 요리 같았어요. 재료 자체의 맛을 하나하나 살리는 점이. 이야기 전체에서 흘러나오던 말은 마지막 범인에게 쏘아주는 요시오 할아버지의 말로 정리가 된 것같은데, 그 대사 전체가 사건의 일부로 녹아들었다기보다는 그냥 대 단원에서의 맺음말처럼 들렸습니다. 기껏 여러사람의 시각을 조명했는데도 사건은 무슨 맥거핀 마냥 희미해진 느낌이 든 게 아쉬웠어요. 
물론 조화롭게 한 이야기로 녹여낸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요.

10.. 연개되는 부분이라면 '나는 지갑이다'에서 지갑에서 지갑으로 시선을 넘기며 이야기를 전개했던 게 저는 더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의 부피에 비해서 맛의 깊이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11. 뭔가 전반적으로 느낀 느낌을 설명하려했더니 엄청 비판적인 글이 되어버렸네요. 여기까지 써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책이 이렇게 담백한 느낌이 드는 건 번역자 탓도 조금 있지 않나 싶어집니다. 일본 문학이 전체적으로 담담한 전개를 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싱거운 문체가 되어있는 건 또 처음이라서. 전하는 건 꼼꼼히 전하는데 문체에서 장면이 연상되질 않았어요. 다른 미미여사의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화면이 떠오르는 편이었는데 말이지요. 단순히 제가 배터리 번역때문에 양억관씨에게 억하심정을 갖고 있어 이 책에서 느낀 부족함을 그 분한테 밀어버리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2. 화차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지요. 사회 속에서 도망치고 도망치느라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던 사람을 드디어 찾아가 대면하게 되는 순간에 끝나는 이야기. 사건의 형식을 빌려 사회를 탐색하는 방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이 부피에 비해서 무게가 옅었던 게 아쉬워서 참을 수 없네요. 좀 더 깊게 분석하고 씹고 괴로워해서 결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안에 남겨줄 무언가가 분명했으면 했었는데. 아니 재미있었습니다만, 뭔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13. 붉은 손가락 이야기를 했던 건 입장을 조명하는 게 떠올라서였습니다. 아이를 죽인 사건, 피해자의 목소리, 범인 가족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 당사자의 목소리, 할머니의 목소리. 묘하게 사회의 병든 단면과,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거리감을 한번에 느낀 건 그런 단면이 적나라한데도 불구하고 슴슴해서였을까요. 묘한 걸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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