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아>
어느 날인가 테러로 무너진 중동 지역의 영상이 tv에 흘렀을 때, 소파에 기대어앉은 그는 짜증마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열 살짜리 어린아이의 말이라기에는 지독히도 냉정한 말이었지만 열 살 짜리 쌍둥이 형제의 말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뭐라 답해줄 말이 없어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나와 꼭 닮은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tv를 꺼버렸다.
<닐- 아직 보고 있었단 말야!>
<보고 싶으면 방에 들어가.>
<니일->
<시끄러.>
토라진 듯한 표정으로 달라붙은 팔을 쳐내는 쌍둥이가 매정해서 원망스러운 눈길을 쏟아내도 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더 불평을 늘어놓으려다가 그의 눈길이 방문 쪽으로 가 있는 것을 보고 이내 말을 멈추었다.
에이미의 방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자고 있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화낼 기분이 사라져버렸다.
<닐.>
<뭐야?>
<과보호, 시스콤, 애아빠.>
<...너 죽을래?>
<에에~ 에이미가 들을 텐데?>
<이익..!>
늘 그런 식이었다. 격한 말을 하면서도 그는 동생에게, 가족에게는 그렇게 상냥했다. 방금 전과 사뭇 다른 어조로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얼어붙은 경멸- 내지는 혐오에 가까웠던 감정들은 동생을 들먹이는 쌍둥이 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그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확인하는게 좋아서, 차가운 눈을 했던 닐이 금방 뺨을 빨갛게 붉히는 게 좋아서 그렇게 자주 그의 관심을 돌려놓곤 했다.
어른들이 바보같다고, 어째서 저런 것도 지켜내지 못하냐고. 세상사에 일어나는 일들을 불쾌해할 만큼 나의 쌍둥이는 조숙했다. 그 나이에 아이들이 지닐 법한 순수와 그 아이들보다도 조금 더 섬세한 시선이 겹쳐져서 내 형제는 그렇게 자주 세상의 것들에 대해 귀를 막고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에 그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경멸의 눈초리를 했다. 그 시선에 희미하게 묻어나는 경멸의 감정이 평소의 그와는 아무래도 멀었다.
그래도 닐이 늘어놓는 불평은 꼭 아이가 할 수 있는 그 만큼의 불만이었다. 세상의 좋은 점만 배운 아이가 세상의 좋지 못한 점을 보았을 때 느끼는 불만. 불평. 그와 마찬가지로 어렸던 나는 그에게서 그러한 불쾌감을 빼앗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냉정한 만큼 가족에게 다정했다. 싸늘한 눈을 하다가도 금방 내가 아는 그의 얼굴로 웃어주곤 했다.
그래서 그저 그와 함께 있었다. 그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돌아섰을 때 웃어줄 수 있는 가족으로서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시선이 다정한 미소로 물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보았다. 다행히도 그 아이다운 치기어린 불만은, 그가 세상을 좀 더 체념할 수 있을만큼 나이를 먹으면 사라질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아마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는.
웃고 있던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하얀 모포가 더럽혀지고 구겨진 채 바닥 위에 돌출되어 누워있는 무언가들을 덮었다. 여동생은, 정말로 어리고 씩씩하던 그녀는 다른 것들과 뒤섞여 그 모포중 몇 개인가에 나누어져잇었다고 했다. 피범벅이 되어있는 닐의 옷자락은 여기저기 찢겨져 너덜너덜했다. 그 것이 그의 피가 아니라는 것에 나는 안도했지만, 그는 그 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떨었다.
<닐..니일..>
내가 울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새하얗게 질려있던 그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무기질의 인형처럼 텅빈 눈동자에 겨우 색이 돌아오고, 그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라일.>
그 어색한 미소에, 그 부서져내릴 것같은 새하얀 얼굴에, 아마 그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래도, 그저 우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그가 경멸하던 바보같은 세상을 비웃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환경오염과 전쟁과 희생자와.. 그런 것들을 방영하는 tv 앞에서 그는 몇시간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않아있곤 했다. 그 때의 그의 얼굴이 너무 차가워서, 그대로 부서질 것같아서 무서웠지만 예전과 다르게 그는 더 이상 내 농담에 웃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게 되었다.
세상을 향한 그의 치기어린 경멸은 격한 증오가 되어있었다. 깊고 깊은.
그리고 오래도록, 나는 그를 잃었다.
'록온 스트라토스야.'
그녀가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을 때 그들의 눈에 맺힌 감정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과거 닐의 동료였다던 그들은 한결같이 젊었다. 아니, 젊기보다는 어렸다. 그 눈에 새겨진 놀라움이, 그리움이 어린 그들의 감정을 미처 숨기지 못한 채 드러냈다.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미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남겨진 그들을 두고 복도로 걸어나오며 앞장 서 있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코드네임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미스 스메라기.’
‘...내 고집이니까, 받아줘.’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듯 슬픈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그 긴 복도를 묵묵히 부유하는 동안 그녀의 미소와, 어린 청년들의 표정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쌍둥이를 생각했다.
닐.
.....너는 여기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었구나.
그리고 그 애정은 그 때처럼 너를 지켜주지 못했겠지.
내가 아무리 매달려도 네가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던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매몰차게 이 곳에서의 ‘록온 스트라토스’를 버리고 간 걸까.
...................바보자식.
너는 언제나, 그렇게.
그렇게 주변을 보지 않는구나.
fin.
당신도 충분히 바보같아..orz
썼을 때 날짜는 작년 7월 8일. 그리고 2기가 시작하고 카탈론을 위해 CB에 출장나와있는 라이리를 보면서.. ....어이구 이놈아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