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개정도 꿈을 꿨는데 컴퓨터가 아파하는 것같아 이리저리 조치를 취하다보니 다 까먹고 남은 것은 두 개. 시작합니다.

핏덩어리 아기 
장례식장의 대기석이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뭐하게도 그 곳에 슬픔이나 우울함은 없었다. 아마 나도 누군가의 죽음과 최후를 기다리면서 그 곳에 있지는 않았다. 대합실의 의자는 북적거렸다. 그 소음 한가운 데에서 내 옆자리의 여인은 품에 핏덩이 간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핏덩이는 어리다는 뜻이 아니다. 빨갛게 피에 젖은 아기는, 마치 지금 세상밖으로 나온 것처럼 젖어짔다. 양수와 어머니의 피로. 나이든 여인의 품에 곤히 안겨있는 아기가 신경쓰여 나는 몇번이고 그 아기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아이를 토닥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복차림의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오지 않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품안에는 여전히 아기가 안겨있다. 나는 신경쓰여 아이를 바라본다. 품안의 아이를 고쳐안고 할머니는 다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아기를 바라본다. 
깨닫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할머니가 자리를 오고갈때마다, 피에 젖은 어린 갓난아기의 얼굴은 점점 짓물러가고 있었다. 아아, 안타까워라. 가엾게도. 아이의 얼굴에 묻은 피가 진해진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피였고, 다음은 자신의 피였으리라. 짓물러진 얼굴로도 아기는 울지 않는다. 그저 얼굴을 울듯이 찡그리고 있다. 그 표정이 가여워서 나는 또 울고 싶어졌다. 

하늘을 날아가는 예언자 썩은 자신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유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꿈 속에서 날아가는 감각은 여러번 경ㅆ었지만 늘 한결갔다. 물 위에서 배영을 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몸에 힘을 빼고, 공기 위에 자신을 싣고, 그대로 날아가는 것이다. 방방이를 탈 때 스윽, 하고 중력을 벗어나 날아가는 듯한 느낌과 배영할 때의 부유감을 섞으면 딲 맞을 것이다. 꿈을 꾸고 눈을 뜨면 한동안은 정말 이 방법대로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질만큼 하늘을 나는 감각은 선명하다. 
꿈 속에서 나는 날아가고 있었다. 지형은 아마도 늘 날던 아파트 사이였을까? 여느 때보다 빠른 비행이었다. 땅을 등진 채 하늘을 보고 날아가면서, 나는 고양감 속에서 문득 어떤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머니였을까? 침대 위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고 가슴이 터질 듯 행복했다. 고양감, 충족감, 행복. 그런 것들이 얼기설기 엉켜있는 채로. 완벽한 영원이었다. 
선명해진 비전 속에서, 나는 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이 갈색으로 변색된 미이라라는 것을 안다. 바싹 마른 눈구멍이 움푹꺼져있었고, 손목은 탄화된 것마냥 앙상했다. 껍데기만 남았을 끔찍한 모습. 그 충족감 속에 누워있는 그 풍경은, 아마도 나의 최후다. 나의 죽음이다. 나는 그 것이 미래의 자신임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미래 속의 내가 행복하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하늘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세상을 빠르게 스쳐가는 비행 속에서, 나는 다가올 미래를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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