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외딴 섬의 학교였다. 한 때 인근지역의 학생들을 수용했던 학교와 그 학교를 위한 거리, 건물들이 가득했었던 그 곳. 현재는 정부의 시책변화로 사용되지 않게 되면서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 우리 캠프가 그 곳을 캠프장으로 사용하게 된 건 싼 가격과 좋은 조건들 때문이었다. 섬의 선착장까지 실어날라준 큰 유람선의 선장은 기분좋은 듯 웃으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캠프에는 선장의 아들도 참가했다. 나보다 한 두살 많은 남자애였다. 학교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반대 안하셔? 안 계시거든. 시원하게 웃는 얼굴에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 인원은 많았다. 섬안에서 학교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오랫동안 걸어야했다. 산길(그나마 넓게 정비되어있었지만) 걸어올라가 다리를 건너(나무다리였다, 엄청 컸지만) 지하도로 내려가서 또 한참을 걸어야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작은 학교. 김이 빠질 정도였지만 어쨌든 교 내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학교도 시끌벅적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기묘한 곳이었다. 인원은 생각보다 많았고.. 많았고, 많았다. 그 날 오후 무렵, 나는 숙소를 빠져나와 학교 구석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친구들과 함꼐였다고 생각했지만 사촌을 제외하면 모르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구워먹던 고기가 떨어져 아쉬워했다. 사올까? 사오자. 학교 외각으로 한참 걸어가면 슈퍼가 하나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고기를 사려고 걸어가는데 옆에 긴 사다리가 보였다. 학교 건물에 맞춰서 만든 것처럼 끝은 살짝 휘어져 조립할 수 있게 되어있고 색깔은 연보라색.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사다리를 올랐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학교 옥상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 둘, 셋. 세 사람의 여자였다. '뭘 해줬으면 좋겠어?' 목소리가 방울같이 울린다. 엉겹결에 대답해버렸다. '고기 사러가는데요.' 여인이 웃었다. 활짝 미소지었는데도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럼 줄게.' 뭐야이거,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들은 일제히 푸른 공같은 것을 던졌다.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것들을 보다가 안색이 변했다. -저거, 폭탄인데. 

교정을 가로지르며 미친듯이 뛰었다. 도망쳐야 돼. '도망쳐!!!'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입구 구석에는 몸을 낮춘 채 구경하듯 지켜보는 애들이 있었다. 곧 죽는다, 죽는다.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쳐가면서 도망치라고 다시 크게 외쳤다. 개미떼 앞에서 발을 구른 것처럼, 학교에서 쏴아아 하고 사람들이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개미떼처럼. 

지하도를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내려갔다. 인파가 무섭다. 잘못하면 깔려죽을지도 모른다. 곳곳에 시체가 널려있었다. 달려 내려가고 있는 것은 3만 6천명의 사람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뛰었다. 올라가는 길 난간에는 로프가 줄줄히 묶여있는데 그 로프 위로 빨래처럼 내걸려있는 퉁퉁 부은 시체들이 보인다. 냄새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헤쳐가면서 뛰었다. 썩어서 끊어진 것처럼 너덜거리는 회색 로프에 그 위로 내걸린 시체들. 지하도는 어쩐지 아침에 걸어내려왔을 때와는 아주 다르다. 무섭게 길고, 무너지고, 황폐화되어있다.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이미 해가 저문 밤이었다. 달려가자 앞에는 세 사람의 선생님들이 서 있다. 한 사람은 아빠고 다른 사람은 삼촌이다. 아빠를 힘껏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빠가 꼭 안아준다음 목에 걸고 있던 커다란 조명등을 입에 갖다댔다. 마이크 겸용이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쪽으로. 붕붕 휘두르는 빛이 밤의 어둠을 가른다. 이 앞은 다리니까 조심해서 건너야합니다! 옆의 삼촌이 나를 본다. xx 못봤니? 사촌의 이름인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오고 있겠지. 삼촌이 아쉬운 얼굴로 달려간다. 아빠가 자기가 들고 있던 조명등을 내게준다. 어두우니까 잘 비추고 가. 그러면서 아빠는 내가 목에 걸고 있던 간이 조명등을 받아든다. 그 뒤를 따라 달린다. 먹물처럼 까만 밤에 손에 든 빛이 전부. 군데군데 깜빡이는 빛을 따라 긴 사람의 무리가 다리를 건넌다. 일사불란한 발걸음 소리가 전부. 옆에서 사촌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여기 있었어? 반가워 고개를 돌렸다. 반달눈으로 웃고있는 사본의 얼굴인데도 이상하다. 다새히 보니 뺨에서 입굴에 걸쳐 동물에게 물린 것같은 잇자국이 남아있다. 이리저리 꿰맨 자국. 이 자는 죽은 자다. 떨떠름하게 웃고 다시 뛰어나갔다. 사촌이 아니길. 그녀로 분한 누군가이길. 여전히 뛰었다. 

