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시아지역의 군사기지 섬멸미션 중 하나였다. 전략적 거점으로 선정된지 반세기가 지난 노후한 건물들에는 변변한 군사력이 없었다. 23세기가 아니라 25세기에서 뛰쳐나온 듯한 기술력의 기체 위에 전직 스나이퍼의 정확성이 더해지자 상황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치닫았다. 상대방은 외각에서 날아오는 탄환의 발사 위치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탓은 아니었다. 일전의 성층권 사태로 그들의 전술란에서 듀나메스의 가시거리는 대폭 상승했음이 틀림없었다. 광학미채로 가려진 기체탐색범위가 초기정보보다 적어도 다섯배는 늘어난 시점에서 적의 지휘관은 대치보다는 회피를 택했다. 무능한 선택이나 또한 유능한 선택이다. 때로는 초단위로 시간을 쪼갤만큼 명확한 전술을 구사하는 미스 스메라기는 듀나메스의 백업으로 큐리오스를 함께보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에게는 피할 장소가 없었다. 장거리냐 단거리냐만의 차이만 있을뿐. 록온은 방아쇠를 당기다말고 저도 모르게 척살과 총살을 사이에 두고 고르라며 웃고 있는 옛 우화 속의 악마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얄궂은 농담이다.
"생각보다는 빨리 끝나겠는데. 안 그래, 알렐루야?"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건네며 스크린 하단에 표시되어있는 동료의 모습을 보았다. 순하고 착한-이 상황에서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료는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록온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적진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미스 스메라기가 적의 행동을 78%의 확률로 회피하리라 예상했으면서도 굳이 짝을 지워보낸 것은 첫째 나머지 22%의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둘째로 아직도 제법 서먹한-그리고 지난번 사건으로 외부에 정보가 새어나간-알렐루야의 심기를 다독여주라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필요이상으로 접근을 허용했다 싶은 록온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전술예보사의 전술에 반발할 수 있을만큼의 지위도 아닌지라 록온의 녹색 기체는 얌전히 큐리오스에게 등 뒤를 맡긴 채 멀리 보이는 군기지를 향한 발포사격을 규칙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두번째 목적은 실패구만,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갑작스레 알렐루야의 목소리가 기체를 메웠다.
<..록온은 손이 참 예쁘네요.>
"..에?"
<록온?>
록온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손끝이 2mm정도 빗나가긴 했지만 다행히 탄환 궤도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스크린을 내려다보자 순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알렐루야가 보였다. 록온은 웃음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저 방아쇠를 당겼다. 세 번만에 군사기지 가운데의 송전탑 셋이 완벽히 내려앉는 것을 보고나서야 록온은 장비에서 손을 때고 푹 엎드렸다.
"그, 무슨 시답지 않은 소리이십니까, 알렐루야 군.."
<하면 안되는 말인가요? 죄송해요, 저는..>
"아니아니아니, 그런 건 아닌데."
<다행이다.>
뭐가 다행인건데. 뭐가. 아무리 대기 시간이 길었다지만 순간 전쟁터에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만들 태평한 목소리에 록온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되었다. 순진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알렐루야를 보며 록온은 문득 그레이트 피레니즈가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같은 환상을 봤다. 아니다, 저 눈매에 저 외모면 도베르만인가. 저도 모르게 알렐루야의 페이스에 끌려 딴 생각을 시작했을 때, 이 도베르만은 또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하얗고 부드러워보이는 게 예쁘다고 생각해서요.>
"...감사합니다.."
스물 네살 남자한테 말하기는 머쓱하지 않냐, 그거. 떨떠름하게 말하고 록온은 목을 푹 숙였다. 하로가 귀를 파닥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저건 비웃고 있는 거다. 오랜 기간 함께해온 파트너의 모습에 또 한번 전의를 상실한 록온은 머쓱한 기분으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장갑으로 빈틈없이 싸여있는 손은 평소에도 좀처럼 보이는 법이 없었는데.
"근데 알렐루야, 언제 그렇게 내 손을 자세히 봤냐?"
