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떴을 때 이마는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고개를 위로 향하자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한순간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땀으로 축축한 손을 들어서 오른쪽 눈에 가져다댔다. 피부와 손 사이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okay. 현실이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서자 옆방에는 식사가 차려져있었다. 잘 구운 생선에 야채, 그리고 국. 군주의 음식이라기에는 소박하지만 마사무네는 사치스러운 것과 검소한 것중에서는 검소한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었다. 상 앞에 앉으며 마사무네는 눈 앞의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코쥬로가 상대였겠지만. 상을 앞에 두고 의젓한 자세로 앉아있는 청년은 눈이 마주치자 소년같은 얼굴로 웃었다.
"기침하셨습니까, 마사무네님."
"아, 잘 잤냐."
"침구가 편해서 푹 잤소이다."
평이한 대화를 나누며 다케다의 가신 사나다 유키무라는 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당연히도 다테의 내실에 다케다의 가신이 찾아온다는 것은 별로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하물며 잠옷에 가까운 유카타 차림의 허물없는 관계는 더더욱 말도 안된다. 하지만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인 법, 처음 유키무라가 완전무장으로 찾아왔을 때(제 딴에는 예를 갖춘 것이었다) 오슈 군을 풀려했던 코쥬로도 이제는 대충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거리, 관계, 성별 무엇하나 맞는 것이 없음에도 찾아오는 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던 유키무라의 용단에다 찾아오는 그를 받아주는 마사무네의 태도가 이러니저러니해도 주변을 감화시켰던 것이다.
"매번 신세지고 있습니다."
"괜찮아, 일인분 만드나 이인분만드나 똑같다는 게 코쥬로 입버릇이다."
그렇다고 적에게 쌀을 퍼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코쥬로는 또 펄펄 뛰었지만 마사무네는 대충 무시하고 넘어갔다. 지금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한없이 편 해보이는 자세로, 평소와 다를 것없이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은 채 마사무네도 유키무라를 따라 손을 겹쳤다. 편한 자세의 정인 앞에서 굳이 정복을 갈아입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으므로, 마사무네의 옷차림역시 잠옷으로 입었던 무늬 없는 유카타 그대로였다. 소박한 아침밥상 앞에서 필두의 얼굴은 몹시도 편해 보였다.
"마사무네 님."
"ahn?"
하지만 유키무라는 자신의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가며 눈치를 살피듯 물어왔다. 눈가를 올렸을 때도, 유키무라는 태도를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그 눈은 사뭇 진지했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으셨소이까.
"..뭐야, 별로."
"얼굴색이 나쁘십니다."
어물쩍 넘기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듯한 단호한 말에는 뭐라 둘러댈 말도 없었다. shit. 사나다 유키무라는 속이기로는 가장 질이 나쁜 상대다. 입안으로 가만히 그렇게 중얼거리고, 마사무네는 한껏 퉁명스러운 어조로 가볍게 내뱉었다.
"꿈을 꿨어."
"어떤 꿈이셨기에 그런 얼굴을 하셨소이까."
강아지마냥 커다란 눈망울에는 어느새 걱정이 잔뜩 배어났다. 걱정이 들어차 있는 눈동자를 마주보면서도 마사무네의 태도는 사뭇 덤덤했다.그 눈을 보면서도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지는 않았다.그래서 입밖으로 나온 말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널 죽였다."
그래도 입밖에 내는 순간, 자신이 가능하면 그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을 알았다.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창과 검이 부딪히는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검은 그를 베었다. 수천번이나 겪어왔던 베어내는 감촉을 한번 더 느꼈다. 등 뒤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본 자리에는 움직이지 않는 홍련이 있었다. ..그 것뿐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갈색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셨소이까."
유키무라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조금 안되었다는 듯 살짝 웃었다. 말을 잃어버리고 마사무네는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건 꿈이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것뿐이다. 너를 잃는 지독한 악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고 라이벌을 처단한 좋은 싸움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 꿈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 것을 판단할 자격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마사무네 님."
자신이 입에 담은 말을 담담히 되새기고, 그 말의 무게를 상기하고 있었을 때 유키무라는 담담하게 고개를 숙여 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생각에 잠기나 했더니 그는 맛깔스럽게 올라온 채소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올리고 있었다. 더 머뭇거리지도 않고 유키무라는 단숨에 말했다.
"-이 유키무라, 쉽게 당하지는 아니하오이다."
시선은 여전히 집어올린 야채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건 투기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죽지 않겠다는 식의 말도 아니었다. 특별히 무게가 담기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지극히 그다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한 입에 얼른 물어 삼켜 우물우물 씹고는,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를 들어서 마사무네를 바라보았다. 그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사무네는 할 말을 잠시 잃었다. 유키무라는 그런 마사무네를 아랑곳하지 않고 솜씨좋게 젓가락을 놀려 다른 반찬을 집었다.
그 태연한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마사무네도 피식 웃었다.
"..haa, 이 쪽도 안 진다?"
반쯤 비꼬는 듯한 어조에도 끄떡도 하지 않고 눈으로만 대답하며 유키무라는 생선을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마사무네도 자신의 아침상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코쥬로가 정성들여 키운 야채로 차린 식사가 이제야 재대로 맛이 느껴졌다.
반찬이 맛있어서 놀랐소이다. 유키무라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전장이라고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천진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그 얼굴이 바보같아 피식 웃은 마사무네는 장난스레 유키무라의 식탁에서 남아있는 나물을 한웅큼 집어왔다. 우와와와, 하고 울상이 되어버린 얼굴에다 바보냐,하고 비웃어주고 한껏 멋부린 동작으로 집어올린 야채를 한입에 밀어넣었다. 과연 청량한 맛이지 않느냐고 감상을 요구하자, 유키무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잔뜩 아쉬운 얼굴이었다. 생기도는 그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는 게 좋다고, 늘 좋아했다고 새삼 속으로 깨달았다. 그 것을 말해주었을 때 혈기왕성한 연하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한 뻔자라 마사무네는 굳이 그 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이 녀석은 지금, 여기 살아있다.
아직은 그런 것을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 것만을 기억해두고, 오슈의 필두는 잔뜩 아쉬워하는 얼굴을 향해 웃어보였다.
fin.
오랜만에 전바2를 플레이한 김에 예전에 썼던 SS를 꺼내봤습니다.
서로가 곁에 있게 되는 날이 와도, 서로의 그림자를 쫓고 있다는 것은 잊지 않을 사람들.
한쪽이 한쪽을 죽이는 날에도 우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 점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