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안쪽에서 들이삼킨 숨이 내려가지 못하고, 왼쪽 가슴, 심장구석 어딘가에 걸린 채로 텁텁하니 맺혀있는 감각. 눈꺼풀 밑에서 파르르 떨리던 무언가가 맴돌다 못해 흘러넘쳐 뺨끝을 스치고가서 입술사이로 흘러들어가 목을 메이게하는 감각. 내뻗지 못하고 말아쥔 채 허공만 서성이다 기어이 툭 떨어져버린 손과, 축 처진 어깨 위로, 물먹은 솜처럼 묵직한 것이 숭덩숭덩 얹혀있는 그런 감각.
해결사와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것은 금요일이었다.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것을 부러 무시해주자 녀석은 아가씨에게 수작을 거는 양 유들거리는 태도로 또 뭐라 어이없는 농담들을 쏟아부었다. 길에 널려있는 나사빠진 한량들이 입에 담았다면 벨 가치도 없다며 돌아설 말이었고 부글거리는 속을 눌러죽이며 앉아있어야하는 윗자리에서 배부른 늙은이들이 입에 담았다면 검손잡이로 손이 가는 것을 참으며 속에서 욕을 퍼부어주었을 그런 말이었다만, 녀석이 내뱉으면 기가 차서 화도 나지 않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이를 갈며 무시해주고, 또 찔러대고,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떠날 때즈음이 되어서야 녀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참 히지카타 군, 이번 주말은 바빠."
"우연이구만, 나도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되받아주고서 바로 아차, 싶었다. 반쯤 오기어린 대답이었던 것까지는 알지 못했는지, 녀석은 다행이라며 가볍게 받았다. 그 얼굴에 아쉬워하는 기색은 한톨도 없었다.
"오, 피차 다행이네. 그럼 다음 주에?"
"이번 달은 내내 바빠."
연중무휴로 높으신 분 뒤치닥거리부터 거리 치안까지 할 일이 쏟아져들어오는 진선조의 부장역이니만큼 내내 바쁘다는 말은 별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다만 바쁜 시기에 무리해서 휴일을 이번 주말로 잡아버려 이번 달 내내 무리라는 속사정은 죽어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우와~ 비싸네, 진짜 비싼 남자네 히지카타군- 아직 월초인데 월말 스케줄까지 빡빡하십니까? 어디의 잘나가는 호스트님이십니까? 긴상은 상상도 안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거지, 돔 페리뇽을 물마시는 듯하는 세계라 이거지, 요녀석아."
"오냐, 돔 페리뇽에 마요네즈를 부어마시는 세계다."
"비싼 음식을 쓰레기로 만드는 세상이라니 부해 출신이었어? 오무냐? 오무야? 촉수플레이가 좋으십니까, 다음 번에 시도해보고 싶습니까 요녀석아?"
"촉수같은 거 달린 적 없거든, 금빛으로 안 빛나거든. 그보다 마요네즈를 모욕하지마!"
"네가 마요네즈를 모욕하고 있거든요, 걔는 소스지 쌀이 아니에요.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마이너리그라고요 마요네즈가 활약할 곳은. 댄스가수 데려다가 트로트 부르게 하면 좋습니까? 그럼 다음 달에나 보겠네."
"..뭐, 그렇지."
한들거리는 목소리 끝에 내걸린 한마디는 여전히 산뜻해서 순간 대답하는 데에 숨이 막혔다. 그럼 그 때 봐. 여전히 가벼운 웃음조가 걸린 채로 대꾸하는 녀석에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잘가라는 느슨한 인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두어걸음 걷고 나서야 저도 모르게 오른손을 있는 힘껏 말아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힘을 빼자 손바닥에 반달모양의 손톱자국이 선명한 것이 한심했다. 힘주어 거리낄 것없다는 듯한 녀석의 태도보다도 그런 녀석의 태도에 움찔했다는 점이 오히려 상처였던 만큼, 녀석은 눈치 못챈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게, 금요일이다. 하다못해 수요일, 아니 목요일이기만 했어도.
