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에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인솔자인 체육선생님이 모이라고 지시를 내렸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억누르고 정류장까지 자전거로 달려간다. 하얀 눈이 쌓인 거리에 녹색잎이 달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정류장에서 친구의 얼굴을 봤다. 반가워서 손을 흔들고, 자전거를 주차하고는 대절한 관광버스에 올라탄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갈 곳은 제주도야. 다들 돈은 챙겨왔지? 어라?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니터에 돈이 표시된다. 백만원, 또 백만원. 차비랑 숙박비로 백만원이고 식비랑 유흥비로 백만원. 괜찮지?? 그렇게 묻는 선생님에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차가 출발한다. 어, 안되는데. 친구와 눈이 마주친다. 나 안 갈래. 이런 여행인줄 몰랐어. 친구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너무 비싸다. 차가 멈추면 내리기로 하고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저 그냥 내려주세요. 안갈래요. 어? 왜? 돈 그렇게 없는데요.. 선생님이 얼굴을 찡그린다. 갖고다니라고 했잖아. 속으로 생각한다. 수백만원씩 갖고 다니겠냐, 참내. 선생님이 머리 뒤를 벅벅 긁는다. 그럼 빌려줄테니까 다음에 갚을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요, 그냥 안 갈래요. 이미 출발했는데.. 그냥 내려주세요. 걸어갈게요. 좀 있음 휴식지 도착이야. 거기만 들렸다가 그럼. 퉁퉁거리는 목소리가 아쉬워보인다. 그러죠 뭐. 고개를 끄덕이고.
하얀 눈이 내린 운동장에 버스가 멈춰섰다. 눈앞의 건물은 왠지 낡아보인다.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운 공기에 신기하다는 듯 아이들 특유의 웅성거림이 솟아난다. 선생님, 여기 뭐에요? 유명한 폐가야. 선생님도 장난치듯 웃는다. 밤에는 무섭지만 낮에 잠깐 구경하고 가는 건 괜찮지 않냐. 자유시간 두시간이다. 어깨를 으쓱하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눈이 쌓인 운동장으로 우르르 나간다. 나와 친구도 내렸다. 폐교와 폐가. 운동장 너머 멀리 보이는 건물들도 벌겋게 녹이 슬고 무너져있다. 큰 건물 뒤로 돌아가자 잡동사니가 쌓여 지저분하다. 아, 나 여기 와봤었어. 그제서야 깨닫는다. 어떡하지, 들어가면 안되는데. 여기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니들은 안 놀고 뭐하니? 그냥 가려구요. 그래? 선생님에게 악의는없어보인다. 그래도 구경하고 가. 아깝잖아. 안되는데, 안되는데. 불안감이 마음을 달리면서도 친구의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1층 바닥에는 모래먼지가 쌓여있고, 낮인데도 묘하게 어둑어둑하다. 구석의 계단을 올라갔다. 방이 보이거나 했지만 아무데도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가 끌어안고 있는 하얀 강아지가 묘하게 짖는다. 당연하지, 여기는 있는 곳이니까. 불안감이 다시 달린다. 서둘러보고 내려오려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신부의 붉은 대례옷 자락이 보였다. 나는 부러 그 것을 외면했다. 다른 방에는 푸른 신랑옷이 허공에 매달려있었다. 그 것도 외면했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친구가 아닌 다른 일행 애가 나를 잡아당긴다. 여기, 여기봐. 뭐하는 거야. 생각하면서도 함께 갔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화장대 위에 조그마한 미니어처 책들이 차례차례놓여있다. 이거 지금 되게 희귀한 책들 아니야? 가져갈까? 들뜬 목소리로 다른 애가 말하자 친구도 끌린 듯 손을 뻗는다. 안돼!!! 목소리는 거의 비명같았다. 그 서슬에 손을 움츠리다가 다른 애는 책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안돼. 그 애는 눈매를 가늘게하고 노려보더니 나가버렸다. 친구가 어깨를 잡았다. 그냥 가자. 나는 쪼그리고 앉아 책들을 주웠다. 여기, 제대로 안해놓음 저주 받아. 응?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책들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책들 사이에서 메모가 빠져나왔다. 화장품 샘플이 여러개 붙어있는 낡은 종이다. 그 것들을 하나하나 재대로 붙이고, 나는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 샘플을 하나 더 붙여놓았다. 좋은 거에요. 죄송해요. 고개 숙여 사과하고, 서랍장을 정리한다음 나는 옆에 있는 침대에 어지러져있는 이불을 반듯하게 펴서 나왔다. 친구는 불안한 듯했다. 손을 잡고 씩씩 내려왔다. 나는 그 메모 뒷장에, '스물 세살이 되지못한 내 딸을 위해서'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쓰여있다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끝나고 나와 친구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원씩은 내야했지만 200만원에 비하면 훨씬 쌌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꿈을 꾸었다. 단정한 침대 위에 앉은 갈색 곱슬머리 여인이 미소를 짓고있었다. 처량해보이는 미소였다. 그녀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사라졌다. 눈을 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꿈을 꿨어. 나는 나와 같은 꿈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갈색 곱슬머리 여자가 나와서 나한테 왔어. 손톱으로 손목을 살짝 긁었어. 아프더라. 그리고 다시 손을 드는데 우리 강아지가 짖으니까 강아지를 빤히 보더니 '이걸로 용서해줄게.'라고 하더니 사라졌어. 아침에 일어나니까 손목에 긁힌 자국이 있더라. 다행이다. 그녀도 나도 용서받은 모양이다.
tv를 켰다. 선생님 통솔로 놀러온 학생들이 제주도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상자는 없고 사망자만 한 명 있었다. 트럭의 짐이 떨어지면서 쇠철근이 버스 유리를 깼다. 거기에 꿰뚫려 사망한 소녀는 그날 나와 내 친구를 그 방으로 끌어들였던 애였다. 아아, 어쩐지. 책을 정리하는데 먼지가 쌓이지 않은 네모난 자리중 하나가 비어있었던 것도 같다..
살인 바이러스의 습격, 또 하나의 바이러스, 강해진 힘, 살인. 친척, 가족들 사망, 등등등. 이건 다시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