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없어도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있다가 이야기의 골자가 되겠습니다.

2. 조별 과제를 준비했어요. 전공 과목의 수업이고 아마도 비중이 클 발표였습니다. 저는 A형이고 일단 정한 일은 반드시 목표를 넘겨야 안심이 되는 인종이며 이 발표에는 각종 자료 조사와 원어민 교수님의 인터뷰, ppt, 동영상편집등의 파트가 있었습니다. 조원은 여섯명이었고 한 명은 외국인 발표였기 때문에 실상 준비는 남자 둘과 여자 셋이 거의 다 하게 되었어요. 주축이 되는 건 저와 다른 언니분이었고요.

3. 목차의 개요를 짜는 것돠 발표 내용의 방식은 거진 제가 정했습니다. 들으면 그때그대 생각나는대로 주르르 얼개를 짜왔었기 때문에 늘 그런 식이었고 클럽을 만들고 문자를 돌려 자료를 모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 전원이 참가하는 거였죠. ppt를 만드는 친구는 자기가 파트 담당이 아닌 줄 알고 빠졌고 한 친구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기사들 위주로 내용을 올렸고 한 언니와 다른 친구가 자료 조사는 거진 다해줬어요. 감감 무소식이던 친구는 자료를 올렸습니다. 자료라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정리같은 거였고 발표에 인용할 내용은 없었어요. 혹시 요점정리였다면, 그리고 그게 쓸모가 있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쓸모가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4. 그 친구A는 같은 동아리의 친구였고 작년에도 같이 발표를 했으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에는 잘 못하는 굉장히 섬세한 성격이었습니다. 주제 정할 때도 근 한시간을 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보냈죠. 고민하다가 이대로는 쓸모가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면 내년에도 이럴삘인데, 조별발표에서 재대로 못하면 주변을 말해주는 대신 뒤에서 욕할게 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쨌든 말을 해줬고 그 친구는 알았으니 자료를 또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화요일, 조원이 다같이 모여서 발표 내용을 짜기로 했고 그 친구는 개인적인 일이 있다고 빠진다고 했어요. 병원에 가는 일이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러라고 하고 그날 8시까지 모여 자료를 정리하고 ppt의 바탕을 짰습니다.

5. 다음 날 아침 원어민 교수님 인터뷰를 하고, 그날 저녁에 컴퓨터에 달라붙어 발표내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날 발표라 다들 연락해서 함께 작업했는데 A와 ppt 담당인 B가 감감무소식이었어요. 친구가 군대가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발표 준비로 동아리 활동도 빠진 상태였고 친구 C는 저도 아는 애였습니다. 열이 확 올랐어요. 동영상 편집하고 자막을 만들어 붙이는데에 이미 대여섯시간을 소비한 후였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A는 추가 자료는 당연히 올리지 않았고 올린대도 쓸 수는 없었죠. 어제 같이 하는 언니가 만들어준 개요와 자료를 가져다가 발표 형식에 맡게 정리하고 목차를 짜고 결론을 넣고 참고문헌을 넣고 동영상도 마저 편집하고.. 세시 반쯤 일이 끝났습니다. 내용정리를 해준 친구도 그 언니도 저도 녹초가 되어있었죠. 다음날 다른 과목의 숙제도 있어서 그것까지 끝내고 한시간 반정도 자고 학교를 갔습니다.

6. 그리고 수업중에 그 친구가 화요일날 빠진 게 미용실에 따라가기 위해서라는 걸 들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죠. 동아리방에서 입다물고 있다가 좀 다퉜습니다. 그 애는 자기는 자료를 올렸고 내 파트는 다했는데 니가 마음에 안드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ppt 제작, 동영상 편집, 자료수집, 학교에서 보낸 시간, 어제 못잔것, 그런 게 한꺼번에 다 떠오르면서 자료 한번 올렸다고 다했다고 하는 그 애 말이 어찌나 기가차던지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듯 제 개인적인 일과 모임중에서 개인사를 우선시하는 것에도 기가찼고요.

7. 어쨌든 발표는 무사히, 잘 끝마쳤습니다. 교수님 칭찬도 들었고, ppt 작성을 못한 친구는 미안하다며 나눠진 프린트이 인새ㅗ비용을 자기가 냈어요. 교수님한테는 재도 ppt를 만들어줬습니다, 뭐 그런식으로 말을 하고서 끝나고, 그 친구 A와 연을 끊을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근데 다음 수업시간이 용서에 관한 내용이더라구요. 화를 내면 그 날을 넘기지 마라. 성을 내면 너에게 돌아온다.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가끔 쓰잘데기없는 걸로 말다툼하고 나면 방에 콕 처박혀있어요. 좀 지나면 ㅏㄹ못한게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그리고 방에 종종 찾아들어가서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끌어안아요. 혹은 엄마가 제 방으로 오시구요. 그게 생각났습니다. 고민하다가 길게 문자를 보내고, 그 친구와 화해했어요. 그 친구는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먼저 사과했습니다. 사실 저도 짜증은 많이 냈으니까요.

8. 뭐 그렇게 잘 끝났습니다. 확실히 화는 내고 있는 것보다 내지 않는 편이 인생에 편하고 도움이 되는 것같아요.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웃어버리면, 그러면 더 좋은 쪽으로 굴러가는 것도 맞습니다. 그냥 앞으로는 너무 상대에게 개입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와 상대방이 똑같은 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이 잘못하고 있는 걸 잡아주거나 이끌어주려고 애쓰는 건 엄청나게 무익한 일일 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피곤할 것같더라구요. 여러가지로 많은 걸 배웠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호감도도 좀 낮아졌고, 제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고.

9. 그리고 과제는 여전히 꼬리를 물고 이어져 여전히 바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여러가지 의미로.

10. 해외문화탐방은 무사히 끝나고, 6월이 되면 일본의 교환학생을 신청할 생각입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해둘 수 있는 건 많이 해두고 싶어요. 이번 방학에는 꼭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더 이상 안주하거나 머뭇거리고 싶지 않습니다. 말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후우.

11. 최근 읽은 책은 여자의 일생, 마담 보바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감상문은 나중에 쓸테지만, 모파상은 진짜.. 읽으면 읽을 수록 때려주고 싶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마 롤리타와 비슷한 충격을 그 사회에 안겨줬을 마담 보바리. 시대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물론 연민도.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정말 맛있는 책이었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아무리 생각해도 레스타도 루이스도 찌질해요(..) 그래도 클라우디아는 예쁘고. 이 아가씨 참 성격 마음에 든다니까요. 16세기에 살로메가 있었다면 그 이름은 클라우디아였을 거에요.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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