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삼국지를 좋아합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 삼국지 60권은 닳도록 읽었고 (특히 맹획vs공명을 좋아했어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전편을 다 플레이했어요. 그밖에 삼국지 연의 전 3권 번역본이라든가 고우영 만화 삼국지라든가 삼국장군전이라든가든가든가든가.. 깊게 판 편은 아니지만 대충대충대충 위촉오 삼국의 이미지는 항상 뇌리에 박혀있었습니다.
2. 그래도 설마 제가 삼국지 무장들을 대상으로 오토메 게임을 즐기게 될줄은 몰랐죠..orz 진짜 (코에이 삼국지에서 여자무장 만들어서 조자룡과 결혼하는 게 일상이었던 주제에) 삼국 무장들을 공략대상으로 삼는다는 발상은 해보지 못했어요. 저한테 삼국지는 모에물이기 이전에 추억 속의 전략 역사물이라 더 그랬는지도요. 하지만 구천구지반에다 '가상임' 감투까지 쏙 씌워서 만든 삼국연전기의 캐릭터들은 진짜진짜 귀여웠습니다.
3. 플레이하게 된 계기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아포크리파를 신새벽 갑자기 시작했듯이 삼국연전기도 갑자기 시작했습니다. 너 이 게임 알기나 했어?; 수준으로 아는 것도 없었는데 대체 왜 시작한 건지 지금도 미스테리. 아무래도 조승상이랑 사랑에 빠지라고 신이 계시를 내리셨나봅니다.
4. 문명의 이기란 이기는 다 사용해서 번역 한글판 플레이로 만드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한시간 반. 사실 일판 플레이해도 상관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중국 지명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는데다가 전투신까지 나오니까 벅차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이지트랜스를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저 한글 읽는 속도는 무지 빠릅니다. 닌텐도 두뇌트레이닝에서 초당 33자 읽는 걸로 나왔어요! 그리하여 약 3일간 꼬박 플레이한 결과
정신차리니 올클리어
5. (위짤은 올클하면 나오는 서비스 샷입니다.) 참고로 왼쪽 갑옷 청년이 유비(미키 신이치로), 나란히 서 있는 어딜보다 관우같은 사람과 그 옆에 장발 미남과 책들고 안경낀 소년까지가 관우(사쿠라이 타카히로), 그 옆의 금발성실소년이 조운(이시다 아키라), 바보처럼 입벌리고 웃고 있는 덩치큰 청년이 장비(호시 소이치로), 그 어깨에 탄 채 웃고 있는 소녀가 야마다 하나(여주인공), 그 옆에 붉은 옷이 조조(모리카와 토시유키), 그 뒤의 문관스러운 청년이 순욱(타케모토 에이지), 줄줄히 있는 머리 네 개가 위에서부터 소교/주유/히든캐릭터 조안/노숙, 그 옆에 비슷한 금발 남매가 손권/손상향,왼쪽으로 와서 부채 든 소녀가 부용, 바보털 달린 소년같은 청년이 제갈량, 그 옆에 나 황제요 쓰여있는 것이 헌제.
6. 클리어순서는 (분명 유비부터 하려고 했으나) 자룡->현덕->운장->익덕->중모->문약->공근->맹덕->조안->공명이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든 루트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맹덕. 이하 루트별 감상.
7. 자룡 : 마지메, 마지메, 마지메. 주문처럼 외울 수 있는 말. 커티스 나일도 그렇고 저는 성우가 이시다 아키라면 첫방으로 공략하는 저주에 걸려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연상에다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유비를 선정해놓고 자룡이 나타나자마자 자룡루트로 들어가고 있던 것이 개그라면 개그. 유능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성실하며 성실해서 서툰 게 엄청나게 귀여운 캐릭터였습니다. 여주인공이 황건적 난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 위해 주점에서 접객알바를 시작하자 자기가 여장하고 그 역할 떠맡는게 어찌나 귀여운지. 시종일관 성실하고 서툴어서 아아 귀여워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오다가 마지막 엔딩 신에서는 숨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이시다상은 진짜,진짜, 진짜 연기를 잘해요.
8. 현덕 : 아버지같고 오빠같은 느낌의 캐릭터. 정녕 사람은 좋은 남자를 만나야 된다는 것을 이중삼중으로 느끼면서 감탄했던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지나쳐도 곤난해요. 여주인공이 속을 너무 태워서 안타까웠던 루트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부용이 최고.
9. 운장 : 사쿠라이 상의 톤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차분한 톤인데다가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지만 루트를 완료하고서는 좀 아쉬웠어요. 운장 루트는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플레이의 핵심에 다가서 있습니다. 구천구지반의 효능(?)이라던가.. 그래서 엔딩도 가장 납득이 된다고 할까 하나의 가족들에게도 하나에게도 해피해피인 엔딩이긴 한데, 그 전제로 '삼국지 세계관은 만들어져있는 세계(가상세계)'라는 걸 확 깔아버리는지라 이야기 전체에서 꽁기한 맛이 느껴집니다. 운장 루트를 제외하면 연애 루트의 경우 여주는 삼국지 세계에 있을 것을 택하는데, 그러면 그게 과거라도 좋으니 실제로있었던 세계/혹은 평행세계라는 식으로 처리해줬음 했어요. 만들어진 세계라고 해버리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 슬프잖아요.