금요일 저녁에 와서 주말의 비번을 취소하기에는 일정을 조정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할 일도 없이 생긴 망중한은 둔영을 뒤집어 엎는 것으로 보냈다. 대원들의 사물을 단속하고 전원을 두들겨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신규대원들이 대련하겠다며 들썩이다가 구멍내놓은 장짓문 창호지들을 죄갈고 그 것도 모자라 기둥에 광을 냈다. 설날도 아닌데 왠 대청소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곤도 상은 '토시, 네가 하면 하는 거지'하고 너털 웃어버렸다. 그 점까지는 고마웠지만 국장인 당신은 일할 것 없다며 앉아있으라 해도 기어이 돕겠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더니 대청마루에 걸레질을 하다말고 요란하게 미끄러져 마당에 처박혔다. 신선조 국장이라고는 지나가던 개도 안믿을 것같은 꼴로 기절한 그를 실어다 방에 나르는 쪽이 더 힘들었다. 일찌감치 순찰 돌고 오겠다며 튀어버린 오키타야 애초부터 기대도 안했다만 야마자키가 단속한 물품들을 광으로 나르다 말고 무더기로 쌓인 잡지 한가운데 앉아 점프를 읽고 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날았다.
토요일 온종일 이어진 청소를 일요일 아침까지 마무리하고서는 할 일이 없어 둔영 안에 있었다. 깔끔해진 방안에서 묵묵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안되보인 건지, 어이가 없었는지 야마자키가 말을 걸어왔다.
"..부장, 모처럼 비번이니 좋아하는 단골가게라도 나갔다오시면 어때요?"
이마에 혹이 나도록 맞고서도 넉살좋은 녀석의 권유에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갈까하고 생각하자마자 마요네즈 스페셜을 파는 가게는 우지돈부리따위를 시켜먹는 녀석에게도 기꺼이 개밥을 팔아주는 곳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혹여 녀석이 거리에 나돌아다니다 그 가게에 앉아있기라도 하면, 그리고 거기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일이 있다'라고 뻗댔던 것이 죄다 들켜버릴 것이 뻔하다.
"됐어. 일감 정리나 해두겠다."
"부장은 워커홀릭이네요 진짜. 서류더미랑 결혼하겠다고만 하지 마세요."
"넌 나가서 일이나 하고 와. 베드민턴 채랑 결혼하면 즉각 할복이다."
누굴 변태로 아냐며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깨끗히 무시하고 엉덩이를 차서 내보냈다. 한동안 위쪽으로 보내는 서한과 아래쪽에 내릴 지시사항을 분류해 내용을 메꾸어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방문이 열렸다. 야마자키인가해서 올려다보니 난처한 얼굴의 곤도 상이었다.
"토시, 공무가 들어왔는데.. 저녁에 시간 있으면 같이 가줄 수 있을까?"
"공무요?"
"접대 역할인데..처음 보는 분이라 나 혼자는 좀 어려울 것같다."
잔뜩 미안한 얼굴을 한 곤도 상이 들고온 서한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몇번 접대를 해본 적이 있어 낯익은 관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몇번 일로 마주쳤을 때 직급상 상관인 그를 경호하여 돌려보냈더니 호위를 거느리고 다니는 것이 썩 마음에 든 눈치였다. 말이 좋아 술자리권유지 허울좋게 부려먹겠다는 심보가 훤했다. 지금껏 자기 선에서 예를 갖추어 거절하곤 했더니 이번에는 곤도 상 앞으로 서한을 보낸 모양이었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호색한에 거들먹거리는 사람이다. 마츠다이라 님 정도로 죽이 맞는 상대가 아니고서야 예법을 지키는 자리에서는 애먹을 곤도 상이 혼자갔다간 별 소리를 다 듣고 올 것이 뻔했다.
"같이 가죠. 몇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고맙다, 토시! ..그래도 미안해지는걸. 오늘 비번이었을텐데."
"괜찮아요. 어차피 일도 없었고."
"그래도 휴일인데.. 면목없어."
"준비나 하세요. 나도 준비할 겁니다."