<일전에 같이 샤워했을 때요. 록온은 체격이 참 좋구나 싶어서 보고 있었거든요.>
"너 그거 아슬아슬하게 성희롱 발언이다.."
아니 그 전에 니 체격이랑 비교하면 난 상당히 ...하거든. 아니 그렇게 약하진 않지만, 티에리아나 세츠나보다야 낫겠지만-그 전에 티에리아랑은 같이 씻은 적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중국 몇천년 역사 동양의 신비를 집합시켜서 러시아 특수부대를 더해놓은 것같은 체격인 너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됐다, 말해서 뭐하리. 록온은 머리 속으로 줄줄히 흝어지나간 반박들을 꾸깃꾸깃 밀어넣으면서 떨떠름하게 웃었다. 그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렐루야가 화면 너머에서 살짝 웃었다.
<그 중에서도 손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저거 자각없지, 지금.
록온은 저도 모르게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낯뜨거운 소리에 상대가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렐루야는 해맑은 얼굴로 웃었다. 수줍은 듯한 미소였다. 큰 덩치에 안 어울리게 부끄러운 듯한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색하고도 어려보았다. 콕핏에서 굴러떨어질 것같은 낯뜨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그 표정에 어째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랬지, 알렐루야. 너도 아직 어린애였지.
"..나도 네 눈은 참 예쁘더라."
<?! 노,놀리지 마세요!>
웃으며 툭 건넨 말에 지금껏 낯뜨거운 소리를 한바닥은 쏟아냈던 동료는 화르르르 얼굴이 불타올랐다. 너 공격은 강해도 수비는 영 황이구나. 록온은 저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팔로 얼굴을 가린 알렐루야가 억울한 듯 항의했다.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그 얼굴에 어쩐지 웃음이 나와 록온은 몸을 쭈욱 펴고 뒤에 기댔다. 일단 섬멸작전도 끝났으니 막간의 수다떨 시간정도는, 뭐 미스 스메라기의 예상 범위기도 하겠지. 미션의 두번째 목표도 그리 나쁘지는 않게 끝날 것같다. 당황해서 허둥거리는 상대를 보며, 록온은 가늘게 웃었다.
[형은 게으른 손가락이라는 소리 안 들어?]
[뭔 소리야.]
[길고 가늘고, 피아노나 치면 딱 맞겠네.]
[쌍둥이라 너도 알짤 없이 나랑 똑같거든?]
[내가 형이랑 같아보여?]
[라일오빠랑 닐 오빠는 똑같이 생겼잖아. 같은 거 아냐?]
[야! 에이미! 남자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말랬지!]
[몰라! 왜 나만 빼놓고 그래?]
[라일, 그러지마. 이리와, 에이미.]
[에헤헤, 큰 오빠가 훨씬 더 좋아!]
[에-이-미-!]
[알았어, 작은 오빠도 좋아!]
[누가 그런 걸로 삐질 줄 알아?!]
[그만해, 라일.]
주먹을 흔들어보이는 어린 동생의 키는 꼭 자신만큼 같았다. 그래도 그 어깨가 작아보였다. 에이미의 어깨에 둘렀던 손을 풀어 동생의 손에 마주 겹쳤다. 라일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고 어려보이는 동생의 손은 자신과 꼭 닮아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그 끝을 얽고서 살짝 웃어주었다.
[너랑 나랑 똑같이 생겼잖아. 그치?]
[...게으른 피아니스트는 형이나 해라.]
부루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라일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어린 동생은 목께까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 얼굴에 에이미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라일은 에이미에게 주먹을 흔들며 위협했다. 몸을 쏙 뺀 에이미가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라일이 그 뒤를 따라가려 몸을 돌렸다. 닐은 라일과 손잡은 채 그 뒤를 함께 따라갔다. 웃음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지 않을 것같던 그 순간. 그 때의 모든 것.
맞닿아 놓을 일이 없을 것같던 동생의 그 손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fin.
최근 자신의 손가락 패티쉬적인 경향을 깨달았습니다(...)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