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이 흐르는 옆길로 달리며 소녀는 선수들을 쫓아갔다. 말을 탄 채 활을 날리는 사람들. 과녁은 소녀가 걸어가는 앞길에 있다. 화살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숨이 차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든다. 선수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응원하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다. 황천,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강. 그 물의 경계는 이렇게나 작다. 소녀는 그 자리에 서서 화살을 쏘는 선수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소녀의 이름은 야마오카 사쿠라. 검은 단발머리에 안경. 작은 얼굴에 '모범생'이라고 써놓고 다니는 것같은 무뚝뚝한 표정.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공부만은 잘해서 선생님의 신임을 얻는 그런 애였다. 유명한 사립고교를 다니다가 공립으로 전학왔다는 것 때문에 그녀와 주변 사람들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사쿠라가 교내 제일의 괴짜인 카케우치 코우미와 사귀는 것을 재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 사쿠라가 체육시간 혼자 교실에 남아 있었을 때 지각한 카케우치가 윗옷을 다 벗은 채로 교실에 뛰어들어왔다가 사쿠라와 눈이 마주친 것을 계기로 둘은 사귀게 되었다. 사귀게 된 날 코우미는 신나서 사쿠라를 끌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고, 사쿠라는 묵묵히 그 뒤를 따라갔다. 처음으로 같이 잔 이후에 사쿠라는 카케우치를 카케오치라고 불렀다. 이후 그 별명이 둘 사이의 애칭이 되었다.
방과후에 둘이서 집에 가고 있는데, 아파트 주차장 그 속에 불이 켜져 있었다. 사쿠라는 카케오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기 위험하다는 소문이 있었지, 아마. 카케오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사쿠라는 그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근처에 사쿠라보다 두어살 많아보이는 대학생 청년이 서 있었다. 사쿠라는 짜증스러워보이는 표정의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놀라며 대답했다. 아, 안녕하세요. 남자는 손에 판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건 뭔가요? 사쿠라가 묻자 남자는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여기 왠지 모기가 많은 것같아서요. 주의 표지판을 붙여놓으려고요. 어젯밤에 여기서 등허리를 물리는 바람에 지금도 시큰거린다니까요. 사쿠라가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의 목소리는 상기되어있었다. 사쿠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카케오치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주의판을 세워 놓는다니 좋네요. 입속으로 말을 굴리듯 말하자 남자는 왠지 기뻐보였다. 아, 그래요? 그는 표지판을 들어 벽 위에 정확히 세워놓았다. 주의! 모기 많음. 물리기 쉬우니 피해다닐 것. 약간 장난스러운 표지판을 보며 그는 흐뭇해하다가 사쿠라를 돌아보았다. 어때요, 이거? ..좋네요. 시마다씨. 사쿠라의 말에 남자는 놀란듯 돌아보았다. 내 이름 알아요? ..네. 우와, 나는 당신처음보는데요. 저도 처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어리둥절해하며 그가 묻자 사쿠라는 살짝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을 들어 남자의 등뒤를 가르켰다. 거기, 써 있어요. 네? 남자는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자기가 쓴 주의표구밖에 없었다. 무슨.. 남자가 돌아보자, 사쿠라는 천천히 문장을 읽었다. 피해자, 시마다 유우지. 가해자, 시마다 소이치. 소이치는 내 형인데요. 남자는 멍하니 대꾸했다. 사쿠라는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거기 그렇게 써 있어요. 유우지씨. 미안해요. 허리가 아픈건 모기 때문이 아니에요. 거기 지금도 커다란 나이프가 꽂혀있거든요. 당신은.. 여기서 죽었어요. 유우지는 멍한 얼굴로 표지판을 다시 보았다. 거기에는 검은 펜으로 모기 주의라고 쓰여있었다. 역시 틀리잖아, 그렇게 말하려는데 검은 글씨가 갑자기 부웅하고 날아갔다. 군데군데 묻어있던 빨간색이 문장이 되었다. 시마다 소이치가 시마다 유우지를 죽였다. 이 자리에서. 거뭇거뭇한 글씨는 피였다. 욱신거리던 허리를 더듬어보았다. 잘못놓인 물건처럼, 크게 솟아오른 손잡이가 잡혔다.
