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늘밖으로 깔린 노을 위에 땅거미가 앉을 때즈음 우리들은 수업을 끝내고 근처의 구 교사로 와서 수다떠는 것을 좋아했다. 구교사는 21세기에는 흔한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외관. 나무로 된 교실. 시간속에 멈춘 것처럼 조용하게 자리잡은 책상들 위에 앉아 흘러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모두가 좋아했다.

구교사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school의 학생들로 한정되어있었다. 하루 두 시간 정도의 사치. 우리들은 도장을 완료한 이 건물에 사람이 못 들어오게 하는 건 굉장한 편파라며 빈정거렸다. 우리들이 말하는 대로 구 교사는 밖에서 일어나는 타격에 다치지 않도록 완벽하게 보호되는 재질로 전체가 도장되어있었다. 도장이 되어있지 않은 곳은 칠판과 반 입구마다 걸려있는 작은 칠판뿐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서로의 이름을 쓰거나, 그 날 배운 것들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는 과거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인구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화려한 전쟁이나 사고가 인류의 수면을 앗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인구의 수가 줄어갔다. 교과서 파일 속에 들어있는 인구 수 그래프는 천천히 죽어가는 거대한 생물을 연상하게 했다. 인류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가 이 생물의 전성기였다면 내가 태어난 장소는 노화해 쓰러져 죽은 그의 뼈 위였다. 현재 세계의 인구는 1억에서 2억정도로, 외부에서 보호되는 city 내부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사는 인류는 10만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것만해도 대도시 규모였지만, 그다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수가 적은 것은 귀중한 대접을 받는다. 여전히 엄청난 생산력과 영화를 지닌 인류 내에서도 그랬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주어졌다. 머리가 좋거나, 체력이 좋거나 하는 각종 성질을 발휘하면 부귀영화는 제곱으로 늘었지만 아무도 재물에 매달리지는 않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것 자체에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았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느긋해져갔다. 태어났을 때부터 다들 어딘가 초탈한 것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는 게 반쯤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범죄 수도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혹여나 태어나는 살인이나 강간같은 범죄들은 전통적인 신앙에 따라 '완전히 격리' 되었다. 우리들은 저물어가는 시대의-아마 이제 곧 멈춰버릴 것같은 세계의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학교에 새로들어온 신입생중에 조금 이상한 애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제이라고 불렀다. 그는 다소-다소 태어나면서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자연스러운 행동거지와 철저하게 눈치없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도태되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게되는 것에 대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상호교환을 나눌만큼 살가운 사이의 대상이 없어도 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안드로이드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펫을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독히도 모든 것에 서툴었고, 혼자가 되는 것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했다. 맨 처음에 그는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불릴 관계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낯선 호칭에 나는 당황했고, 그 일화는 한동안 비웃음과 당혹, 어이없음등과 섞여 구름처럼 스쿨 전체를 떠돌아 다니다 이내 식어서 내려앉았다. 나는 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전부 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전부 거절할 수 있는 성격도 되지 못했다. 나는 적당히 그를 상대해주었고, 적당히 그와 거리를 두었다.

내가 그다지 자신에게 감흥이 없다는 걸 그가 깨닫기까지는 6개월쯤 걸렸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겨우 나를 그림같이 쫓아다녔던 그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나는 솔직하게 안도했다. 얼마 후에 그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학년의 한 여자아이. 이번 소문은 안개처럼 퍼졌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공표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이 맞춰진 안드로이드, 풍족한 생활, 무엇하나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이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하물며 서로 맞추고 조율해나가야한다는 사랑을 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 나이의 우리들에게는. 우리는 어이없어하며 그 소문을 받아들였고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나빴다. 여자아이는 제이를 죽일 듯 싫어했고 제이는 쩔쩔매며 어색한 거리를 유지하고 여자아이를 따라다녔다.


보충 학습이 있던 날에 나는 구 교사로 향했다. 구 교사의 4층, 우리들이 노는 교실앞 작은 칠판에는 화살표가 그려져있고 내 이름과 나의 친구들 이름이 적혀있었다. 웃으며 칠판을 보다가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한귀퉁이에 제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제이의 이름에서 뻗어나온 화살표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불쾌함으로 가득차 나는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복도 한 귀퉁이에서 제이의 밝은 갈색 고수머리가 보였던 것같기도 하다. 알았던 들, 변하는 것도 편해질 것도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날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내 mp3가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소중히 아끼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울상이 되어 교사 전체를 지니고 다녔다. 애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 것에는 여지껏 탐지장치도 달려있지 않았다. 평소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친구 A가 다른 아이들을 선동했고, 그날 남아놀던 학생들은 나의 mp3를 찾아주기 위해 교실을 돌아다녔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싶을 쯔음에 나는 내 치마 뒷자락에서 이어폰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이어폰과 mp3를 분리해서 다른 쪽 뒷주머니에 넣었다는 것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주머니여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졌다. 찾아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나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달려내려갔다. 계단을 달려내려왔을 때 나는 하얀 선이 그려진 하늘색 운동화가 바쁘게 화장실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mp3를 이어폰과 연결한 다음 내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찾았어! 아래층에 있었어! 그 날의 소동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에 나는 어제 구 교사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장소는 3층 화장실. 도장되어있는 교사 내부에는 지문도 남지 않았고 감시장치도 없었다. 피범벅으로 쓰러진 여자아이의 시체를 꺼내가고 나서 당국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그 곳을 깨끗하게 치웠다. 출입카드의 태그를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시체 분석만으로도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각에 구교사에는 열명 이상의 학생들이 있었다는 게 알려져 당국은 골치를 앓게 되었다. 중요 취조 대상은 역시나 제이였다. 제이는 자신은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질치며, 대신 범인을 봤다고 했다. 그가 말한 범인은 나였다.