곤도 상의 얼굴이 순식간에 활짝 펴졌다가, 곧 어두워졌다. 저 솔직한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웃으며 보내자 곤도 상은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바삐 뛰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복을 벗고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어제 청소하는 김에 같이 빨아놓은 제복은 깨끗하게 다려져있기까지 해서 몹시도 단정했다. 모처럼 잘 정돈해놨건만. 잠시 뒤의 풍경이 훤해서 한숨이 나왔다.
아니나다를까, 술자리에서 제복은 꼴사나울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얼큰하게 취한 관리가 기녀를 쫓는답시고 뛰어다니다가 음식상에 발이 걸려 나동그라지는 것을 정면에서 받은 탓이었다. 음식 찌꺼기와 술 범벅이 된 제복은 그렇다치고 애써 부축한 관리는 인사불성으로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대뜸 뺨을 갈겼다. 네가 발을 걸었냐며 고래고래 소리질러대는 통해 겁먹은 기녀들이 우르르 뒤로 도망쳐 숨었다. 여자에게 화풀이하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싶어 부축해 자리에 앉혔는데, 그 것이 오히려 기분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잘난 척하는 거냐며 머리 위에서부터 술을 콸콸 쏟아부어졌다. 기녀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비명이 일었다. 욕을 퍼붓던 관리는 기어이 뒤로 넘어가 바닥을 굴러다니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곤도 상이 나서서 달래려하자 취한 관리는 대뜸 발로 곤도 상을 걷어찼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 문 것을 곤도 상이 눈짓으로 말렸다. 명치에 정통으로 맞아놓고도 곤도 상은 웃는 낯 하나 바꾸지 않고 관리를 세워앉혔다. 나리의 체통이 무너집니다. 고정하십시오. 벙실벙실 웃는 얼굴로 건넨 말에 관리도 할 말을 잊은 모양이었다. 산통이 깨졌다며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경호하겠다 곤도 상이 말하자 그 놈은 보란듯이 거친 발소리를 내며 나가버렸다. 함께 가려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곤도 상이 어깨를 밀어 주저앉혔다. 뒤는 내가 맡겠다고 웃은 그가 쿵쿵 발소리를 내며 나간 관리 뒤로 따라나섰다. 돌아본 그가 입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토시.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은 그의 얼굴에 일순 기운이 빠져, 다시 일어설 생각도 못하고 쓰게 웃어버렸다.
"..험한 꼴을 보게 해서 미안해."
"당치도 않사와요, 히지카타 님. 고맙기 그지없는 것을요!"
"그 손님, 지난 번에는 막내아이에게 잔을 집어던져 피를 보게 하였었답니다."
"정말 막되먹은 사람이지 뭐에요! 어머, 실례."
"이번에도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모르는 것을 도와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뒤에 남아 엉망이 된 방의 뒷정리를 하고, 기녀들에게 사과의 말과 금전 몇푼을 집어주었다. 술주정뱅이를 말려주다 험한 꼴을 본 손님이 고마웠는지 그녀들은 몹시도 살갑게 대해주었다. 어린 여종업원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젖은 수건을 건네주어 그 것으로 옷을 훔쳐냈다. 얼굴에 묻은 것들을 닦아준다, 머리를 털어준다하며 고운 손이 여기저기서 나와대서 애를 먹었다. 적당히 하면 됐다고 목례하고 일어서려는데 등 뒤에서 기녀 하나가 붙잡았다.
"히지카타 님."
돌아서는 순간 물방울같은 것이 앞섶을 적셨다. 동시에 코끝에 달콤한 향이 확 스쳤다. 놀라서 한걸음 물러서자 자그만한 솔같은 것을 손에 든 기녀가 빙긋 웃더니 손에 든 것을 다시 훅 털어냈다. 부드러운 향기가 다시 확 퍼졌다.
"옷, 역한 냄새가 배이셨지요? 뿌리고 가시어요."
"저희가 쓰는 향입니다."
"나는 이런 건-"
"술내음이며 역한 음식내보다야 여인의 향기가 낫지 않겠사와요."