이상하게 아프진 않네요. 유우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쿠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발하고 싶어서 여기 온거였군요. 어쩐지 허리가 너무 쑤시더라고요. 유우지는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금방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 내 시체같은 건 없는데, 왜 여기로 온 걸까요. 사쿠라가 작게 말했다. 당신이 찔린 곳이 여기거든요. 여기 핏자국이 남아있어요. 선명하게. 그래요. 유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하나요? 원한다면 돌아와도 괜찮아요.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서. 막 만난 귀여운 학생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좀 아쉽네요. 내 가족들도.. 내 친구들도. .....괜찮으면, 이거 가져가시겠어요? 사쿠라는 유우지의 손에 지폐 한장과 동전 한개를 쥐어주었다. 이 것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지폐는 저승에 가서 쓰고, 동전은.. 증표로 가져가세요. 다시 태어났을 때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여기서 못다 누린 복을 가져간다는 의미로. 자기 손 위에 있는 동전과 지폐를 보던 유우지는 살짝 웃었다. 어린 아가씨에게 용돈을 받았네요. ..고마워요. 그는 허리를 더듬어 허리춤에 꽂혀있던 칼을 뽑았다. 어떻게 할지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다가가 사쿠라는 그 칼을 받아주었다. 남자는 한번 웃고 사라졌다.
끝났어? 어느 틈에 옆에 카케오치가 와 있었다. 응. 연락했어? 응. 카케오치는 형의 전화번호가 떠 있는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고 닫았다. 경찰에 근무하는 그의 형은 카케오치와 사쿠라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당황하지 않고 움직일 것이다. 사쿠라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뭐야? 카케오치가 얼굴을 들이댔다. 동전 발행연도. 적어두는 거야. 그 사람한테 줬거든. 다시 태어났을 때 증표로 간직하라고. 헤에.. 펜을 살짝 멈추고, 사쿠라는 중얼거렸다. 다시 태어나면 친구가 되기로 했어. 나이차이 꽤 나지 않아? ..동생도 괜찮겠지. 우리 사이의 자식으로 태어나거나하면 어떡하지? ...싫어? 사쿠라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카케오치는 멀뚱히보다가 씨익 웃었다. 아니, 엄마를 노리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어. 바보. 사쿠라가 작게 웃었다. 유우지의 시체와 범인을 모두 찾은 것은 채 1주일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빌려달라고 왔다가 거절당하고 욱하는 성격에 동생을 찌르고만 형은 엉엉 울면서 범행을 자백했다.
카케우치 코우미(카케오치)
집안의 막내 아들. 어릴 때부터 손쓸새도 없는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 맞은편 집의 감나무에 비밀기지를 만든다고 설치다가 떨어졌다든가, 공사를 위해 열어놓은 맨홀에 뛰어들었다던가. 성격은 자라면서도 변하지 않아 결국 괴짜딱지가 붙어버렸다. 분필지우개를 설치하거나 학교 행사에 여장을 하고 나오거나등등등. 성적은 학교 밑바닥에서 기고 있지만 학교의 마스코트적인 존재. 사쿠라와 사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어쩐지 믿어주지 않는다. 메구와는 사귀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과는 앙숙. 일방적으로, 엄청나게, 미친듯이 싫어한다.
야마오카 사쿠라
집안의 외동딸. 어릴 때 신열을 앓아 할머니 집에서 요양했었다. 할머니도 '보이는' 체질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듯. 아버지와 어머니는 좋은 분이지만 그런 것들을 불신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연구원) 집에서는 사쿠라의 체질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린시절의 경험때문에 다소 애늙은이 같은데가 있다. 사립고에서 공립으로 온 이유는 교내 문제때문에. 본인이 당한 것은 아니고 반의 한 아이가 이지메를 당했는데 그 연유를 전부 알고 있던 그녀는 죄책감에 전학갔다. 메구는 사쿠라를 무서워한다. 신은 과거 평범한 친구였으나 현재는 신이 찝적대고 있는.. 걸로 주변에는 알려져있다.
신카와 메구미(메구)
카케오치의 베스트프렌드. 신과 사귀고 있었으나 차였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날라리같이 생겼지만 알맹이는 순진한 숙맥. 사쿠라의 체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무뚝뚝한 그녀를 무서워한다. 신을 지금도 좋아한다.
미노하라 신
사쿠라와 견주는 학교의 재원이었으나 어느 날 기점으로 자퇴하고 머리를 물들인 채 비행청소년데뷔. 메구와 사귀던 때는 모범생이었다. 자기 안에 쌓이는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서 메구와 만났었지만 메구가 그다지 날라리가 아니라는 것을 모종의 사건을 통해 알고서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메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듯. 아직 그녀와 사귈 마음은 없다. 사쿠라의 체질을 알고 있지만 흥미도 없다. 괴짜같은 성격은 카케오치와 닮았으나 사이는 앙숙.
카케오치 코우미
야마오카 사쿠라
미노하라 신
신카와 메구미
오랜만에 길고 이야기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내용은 1부, 2부로 나눠서 꿨지만 2부는 쓰기 힘들어서 1부만. 일어나면서 애들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메구, 사쿠라, 카케오치를 외치며 일어난 게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