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종이 조각이 부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딘가 먼 곳에서 부서지고 있을 수 많은 것들을 언제나 그렇듯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간다.

 열 한살의 소년에게는 도덕도 선의도 악의도 없었다. 반쯤 썩어있는 빵을 동생과 나누어먹는 그의 모습은 여느 귀부인들에게는 동정을 품게만들만한 장면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빵을 나누어먹으며 그와 동생은 상스러운 욕설을 주고받고 있었다. 단순한 욕구와 바램과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이었던 우월, 질시, 만족감. 소년의 삶은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것은 선이라기보다는 악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는 천진하게 자신이 보는 것들을 그대로 믿고 따랐고, 훔친 돈을 가져다주었을 때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을 좋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악이라고 불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런 판정들은 소년에게 이해할 수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이었기에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한들 그는 자신의 행위에 어떠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그 거리에서는 드물게도 선량한 여자였지만 그녀 역시 아주 선량한 것은 아니었다.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큰 집에서 걸어나오는 그녀의 주머니에는 때때로 그 집에서 쓰이지 않는 식기들이 들어있었고 그녀와 소년은 그 것으로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을 풍요롭게 만들곤 했다. 허나 그러한 나쁜 손버릇과 상스러운 말투같은, 그 거리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공기와도 같은 것들을 거두어냈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정말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 것이 아이를 바르고 선량한 인간으로 길러내려는 의지로 이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그녀는 기꺼이 아이를 껴안고 입을 맞추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것은 소년에게 있어 커다란 행복이었고, 그래서 그녀의 아이역시 그녀를 사랑했다.


 한 개의 빵보다도 들이마시는 공기로 연명하는 날이 더욱 많았던 어린 소년에게 어느 날 커다란 기회가 찾아왔다. 그 것은 거리에 쓰러진 술주정뱅이 남자의 주머니에서 굴러나온 몇 개의 은화들이었다. 푼돈에 불과한 그 것은 소년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재산이었고, 쾌재를 부르며 그 것들을 집어든 소년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돈이 드는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영화관의 시설은 대단한 것이 못되었지만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소리없는 무성영화를 해설해주는 변사는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거리의 아이었던 소년은 불행히도 가난했기에 영화관 입구에서 이따금씩 새어나오는 소리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돈을 얻었을 때, 소년은 그 일부를 자신의 꿈을 위해 쓸 수 있게되었다. 처음으로 과자와 음료수를 손에 쥐고 영화관으로 뛰어들어가는 소년은 매우 행복했다. 영화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던 소년의 어머니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소년이 등 뒤에서 무너져내리는 듯한 소리를 들은 것은 그 때였다. 그리고 소년은 여전히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것을 보았다. 아니, 거의 보지 못했다.

 하늘에서 거대한 검은 물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새카맣게 질린 구름처럼 하늘에서부터 진동을 울리며 낙하하는 물체는 소년의 세계에서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어쩌면 그 것도 영화관의 한 부분일까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땅에 떨어진 물체는 그대로 주변을 끌어들이며 낙하했다. 그 것은 그 크기에 비해 너무도 조용하게 떨어졌고 너무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없애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의 검은 물체들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내리고 있었고, 그 것이 구구구궁하는 무거운 소리와함께 내려앉을 때마다 거리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비명과 혼란이 밀려왔다. 왜 다들 비명을 지르는 걸까.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우두커니 멈춰선 소년을 무언가가 달려들어 끌어안았고, 소년은 그 순간에 의식을 잃었다.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흙속에서 파내어지고 있었다. 소년을 파낸 것은 금갈색 머리카락의, 소년보다 어려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소녀는 흙투성이가 되어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소녀는 아수라장이 된 거리같은 것은 거의 모르고 있었지만 폐허 속에서 눈을 떴다는 것은 소년과 같았다. 소녀가 손을 뻗었을 때 소년은 그 팔을 붙잡고 몸을 끌어올렸다. 유난히도 무거운 듯한 느낌이 드는 몸을 간신히 끌어내었을 때는 소년도 소녀도 이미 땀투성이었다. 일고여덟살이나 되었을까싶은 어린 소녀는 환히 웃었다. 소년도 따라 웃었다. 엉망이 된 스커트 자락 밑으로 하얀 종아리가 드러나있었다. 소년은 별 생각없이, 그저 욕구에 따르듯 그 곳으로 손을 뻗었다. 옷을 정리해줄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짓을 할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엇다. 하지만 그 순간 소녀는 당황해서 그 손을 쳐냈다. 뭐하는 거야, 하고 말한 소녀의 목소리는 불안감이 섞여있었다. 건드리지마, 라고 말하며 소녀는 소년을 밀어냇다.