다리를 다 건넜을 때 하늘 저쪽에서 흐릿하게 동이 터왔다. 어슴푸레한 빛이 섞여 사람들이 살았다며 웃었다. 환희에 차서 비탈길을 달려내려가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저렇게 뛰면  죽을 텐데. 조명등의 마이크에 입을 대고 크게 욏ㅆ다. 뛰지 마세요, 죽어요! 개미떼가 흩어지던 것처럼 널리퍼져나갔던 그 때의 내 목소리와 같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비탈길을 썰매라도 타려는 양 엉덩이를 깔고 내려오는 금발 여성이 있다. 외국인? 멈춰게웠다. 한국어를 모르는 그녀와 손짓발짓으로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른다. 이미 여러번 주변에 사기를 당했다. 나는 그녀의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같이 걷고 있는데 그녀가 없다. 아, 이 사람도. 깨닫는 순간 그녀가 폭탄을 집어던졌던 옥상 위의 여자 중 한 명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손에 들린 책은 솜사탕이 든 비닐봉지로 바뀌어 있다. 

멀리서 너울너울 베일같은 것이 날아온다. 옥상 위에 있었던 여자중 나머지 두 사람이다. 길게 이어진 사람들의 무리에서 비명이 솟는다. 죽어 썩어 허물만 남은 듯한 몸을 입고 그녀들이 쫓아온다. 노리는 것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 내 옆에 서 있었던 자매의 혼이다. 누덕누덕 무너져내린 솜사탕처럼 보이는 그 것을 들고 모르는 척 달렸다.

선착장에는 큰 배가 서 있다. 다들 바삐 올라탄다. 나도 그 배에 올라타려다 멈칫했다. 등 뒤에서 쫓아오고 잇는 여자들은 내가 가진 것을 노리고 있다. 배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배가 선착장에서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선착장에 남은 작은 보트를 탔다. 여기 있었어.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선장의 아들이었다. 너는 출발 안했어? 네가 안가길래. 그는 익숙한 몸짓으로 배에 올라탄다. 함께 배에 탔다.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고 그가 배를 출발시켰다. 파도에 배가 출렁인다. 물을 뒤집어쓰며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놓았다. 그 안에 든 것들이 한꺼번에 물에 녹아 휩쓸려간다. 

물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아이와 함께 있네요. 당신에게. 띄엄띄엄 끊어지는 말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 물 속에 사는 누군가가 내 손에 병을 쥐어주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화장품 병이다. - 바닷물에 닿으면 당신에게 선물을 줄거에요. 병안에 바닷물을 담그고 뚜껑을 닫아 흔들자, 안에서 싸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애기진주들이 나타났다. 계속해서 흔들자 진주들은 합쳐져 더 큰 진주가 된다. 아, 좋은 선물이네. 새끼 진주가 한 알이라도 남아있으면 이 효력을 계속된다. 커진 진주를 빼내는 와중에 새끼진주가 떨어질 뻔해서 손가락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흔들자 또 씨앗처럼 진주들이 물 속에 퍼진다. 그 병을 품에 안았다. 내 맞은 편에 앉은 소년은 바다의 정령이 낳은 아이다. 입밖으로 내어 묻지는 않았다. 

선착장에 도착했다. 건물이 이어져있는 풍경은 고요했다.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작은 입구로 나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사람들이 보이지만 문이 잠겨있다. 2층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위쪽에서 여자둘이 고개를 내민다. 손에 들고 있던 건 어떻게 했어요? 맑은 목소리다.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바다에 떨어트렸더니 물 속으로 녹아버렸어요. 여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들은 비통한 울음을 내며 사라진다.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혼이 두개, 보인다. 정령들에게 잡혀 녹아 사라지겠지. 

섬 안에 남아있던 혼들은 그 날 한꺼번에 탈출했다. 도합해서 3만 6천명. 백명도 안될 캠프장에서 길게 이어지던 탈출의 줄에는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섞여있었으리라. 섬은 깨끗해졌고, 풀려난 혼들은 갈 길을 찾아 떠났다. 나는 웃으며 아빠와 선장님이 있는 1층 홀로 향했다. 주머니에 넣은 진주가 따뜻했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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