9. 익덕 : 단순해! 먹을 게 가득하면 천국인 바보씩씩청년이 캐릭터였던지라 술먹고 성격바뀌는 것을 빼고나면 시종일관 착하고 순한 대형 리트리버와 함께 있는 것같은 루트였습니다.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괜찮다고 뻐팅기면서 시무룩해서 나무 위에 앉아있는 장면같은 건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연상이지만 연하같은 느낌. 하나가 음식을 만들어가자 얼굴이 환해져서 먹는다던가 아이처럼 우는 장면들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10. 중모 : 소년이여 귀여우니 천하가 네 것이다. 츤츤츤츤츤츤츤데레 츤츤츤츤데레데레츤츤데레데레츤츤츤데레의 화려한 박자를 갖춘 왕자님. 오의 주군이 될 사람인 만큼 어린 나이답게 오만방자하고 잘난체 쩌는 면이 있는가 하면 소년스레 순진한 부분도 있고, 일국의 주인이 될 자로서 느끼고 있는 부담이라든가 하는 것도 잘 보여서 여러모로 귀여운 캐릭터였습니다. 오나라 진영은 공략대상도 귀엽지만 대교/소교 콤비에 상향이 더해져서 만드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히나 마음에 쏙 들어서 애들 장난에 쩔쩔매는 손권 소년은 무지 귀여웠어요. 게다가 몇번이나 여주인공을 데리러 오는 장면들을 어리지만 남자애구나 싶어져서 마음이 든든해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조승상과도 대등하지 않을까.
11. 문약 :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자는 모토하에서 조승상을 미뤄놓고 시작한 문약. 문관에다 냉랭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차가운 듯 따뜻한 남자. 여주인공과겪는 역경이나 이런 것보다도 한나라를 생각하는 충신으로서의 고뇌와 주군인 조조맹덕을 위하는 마음이 섞여서 방황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여주인공의 도움으로 맹덕이랑 재대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면은 가히 진국. (니들 말로 좀 하지 그랬냐 싶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드문드문 보여주는 따뜻한 얼굴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
12. 공근 : 클리어 안하면 영영 안할 것같아서 (스와베 상에게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후딱 달린 캐릭터. 엄청 미형에다 예쁜 얼굴인데다 제 삼국지계 모에에서 탑오브 탑에 드는 것이 손책과 주유의 관계라 (서로 마음을 허락했으되 형제처럼 친밀하나 주군과 신하의 관계고 주군이 먼저 요절하는 바람에 남겨진 신하가 온 몸으로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을 챙기고 챙기다가 따라 요절하는 관계라는 시점에서 이미 넉다운) 흥미롭게 플레이했습니다. 이미지는 '손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치고 니 목숨도 바치겠다'같은 느낌?; 웃는 얼굴 뒤로 꿍꿍이가 쩔어주는 복흑이면서도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면 죽은 친우 백부에 대한 부채가 가슴 위에 켜켜히 쌓여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상처로 열에 들떠 울면서 손책에게 사죄를 거듭하는 장면과 10년 전 과거로 돌아갔을 때 손문대(손견) 앞에서 씁쓸함을 감추려 애쓰는 장면은 필견. 삼국정사와 연계도는 엄청낮은데도 주유 루트에 깨알같이 들어가있는 손책+손견을 보면 일본에서는 오나라가 짱먹는다는게 마냥 거짓말은 아닌 모양입니다(...)
13. 조안&공명 : 분명 만족스러운 루트인데 그 전에 조승상 플레이했더니 싸그리 날아갈 것같은 두 캐릭터. 공명의 순정(..)과 조안의 소소한 행복은 엄마미소.
14. 그리고 조맹덕. Cv. 모리카와 토시유키. 이 캐릭터의 모에함은 제가 묘사할 수 없으므로 짤로 대신합니다.
정사에서는 이런 얼굴을 하지만
평소에는 넋 하나를 저리 던져놓은 것마냥 천진한 얼굴을 하고
좋아하는 소녀앞에서는 이런 얼굴도 하고
하지만 그 속내는 장원의 패자로 군림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능히 다루고 거짓을 잘 눈치채며 남을 믿지 않는 성품이라서 여주인공과 사귀어나가면서도 그 뒤에서는 완전히 믿지 못한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여주인공과의 관계가 꼬이고 꼬여서 여주가 약을 먹이려고 했을 때, 맹덕은 여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표정.
더 말이 필요한가여..orz
이후 하나가 자신을 대신해 약을 먹고 쓰러지자 그녀만은 완전하게 믿으면서, 유일하게 가장 아끼게 된 사람이라 과보호에 과보호를 덧씌운 듯한 애정을 퍼붓는 것도 머리끝까지 취향입니다. 참고로 약을 먹지 않고 창밖 침입자에 대해서 알리면 감금 루트. 평생 부족할 것없을 좋은 방에 감금해놓고 방문하는 사람은 자기 하나뿐인 그런 곳으로 여주를 밀어넣습니다. 이쪽도 매우 몹시 취향입니다..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