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현관에서 발을 멈추었다. -끝났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머리 속이 차가워졌다. 냉정해질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패닉에 빠져있었던 것같다. 두 차례 반복한 심호흡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폐 속으로 한번 더 숨을 끌어들이고나서, 성큼성큼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방문을 차례차례 제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문. 서재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요리책이나 잡학서적들이 무더기로 쌓인 그의 책장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란히 꽂혀있는 자신의 책장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문을 부서져라 닫고 방을 나왔다. 침실과 침실에 붙은 작은 화장실, 거실에 딸린 큰 욕실, 주방, 하다못해 이 집을 사들일 때만해도 필요없는 곳 아니냐며 그는 투덜거렸고, 그 말 그대로 사들인 직후 재대로 써본 적이 없는 공간던 피팅룸과 드레스룸까지 전부 뒤졌다. 사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융단을 전부 진흙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온 집안을 뒤지고나서야 깨달았다. 흙투성이가 된 그 바닥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현관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끝났을까. 끝난 걸까. 이렇게 끝이었을까.
조금은,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버림받은 아이같은 형상으로 앉아있는 자신은 분명 우스꽝스러우리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야한다고, 이제 뒷처리를 해야한다고, 그렇게도 생각했다. 그 사람에 관해 전부 말소시켰던 데이터를 복구하고, 변형시켜놓은 프로그램을 복구하고. 그를, 되돌려보내고.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는 일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했다. 만일 그가 돌아가려고 했다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자신의 손이 닿을 것도 없다. 데이터 베이스에는 그의 신체정보 일체가 기록되어있다. 단 한번만 생체 시그널을 등록시키면 말소상태인 그의 계정은 삽시간에 복구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걸어놓은 록(Lock) 이었다. 죽음에서 돌아가고 싶다면, 본디 있어야할 곳에 돌아가고 싶다면, 그는 단 한번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남은 것이 없는 자신은, 쉬어도 되는게 아닐까.
문득 밀려온 피로에 눈 앞에 점멸하듯 어두워졌다. 흐려지는 시야 속, 멀리서 환청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 사람이다. 이것도, 꿑인가. 마지막에 보는 게 이런 거라면 분명, 엄청나게 꼴사나울텐데.
"-티에리아!"
어둠을 반으로 가르듯 차갑고 청량한 목소리였다. 몸을 감싸던 어둠이 삽시간에 한번 물러섰다. 고개를 들자, 그 곳에는 놀란 눈으로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느슨한 일상복 위에 한겹 더 겹쳐입었을 뿐인 더플코트차림이었다. 신기한 일이다. 평소와 같은 복장에 평소와 같은 얼굴의 남자를 보자 조금 전까지만해도 타오를 것같았던 감정이 내려앉았다. 기력조차 함께 사라졌는지 입밖으로 내뱉는 목소리는 몹시도 작았다.
"..록온."
"깜짝 놀랐네- 왜 이런데 쪼그리고 앉아있어?"
현관문 열었더니 시커먼게 앉아있어서 순간 귀신인줄 알았단 말이야. 어린아이처럼 혀끝을 차면서도 그는 조심조심 티에리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걱정스러운 기색만이 가득한 눈동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양 맑았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양.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티,티,티에리아?!"
"..긴장이..풀려서."
"긴장이 풀렸다고 울어? 왜?!;"
당황하면서도 그는 팔을 들어 머리를 끌어안아주었다. 사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친애어린 몸짓에 목 안쪽이 꽉 메어왔다. 아이가 어머니를 붙잡듯이,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듯이 옷자락을 쥐고 얼굴을 파묻었다. 얼마만에 터진 건지 모를 울음은 목구멍에서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동안에, 쩔쩔매면서도 록온은 게속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좀 그쳤어?"
"뭐가 말입니까."
"눈물"
"언제 울었다고 그러십니까"
"?! 방금 전까지 니 눈에 맺혀있던 건 뭐라고 주장할 셈인데?!"
"아침이슬이겠죠."
"...그 것 참 어울리십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티에리아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에 눈물로 반쯤 잠긴 목소리를 하고도 평소처럼 냉랭한 기가 풀풀 흐르는 대답을 돌려주게 된 것은 거의 두 시간은 지나고서였다. 좀 진정되자마자 내뱉는 맹랑하기 짝이없는 독설에 한숨이 푹 나오면서도 록온은 적지않이 안심했다. 아직도 끌어안고 있는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록온은 푸념하듯 말했다.
"안 그래도 네가 늦는다 싶어서 산책겸 마중 나갔는데 밤에 나가니까 길을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여기저기 헤메다가 겨우 돌아왔다 싶었더니 넌 이미 집에 와있고."
"밤이 되면 반 장님인 주제에, 나다니지 마십시오."
"무슨 말을 해도..!"