"귀한 은인을 비린 냄새를 풍기게하며 돌려보낼 수야 없지요."
"저희 품에 온종일 안긴 손님이 아니고서야 그리 좋은 향기는 배이지도 않으니, 이러고 나가시면 사뭇 부러움을 사실걸요."
험한 손님들을 부드러운 손끝으로 다루어온 여인답게 반론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거절의 말도 꽉 막아버리고서 그녀들은 사뭇 즐거운 듯 손끝으로 입을 가리고는 후후 웃었다. 말이 막혀 서 있는 것이 안되보였던지 등 뒤에 서 있던 어린 종업원이 발돋음을 하고서 밤길 걸어가시다보면 거진 날아갈 거라 귀뜸을 해주었다. 한숨을 푹쉬고 머뭇머뭇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자, 여인들은 또 오라며 일제히 고운 손을 흔들었다.
자정을 넘긴 길거리에는 인적도 없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내걸린 밤하늘만이 몹시도 밝아 거리는 은은한 빛으로 희었다. 밤길을 걸어가는 동안 옷깃에서는 달콤하고도 여린 향기가 하늘거리며 퍼졌다. 술에 푹 젖은 채 냄새를 풍기며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귀가다 싶어 그나마 무겁던 걸음에 힘이 빠졌다.
일정은 죄다 깨지고, 더러운 놈 시중보고, 곤도 상은 얻어맞고. 최악의 휴일이었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예정대로라면 실로 오랜만에 여유롭게 보냈을 주말이었다. 피차가 바쁜 사이에다 부러 일정 외에 시간을 낼만큼 여유있는 성격이 아닌터라 근 두 달만에 잡힌 약속이었다. 바쁜 짬을 내어 겨우 잡은 휴일이고, 겨우 녀석과 정한 날이었는데.
하기사 약속이라고 해봤자 서로의 형편이 맞으면 적당히 만나는 정도였다. 약속이 깨진 적은 몇번이나 있었고, 띄엄띄엄하던 것이 이런 식으로 빈번해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두 달 가까이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오랜만이긴 했지만. 그래봤댔자 해결사의 일감이 영 불규칙해 휴일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굳이 무슨 일이냐고 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금.
..행위가 끝나고서 돌아누우면 뒤에서부터 끌어안겨진다. 밀쳐내려 그 손을 으르다가 포기하고 힘을 빼면 목에 파묻은 입술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났다. 덥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밀어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누운 채 시간을 보냈다. 열을 품어 더웠던 살이 식어갈 때즈음에 손이 장난스레 몸을 더듬고, 밀어내기도 귀찮아 누워있으면 농이 섞인 목소리가 등을 타고 울리고, 못마땅한 듯 대꾸를 하고,손가락에 손가락을 얽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길고 긴 휴식. 그 것이.
..결국에는 약한 소리가 되나. 저도 모르게 걸음이 늦어져 또 쓰게 웃었다. 술자리며 개운치 않은 일에 끌려나가 시간을 썩히고 온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도 묘하게 마음이 느슨해져있었던 모양이었다. 곤도 상과 함께 갈 것을. 혀를 차며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었다. 코끝에 달콤한 향이 스쳤다. 거리에 가득 내려앉은 달빛이 걸음을 따라 사락사락 부서지는 것이 운치 있어 발끝을 보며 걸었다.
"...히지카타 군, 달밤에 산보라도 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앞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리의 난간에 기대서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착각할래야 착각할 수 없는 그가. 무언가가 목 아래서 꽉 막혀오는 것을 눌러 참았다. 긴 침묵 후에야 힘겹게 짜낸 말을 숨과 함께 내쉴 수 있었다.
"..너야말로, 야밤에 뭐하는 짓이야, 해결사."
느긋하다못해 심드렁한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눈 앞까지 걸어와 시선을 마주하고서, 입가에 웃음이 배인 채로 가늘게 웃음지었다.
"그냥 밤에 월장이라도 해볼까하고."
"..둔영에 들어오면 베어버린다."
"우와, 그 상대가 히지카타 군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자의식과잉이네."
