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스카의 정찬식에 쓸 포도주를 가져 온 일꾼에게 나는 은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말을 더듬던 일꾼은 행운에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는 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여느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작자를 따르는 이들은 참으로 쉽게도 돈을 내준다고 그리 소문을 퍼트릴 것이다. 나의 주인, 나의 스승인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에는 또 얼마간의 가난한 자들이 그의 이타심에 기대어 섞여들테지. 그들은 굴종섞인 시선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의 주인에게 애걸한다. 자신을 돌아보아 달라고, 배불리 먹여달라고. 나의 스승은 또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털어 그들에게 준다. 그의 신성함은 가난한 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쓰여진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빛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약자들은 그렇게 탐욕스럽다.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털어내는 나의 주인은 또 부유한 자들을 적으로 돌린다.
나는 그의 방패였다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적을 만들어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를 위해 나의 혈연들을 버렸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신분도 버렸다. 그러나 저 어부였다던 베드로가 나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주인이 그것을 원했기에 나는 그를 형제라 불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집단에서 평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대체 이 무리들은 얼마나 순진한 건지. 성문을 통과하는 세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무턱대고 나아가려는 것을 정리하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제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돈을 더러운 것인양 보았다. 그 가운데 나만이 그 것을 영리하게 쓸 줄 알았다. 몰려드는 가난한 자의 탐욕에서 나의 주인이 잠들때 덮을 수 있는 천 하나를 빼돌려 놓을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나를 속물적이라며 손가락질 했고, 나의 주인은 다만 고개를 돌렸다.
잊자, 잊어버리자.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늘의 빠스카 만찬을 차리는 것은 내 일이다. 돈놀음도 물가도 모르는 동료들은 누구하나 재대로 이 식탁을 준비하지 못했다. 홍해를 건너온 예언자 모세의 탈출을, 우리들의 뼈 속 깊이 남아있는 유대인의 피가 자유를 찾았던 날을 성축하는 날을 동료들은 도무지 재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보나마나 여자들의 손에 맡겨진 식탁에서 빵을 잘라 나눠주는 일 외에 그들이 이 빠스카의 만찬을 준비하는 날은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나만이 그 것들을 할 줄 알았다. 유대식으로 구운 빵과 포도주, 얼마간의 신선한 과일. 화려한 것은 배덕으로 아는 나의 주인을 위해 식탁위의 만찬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박한 식탁 위에서 그의 잔만큼은 아름다운 것을 골랐다. 그에게는 빛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
식탁보로 덮은 긴 식탁 위에 열 세개의 접시가 놓이고, 나는 그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한다. 나의 주인이 손 댈 빵을 가운데 자리 위에 놓고, 포도주 병을 따서 탁자 위에 놓는다. 소박한 식탁은 화려하지 않으나 다만 정갈하다. 허나 그 분의 잔만큼은 선한 빛을 띄는 은색의 잔이다. 소박하고 초라한 풍경 위에 위엄을 더해주는 그 고요한 색깔은 나의 주를 닮았다. 식사가 시작되면 그 분은 나의 손이 닿았던 접시로, 잔으로 제자들 모두를 축복할 것이다. 성스러운 날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으로, 다만 맑은 시선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돌아볼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그 분을 숭배하듯 바라보고, 나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그리고 그 분이 만지는 잔은 나의 손으로 준비한 제물이다. 오로지 나만이 그 분의 손이 닿은 잔을 쓰다듬었으리라. 그리고 그 것으로 마지막이다.
오늘이 지나면 로마인들은 나의 주인을 찾으러 올 것이다. 주인이 나의 죄를 아시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 분의 입술에 입맞춤을 남길 것이다.
축복과 사죄와, 미움과 애정과, 더 없는 동경을 담아서.
잊자, 잊어버리자. 지금은 빠스카의 성찬식.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오늘의 만찬석에서 나는 다만 먹고 마시리라. 그 분의 손으로 건넨 잔을 받들고, 그 분의 손으로 자른 빵을 받아 세례를 받듯 나의 입술을 적시고 입안을 채울 것이다.
하지만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포도주는 그 분의 피이고, 내가 먹을 빵은 그 분의 살이다.
배덕과 죄악으로 얼룩진 그 음식이, 나의 최후의 만찬이다.
fin.
모 판의 '우울하고 슬픈 사랑' 주제의 리퀘에서.
최근 학교에서 가톨릭 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신자라 죄송해요 아부지..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