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딘반지의 덕을 톡톡히 본 한주였습니다. 얼마나 돌려댔는지. 

2. 일본 출국은 29일로 미루긴 했는데 미루기까지의 우울함과 정신없음에 더해 지진 당일부터 NHK와 TBS의 속보들을 내내 보고 있었더니 사람 정신이 확확 가라앉더랍니다. 3일간 한 여섯시간 잤나. 이 짓 못해먹겠다 싶어 손을 놓고 푹자고 일어났더니 좀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어제까지는 진짜 정신사납고 우울했어요. 참고로 제가 가는 지역은 관서 교토라 원폭과는 크게 상관없을 것같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직까지라는 거고 노심융해 일어나거나 저 상황 수습이 잘 안되면 뭔가 영향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차라리 혼슈가 아니라 큐슈 이런 지역이면 좀 안심이 될려나요. 에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20일까지는 재난이고 뭐고 끊고 지낼 생각이에요.

3.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여차저차하다보니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축 22살 확정. 근데 뭐 생일이라고 딱히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안들어서 파티도 없고 선물도 없고 걍 케익하나 받은 거랑 친구들이랑 영화보러갔더니 생일이라고 콤보 공짜로 준게 생일감이었습니다. 아 파리바게트의 화이트 초코 케이크는 혀가 돌아버릴 정도로 다니 커피와 함께 먹으면 좋을 것같습니다. 그냥 먹다가 혀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음. 우울로 축축 쳐져있었는데 군대에서 휴가나온 친구가 소시 브로마이드를 구해가야한다고 해서(...) 이니스프리에서 위장크림 하나 사주고 윤아가 실린 팜플렛 왕창 집어들고 나왔던 게 좀 재미있었습니다.

4. 그리고서 보러간 월드 인베이젼은 언제부터 로스앤젤레스가 월드였냐?! 라고 묻고 싶은 영화이긴 했지만. 핸드헬드 기법 촬영이 비중이 높았는데 화면이 흔들리는 거랑 별개로 시점은 고정화되어있지 않아서 쓸데없이 잘개 쪼갠 거 아니냐 싶어지는 영화였어요.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과연 필요했었는지가 의문. 이야기 자체도 또 엄청 스탠다드한 아메리칸 해병 마초였거든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90년대로 돌아가시던가, 적을 외계인으로 캐스팅한 건 그냥 쩔어주는 미국 본토에 쳐들어올 외국이 없으니 적당히 외계인 침공으로 수습한 것같은 티가 났습니다. 아바타는 차라리 대놓고 우리가 나쁜 놈이기라도 했지만. 트랜스포머에서도 느꼈는데 저는 미군이 침략자 노릇 톡톡히 한 주제에 거기서 있던 일을 비극으로 부르면 확 목을 따주고 싶어져요. 죽은 부하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다 외우고 있는 거기 20년차 해병 특수부대 하사님, 그 이라크에서 너네님들이 죽인 이라크 인은 몇 명일까요? 위선자. 

5. 아니 뭐 니들은 죄다 학살자니까 동료애도 느끼지 마라, 이러려는 건 아닌데 전쟁을 일으킨 측에서 태연하게 우리의 희생 운운하는 거보면 배알이 꼴린단 말이에요. 일본군이 포로생활하면서 힘들었다고 하면 뭐 병시나? 하고 싶어지는 한국인 심정이면 이거랑 비슷할까.. ..씽 제가 한국인인지라 이 비유는 너무 과하네요. 여튼 저런 강자의 입장, 침입자의 입장인 사람들이 우는 소리, 그 것도 영화같은 창작물에서 저따위 표현을 하고 있으면 뭐랄까.. 찝찝해요. 엄청나게. 월드의 수호자 미국은 그만 포기하겠으니 니들도 제발 적지 한가운데서 공격받고 비극 운운하지 말라고요. 쳐들어간건 너님들이세요 형님.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도 영화자체는 엄청 몰입해서 덜덜 떨면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끝나고 생존자들이 군에 입대했다는 거 나오는 순간 팍 짜식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 문구를 본 순간 건물 붕괴로 인해 느껴야했던 생존자들의 공포와 그 감정들이 한순간에 "우리는 이렇게 무서운 일을 겪었어, 애국자가 되어서 복수하러가야지?"로 치환되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나 그런 매체들을 사용해서 사람을 선동질하는 게 싫어요. 그냥 제가 전쟁을 존ㄴㄴ나 싫어하고, 재해를 어떤 이름으로든 이용하려하는 게 싫어서 그럴 겁니다만.

6. 저는 일단 재해 유족..인지 뭔지 하는 경험이 있거든요. 재해라고 해야할지 사고라고 해야할지. 일곱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고모님이 그 안에 계셨습니다. 살아서 못 나오셨구요. 별로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고 어릴 때라 기억도 안납니다만, 누군가가  살아남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기억들이 무언가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게 참 싫어요. 그냥 그렇습니다. 인재든 자연재해든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은 무수히 많으니까 구태여 그런 순간들을 더 늘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7.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인이고 천주교인입니다. 제가 속한 카테고리가 몇개쯤 있긴 해요. 인간이고 지구인이고 한국인이고 종교도 있고 뭐 지역도 살고 있고.. 근데 이렇게 카테고리 별로 묶여서 느끼는 내 사람 내 가족 내 인간 뭐 이런.. 뭐라고 하지, 동질감, 함께 있는 느낌, 공유되는 감정, 이런 긍정적인 느낌들도 좋아하긴 하는데 카테고리vs카테고리로 쌈박질나는 걸 보고 있으면 그냥 죄다 사라져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답답해질 때도 있어요. 안그래도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은 자기 자신의 것밖에 없는데. ..하기사 사람이 니를 줄 안다 쳐도 완전한 이해가 되기보다는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헐 시바 너 이런 생각도 했었어?! 같이 싸움으로 이어질 것같은데. 차라리 다 녹아서 LCL이나 되면 딱 좋겠다. 젠장. 안노 히데아키가 왜 이런 걸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요..

8. 뭐 뭐든간에 너무 얽매이거나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웃음이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건지 느낀 시기였어요. 여튼 일본 가기 전까지 12일 정도 남았고 3일 정도는 손가락하나 까딱 안하고 잉여거리면서 영화나 보도 미드나 보고 이러고 있을 생각입니다. 지금보고 있는 건 화이트 칼라. 쩔어주는 아버지 피터에 쩔어주는 아들 닐로 보여서 아이고 귀여워라 이래가면서 즐거이 보고 있습니다. 슈내가 휴방한 김에 또다시 전시즌중 좋아하는 화들을 틈틈히 달리고 있기도 하고. 2시즌 20화 트릭스터의 시간 올가미 편에서 딘이 '샘- 니가 이렇게 상황을 통제하려 들 때 형은 흥분되더라'하고 대사치는 거 말인데, 딘걸들을 단체 모에사시켰을 대사도 대사지만 딘이 씩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반복재생하고 있습니다. 우으으, 좋아라. 
 ..LCL이 되는 세상은 차별화도 없을테니 다른 것을 보며 기쁘다고 느끼는 감정도 없겠죠. 젠장, 안노 히데아키의 마지막 결정이 왜 세계를 되돌리는 거였는지도 이해 갑니다. 모두가 달라 모두 다 좋아라, 좋은 말이에요. 



 
Posted by 네츠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