"이 자식이..!"
"농담이야."
뭐라 대꾸할 말을 찾기도 전해 사뭇 즐거운 어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한심할 정도로 당황한 자신은 녀석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해결사는 오비로 동여맨 유카타 자락에 왼손을 찔러넣고는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곱슬 머리카락이 턱 아래, 목 언저리를 스치고 가 숨을 몰아쉬었다. 목 언저리에 코를 대고 깊게 숨을 들이쉰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무슨 냄새야?"
"ㅅ......"
뭐라고 말을 떼야할까. 술자리에서 기녀가 뿌려줬다고? 아니면 상관의 상관쯤 되는 놈이 난동을 부렸다고? 말을 찾지 못하고 고르는 사이, 녀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술냄새에다 낯선 향기면, 잔칫상 벌여놓고 해어화라도 품에 안고 있었다 이겁니까, 히지카타구-운?"
"아니야. 나는.."
"우와- 여자 놀음입니까, 술자리입니까- 공무원이 그래도 됩니까? 긴상은 그런데 쓰라고 세금 안내거든요. 비리네 이거, 완전 비리야- 몸으로 갚지 않음 매스컴에다 고발하는 그런 비리 아닙니까? 몸으로 갚아야하는 비리 아닙니까?"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는 말투는 평소와 변함이 없었다. 그 말의 담긴 의미도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욕해주고 화를 내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이를 악물고 있다.
"..멋대로 지껄여."
"얼레? 화내십니까? 화낼 쪽이 누구인데."
돌아서려는데 내뱉는 녀석의 말이, 기어이 또 신경을 긁었다.
"-그야, 네놈이겠지!"
"..히지카타?"
뭐라 한꺼번에 퍼부어주기 직전에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밤이라해도 길 한복판이다. 둔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녀석과 스쳐가는 길이다. 적당히 받아주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늘 그랬듯이. 머리 속으로 바삐 생각이 엉켜지나갔다. 격하게 끓어올랐던 감정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실례했다, 해결사.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매정하게 그냥 보내려고?"
"그 정도의 사이였나?"
"..."
평소처럼 장난어린 말로 받을까 생각했는데, 눈 앞의 남자는 망설이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곤란한 듯 바라보는 얼굴에 희미하게 쓴 웃음이 맺혀있었다. 그 것이 긍정의 표현임을 알았다. 또다시 울컥하려는 것을 억눌렀다.
"그만 가겠어."
끊어 내뱉듯이 한 말에, 녀석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가까이 왔었냐는 듯 한걸음 뒤로 물러난 그는, 처음 그랬듯이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 앞을 성큼성큼 걸어 스쳐지나갔다. 등 뒤에서 시선은 목 뒤로 달라붙을 듯 따라왔으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잘 가, 하고 가벼운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아, 다리를 벗어날 때즈음은 잰걸음은 거의 달리듯 빨라져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걸었다. 하늘에 엉긴 달이 희어 눈가가 아려왔다. 옷에 배인 달콤한 향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밤 길이라도 걸어가시면 사라질 것이다, 그리 말했던 어린 소녀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독였다. 손을 들어 머리를 짚으려다, 편 손바닥에 또다시 생긴 네 개의 손톱자국을 보았다. 채 아물지도 않은 채 남아있는 네 개의 반원 위로 또다시 붉게 솟아있는 그 자국에 심장 안 쪽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
이 길을 지나가면 없어진다. 이 길을 걸어 돌아갈 때쯤이면 사라진다. 향기도, 무엇도 전부 다. 심장에 먹먹한 감정도 모두 다 전부.
손바닥에 남은 초승달 자국이 아려와, 상처자국을 보지 않으려는 듯 다시 주먹을 말아쥐었다.
fin.
시작은 좀 더 호노보노한 이야기였는데.. 다사다난한 부장의 휴일 이야기. 긴상 관점의 이야기를 써야 내용이 정리되는데 그건 언제 쓰려나.
1년 반(...)반에 쓴 뒷 이야기. 달빛, 스치듯이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