나는 울컥해서 무슨 소리냐고 외쳤다. 친구들도 나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해주었다. 제이는 내가 mp3를 들고 내려온 짧은 시간을 지적했다. 5분이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 3층에 단독으로 내려가있었다. 나는 내 mp3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건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가 본 흰 줄이 들어간 하늘색 운동화에 대해 말했다. 제이는 그것과 같은 운동화를 갖고 있엇지만 그게 내가 범인이라는 뜻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 대해 이 학교에 오기 전에는 친구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ㅡ렇지 않다고 말하며 내 카드를 꺼냈지만 거기 등록된 친구들의 주소ㅗ아 사진은 대부분 삭제 되어있었다. 나는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결과적으로 말했을 때 범인은 재대로 밝혀졌다. 나는 B와 어릴 적부터 같은 지역에서 자랐고 그는 나의 보증인이 되어주었으며, 흉기로 사용한 물건을 보건대 내가 쓰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나왔다. 그녀와 나는 접점도 없었던 것이다. 범인은, 결국 제이였다. 나와 자신을 같은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 제이는 순순히 그녀를 안으려했지만 거부해 죽였다고 실토했다. 그날 화장실로 제이를 불러낸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덮은 이 귀찮은 거적데기를 쳐내고 싶어했던 모양이었다.

강간미수에 살인이라는 중죄가 되었기에 제이는 격리 판정을 받았다. 나는 충분히 쉬고 난다음 그를 만나러갔다. 격리라는 이례적인 판정을 받은 그는 감옥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나를 기억했어? 그게 그의 첫마디였다. 나와 함께 간 친구 B는 할말을 잃었다. 그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고 했다. 재대로 되지 못한채 끝났지만, 어쨌든 나와 B는, 적어도 나만은 자신을 기억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만족한다고 했다. 내 삶은 그게 있으면 충분해. 그렇게 말하고 제이는 어린아이같은 얼굴로 웃었다. 모두가 생각한 대로 그는 장애가 있었다. 그 것은 몸이 아니라 그의 정신에 있었다. 이 시대에 사람과의 관계를 요구하는 인간이 있을리가 없는데.

이 시대에 사형은 '격리'라는 방법으로 처리된다. 더 정확히 말해 그 것은 죽이는게 아니었다. 도장액이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시대의 유물만은 아니었다. 다른 방식으로 가공된 그 액체로 가득 채운 캡슐 안에 인간을 집어넣으면 그는 가사상태로 잠들게 된다. 그 상태에서 캡슐을 하늘로 띄워올린다. 대기권이 닿을 듯 말듯한 높은 지역에 잡아매어두고, 인류는 그들을 잊는다. 죽은 사람들의 혼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 사회는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로 했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그저 물건처럼 평생 잠들게 하는 형벌. 그 것이 격리였다. 제이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다른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범죄자를 하늘로 보내는 전 날, 나와 B는 캡슐룸으로 숨어들어갔다. 강화플라스틱으로 된 창 너머에 잠들어있는 제이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B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세계에 일그러져있는 단면같은 것이었고, 나와 B는 이 세계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잠든 캡슐 속을 가득 채운 푸른액체를 꺼냈다.

캡슐을 하늘로 띄워올리며 나는 몇번이고 B의 이름을 불렀다. 지상에서 솟구쳐오르는 대기를 지나 시티 바깥으로 나가자 히뿌연 하늘 너머로 태양이 보였다. B와 나는 제이가 잠든 캡슐과 함께 하늘 높이 올라갔다. 구름의 벽을 뚫고 올라간 높은 하늘 위에, 우리는 제이의 관을 놓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잠든 그의 몸은 서서히 시드는 꽃처럼 마르고 죽어갈 것이다. 결코 눈을 뜰 수 없는 남자는 하늘 저 편에서 죽어갈 것이다. 구름 벽 너머에서 떠도는 메마른 육신을 남기고, 그의 혼은.


얼마 후에 나와 B는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시 7개월 정도 후에 우리는 축하영상을 방영하는 tv 앞에 앉아있었다. 젊은 한쌍의 부부가 이례적으로 아이를 낳았다는 뉴스였다. 드문 일이라며 밝게 웃은 리포터가 산모 병실에 누운 여성과 그 곁에 있는 아이를 소개했다. 밝은 갈색 고수머리가에 작은 손.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평화로운 얼굴을 했다. 나는 B의 손을 잡았다. 제이는 지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줄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마 그는 두 번다시 틀리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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