평소에는 거의 입에 담지 않는 차가운 말에 록온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가 뭐라 화를 내려는 찰나, 티에리아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말문이 막힌 록온을 한번 힘주어 끌어안고, 티에리아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 데도 가지 말란 뜻입니다."
"...내가 그렇게 좋냐 너."
"좋습니다."
"..이럴 때만 솔직해지고 말이지."
"불만입니까."
품에 매달린 채 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놓으려 들지 않는 티에리아의 팔에 감싸여, 록온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를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고집쟁이 어린아이의 보모 노릇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의식주 일체의 비용을 그에게 떠맡기고 있는 주제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분명 이렇게 문득문득 보이는 어린애같은 모습때문일 거다. ..그러고보면, 티에리아 이전에도 이런 아이가 있었던가. 흐릿한 기억 한 구석에서 번져버린 수채화처럼 떠오르다 마는 영상이 있어 록온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생각에 다시 집중하려는 순간 조금 풀이 죽은 티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출하고 싶으면 저를 부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떠오를 듯 했던 영상은 다시 사라졌다. 록온은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길은 안 잃어."
"잃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낮에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제가 없을 때는 나가지 말아주십시오."
"무슨 독단이야?! 넌 낮에는 거의 없잖아!"
"억울하면 돈 벌어오시든가요."
"우와- 나 내일부터 아르바이,"
"안됩니다."
"어쩌라는 거야?!"
"집에 있어주세요."
그야말로 독단과 편견만이 가득한 팔단에 어이가 없어진 록온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양 고개를 내리깔고 있는 티에리아를 억울함과 안쓰러움이 반반씩 섞인 심정으로 쳐다보다가, 록온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싫다고 하면 어쩔 건데?"
"비어있는 피팅 룸에다가 잠금장치 걸어놓고 그 안에 가두겠습니다."
"그리고 찍는 건 미저리냐? 미저리야?!"
"박싱 헬레나로 하죠, 기왕이면."
"..참아주세요, 스플래터는 보지도 못하면서!"
"관람은 못해도 실천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네가 사람을 향해 잘도 칼을 들겠다! ..가능한가?"
"시험해보실래요?"
"사양하겠습니다, 진짜로."
"-그러니까."
진심으로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돌리는 록온을 보고 티에리아는 옅게 웃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이 터질 것같아, 울듯이 웃은 얼굴은 꽤 꼴사나운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채 회복되지 않은 록온의 시력에 그 표정은 보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을까. 어쩐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의 숨이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을만큼 가까워졌다. 티에리아? 당황한 듯 나직한 목소리가 귀 옆을 스치듯 울렸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과거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음색. 그 소리를 떨쳐내려는 듯 눈을 감았다. 애원하듯이. -기원하듯이.
"그러니까, 제 눈이 닿지 않는 곳에는 가지 말아주세요."
기원이 스민 말을 내뱉고나자, 숨조차 쉴 수 없어졌다. ..제발.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인 한마디는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이 가냘펐다. 대답을 듣는 것조차 두려워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록온는 잠시 망설이듯 입을 다물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티에리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곳에 있었던 맨 손에 매끄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은 묘하게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 온기에 등 떠밀리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며나왔다.
-아무데도 안 가.
다정하게 속삭인 목소리는 선연하게 티에리아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팔을 파고들듯 쥐고 있었던 손가락이 천천히 힘을 잃었다. 품 속에 고개를 묻은 티에리아의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울어? 하고 물었다. 그럴리가요. 고집스럽게 돌아온 대답에는 잔뜩 물기가 묻어있었다. 록온은 아주 살짝 미소짓고는, 품안의 아이를 끌어안고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눈물로 젖은 코트 앞깃에서, 서글프고도 부드러운 내음이 났다.
fin.
다른 SS랑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연계되면 시기상 앞쪽은 이쪽.
록온 스트라토스는 어느쪽이든 일반인으로 살기는 진짜 글렀다는 느낌이라 함께 망가지거나 놓아버리지 않으면 일반루트는 없겠구나 싶습니다. 고로 제 안의 록티가 연애질 하며 일반인으로 사는 루트는 이쪽입니다. 굉장히 동인돋는 설정이지만..
여분의 설정으로 현재 살고 있는 건 아일랜드 언저리. 외진 곳이라 사람은 없고 집은 무려 2층집에 정원도 딸렸습니다. 구매한 건 티에리아. 생활비는 과거 예금 빼돌린 것+티에리아가 주식투자로 벌고 있습니다. 록온의 기억상실은 일상생활 이외에는 닐 디란디도 록온 스트라토스도 거의 전부 잊어버린 거나 마찬가지. 재활실에서 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정도.. ..진짜로? 눈은 저녁이 되면 극단적으로 시야가 떨어지긴 하지만 평소에는 일반인 수준인 편.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