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년만의 블로그질인데 사실 지금 이걸 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대충대충.
2. 일생 한..아니 대학와서 처음받아보는 엄청난 점수가 될 것같아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A+을 받을 수 있을 것같은 과목이 두개 밖..아니 하나밖..아니 없나..?;;;;;;; 4.0만 넘기자 싶은 태평한 기분이었는데 눈앞에 캄캄해질 것같습ㄴ디ㅏ. B+도 아니고 B0를 받는 사태가 일어나면 울거야.. 죽..지는 않을 거지만 울거야.. 아오..orz (참고로 지난학기까지 평점은 그럭저럭 4.3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못받는다고 해서 받을 리스크가 이번에는 전혀, 엄청, 무지, 매우 크지 않습니다만(따로 장학금을 받게 된데다가 학점도 어차피 17학점밖에 못 듣거든요) 제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한 것들이 여기저기 뻗쳐있는 학기였던지라 우울한 마음이 뭉실뭉실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다음에는 잘해야죠 뭐. 지난 일 슬퍼해서 뭐하겠습니까.
3. 21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86세. 울기도 많이 울었고 생각도 여러가지로 했지만, 그 때 느낀 감정이나 이런 것들을 싸그리 배제한 입장에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례식 절차와 유골함과 입관식과 여기 안계신 분의 체온과 그런 것들이요. 말로 해버리면 모독이 될 것같아 지금은 마음 속에 묵혀놓을 생각입니다만.
4. 딱 한가지만 이야기하면 산자와 죽은자 사이에는 굉장히 깊고 깊은 강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정말 좋아했던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그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고 울면서도 머리 한구석으로는 섬찟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활발했던 아이가 죽고난 후 남아있는 것은 그야말로 물건에 지나지 않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축 늘어진채로 움직여도 반응하지 않고, 숨쉬지 않고, 따뜻해지지 않는. 입관식 날에 자리 위에 누워있는 할아버님의 시신을 보면서 그 때를 생각했다면 너무 불손한 말이 될까요. 쓸어본 뺨은 차갑고 딱딱하고 고무처럼 감촉이 없어서, 할아버지를 만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어에서 시신을 나키가라亡骸라고 부르잖아요.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잃어버린 몸. 거기 있는 건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흔적같은 것이었습니다. 4년을 누워 식물인간으로 지내셨던 할머니. 하지만 의식도 없었던 그 몸에도 생명이 남아있었다고 실감했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는 이렇게도 깊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잃은 몸을 곱게 싸고 오래오래 예를 다해서 보내는 것은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행위라고, 그렇게도 생각했습니다.
5. 불손한 말이 될 것같으니 여기까지만. 아예 유쾌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면, 장례식을 지내는 내내 바쁘고 바빠서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지하철에서 스카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끅끅 울었던 게 가장 오래오래, 그리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이해관계가 뒤섞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얽혀있던 장례식장에서 저는 할아버지의 기척도 추억도 한톨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해 뼈를 담는 순간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던 것이 전부. 집에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그 분의 목소리도 웃음도, 어색했던 손도, 전부 피어오르는데. 정작 그 분을 보내는 순간에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친척들의 얼굴이나, 식사를 나르고 음료를 나르고, 손님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부조금을 받고, 그런 것들이 얼기설기 섞이고 섞여서, 바쁘고 지치고 피곤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어요.
6. 유골함에 유골이 꽉 찰 정도로 뼈의 양이 많다거나, 화장에는 한시간 반이 걸리거나, 모셔놓는 자릿세는 비싸다거나,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별로 슬프지 않았어요. 하지만 역시 지금도 눈물이 목과 코와 눈 뒤에 고여있습니다. 그날 당일만큼은 아니지만, 어쩐지 술에 취한 것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무언가 왈칵 솟아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있는 느낌. 물꼬가 터지면 그대로 주르르 흘러내려버릴 것같은 느낌. 아 이래서 눈물이 필요한 건가, 그런 생각도 하고. 슬프냐고 물으면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마구 울어버릴 것같은 기분도 들어요. 그런 것들이 엉망으로 엉켜있었던 21일, 22일, 23일, 그리고 또 24일, 그리고..
7. 별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조금 길어졌네요. 좋은 장례식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유감입니다. 할머니때에는 어린애의 감수성넘치는 눈물많은 머리로 그분을 추모할 수라도 있었는데, 현실과 엉키고 보니 거기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남길 자리가 도무지 없었습니다. 산 사람은, 너무 강해요.
8. 저는 죽는다면 연도도, 손님맞이도, 아무 것도 없이 바로 태워주었으면 합니다. 입관의식이 제일 싫어요. 관을 사고 좋아하는 옷을 입혀서(모르는 사람 말고, 아는 사람에게, 인형놀이한다고 생각하고 입혀달라고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 잘 덮던 담요나 천으로 말아서 관 뚜껑을 닫고, 끈으로 묶고 화장터에서 태우고 유골함에 넣어서 우리집에 데려와줬으면 좋겠어요. 죽은 사람과 같이 사는 건 너무 기분나쁜 일일까요. 가끔씩 꺼내서 열어보거나 가끔 모래장난하듯이 흘려보내거나 해도 상관없는데. 그런 묘지의 상자속에 칸칸이 들어차 있으면 외로울 것같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서 천천히 없어져가든, 뭐하든 남겨져 있는데 좋아요. 메모리얼 쥬얼리로 만들어서 갖고 다니거나 보석함에 넣어놔달라고 하면 너무 잔인한 부탁이 되나요. 그런 묘지는 싫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