 그 순간에 공기가 변했다. 소년의 미소는 거의 무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공기에 겁을 먹고 소녀는 뒤로 물러섰다. 소년은 그런 소녀를 붙잡아 우악스럽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옷자락이 찢어지는 소리가 산산히 울렸고 소녀의 새된 비명이 폐허가 된 거리에 내려앉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깃 사이로 피가 튀었다. 새소리같은 비명소리는 계속 울려퍼지다가,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소녀의 피로 젖은 채 소년은 거친 한숨을 쉬었다. 그가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죄책감을 들지 않았다. 축 늘어진 소녀를 한 번 걷어차고는, 소년은 뒤돌아 걷다가 무언가에 걸려넘어졌다. 욕설을 내뱉으며 소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흙사이에는 손이 하나 나와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그는 꿇어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파괴가 시작되었을 때 자신을 끌어안았던 어머니가 있었다. 소년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소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머니의 손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죽은 소녀의 오빠가 달려왔을 때 본 것은 바닥에 쓰러진 여동생의 시체와 피에 젖은 채 울고 있는 소년이었다. 동생의 죽음에 신경이 끊어질 것처럼 되어 달려든 소년은 울고있는 소년이 어떤 이의 손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이어리에 올리려했으나 너무 길어지는 터라 그냥 잡다이야기행. 이 후에도 한참 더 있음. 마지막에 소년이 '그게 나.쁜.것이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에 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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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옛날 홈피를 들어갔다가 발굴한 꿈이야기. 기억을 되새겨보면 이 뒤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울다지쳐 기절한 소년이 눈을 떴을 때 그는 한 집의 베란다에 있었다. 유리로 된 문은 막혀있었다. 자신이 감금 당했다는 사시로다도 소년은 흙 속에 파묻혀있던 어머니를 먼저 떠올렸다. 숨이 가쁘게 뛰어 소년은 문을 두드렸다. 유리문 너머에서 또다른 소년이 나타나 소년을 노려보았다. 문이 열리고 소년은 소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데려간 화장실 욕조에서는 여인이 누워있었다. 흙투성이였던 몸을 씻어내려 정갈하게 해두었다. 그 발목 언저리에 피가 고여있었다. 죽은 여인을 보고 소년은 통곡하며 울었다. 


살의와 슬픔과 분노에 젖은 소년은 그 뒤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시체를 끌어안은 소년 위로 그는 덤벼들었다. 울음을 터트리는 소년의 목을 졸랐다. 그는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두 개의 이름이, 두 울음소리가 웅웅 소리를 내며 뒤섞였다. 목을 졸리는 고통 속에서도 소년은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목을 조르던 소년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소년 위로 무너져내려 울었다. 물과 피가 뒤섞인 시체 옆에 엉켜 쓰러진 두 소년의 눈물이 욕조에 섞여들었다. 


소년은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를 묻는 것을 도와주었다. 폐허가 된 도시 구석에서 삽을 들어 무덤 자리를 파냈다. 눈물을 훌쩍이며 소년은 땅을 팠다. 묫자리를 길게 파내려는 순간 소년은 소년의 삽을 막았다.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소년은 짧게 말했다. -그 쪽은 파지마. - 왜? 소년은 울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물었다. 메마른 목소리로 소년이 대답했다. - 여동생을 묻은 자리야. 소년은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어설프게 꽂아놓은 나무 간판이 있었다. 소년은 어린 소녀가 그 밑에 묻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마른 표정의 소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깨달았다. 자신이 어머니를 묻었듯이, 이 소년도. 


나에게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에게 그 아이도. 


그는 삽을 떨어트릴 뻔했다. 마음 속에서 무거운 절망이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자신이 죽인 소녀. 그는 엄청난 것을 깨달았고, 말없이 그 것을 받아들였다. 이 순간까지 그는 소년을 죽인 자신의 행위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덥과 소녀의 무덤이 겹쳐지는 순간 그는 깨알았다. 그 것은 나쁜 짓이었다고. 그의 안에서 죄악감이 태어났다. 이를 들어 물어뜯는 동안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행위에 죄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년에게 죄가 생겨난 것도 분명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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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채기 전까지 죄는 죄가 아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악행을 깨닫기 때문이다', '싸이코패스가 타인의 상실을 이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뭐 이런 느낌의 꿈이었습니다. 생생한 장면은 욕조신 정도였는데.. '나쁜 것이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의 소년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신기했던 꿈. 참고로 오빠가 여동생을 죽인 소년을 용서비슷하게 살려준 건 여동생을 죽인 살인범으로 받아들이려는 찰나에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소년의 얼굴을 같이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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