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것은 내가 열 여덟살이 되는 2003년의 수학여행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정해진 코스대로 산길을 오르면서 내 또래의 소녀들은 투덜거리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오르는 길 한 켠에서 나는 다른 학교에서 왔음직한 사람들이 두 줄로 줄을 서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그 곳은 수학여행의 메카였고 많은 학교에서 몰려오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위화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과 스치는 순간에 나는 내 위화감을 깨달았다. 그들의 옷은 아주 이상했다. 그 당시 시점으로 보면 더더욱. 눈에 띌만한 이상한 옷은 아니었다. 윗옷이 길고, 청바지가 딱 달라붙는 정도의 의상이었다. 하지만 여자아이에게 그 것이 얼마나 민감하게 눈에 들어오는 괴리감일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게다가 그들은 전원이 그런 스타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여겼던 기분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되었다. 나는 나의 무리에서 살짝 빠져나와 그들 사이에 섞였다. 친했던 친구 한 명도 나를 따라왔다. 그들은 섞여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걸음을 옳겼다. 그들의 이동은 정해진 산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보고갔으면 좋을텐데.' '시간이 얼마 없잖아. 텔.. 차 시간까지 얼마 안남았어.' 차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이 산길에서 탈 수 있는 차량은 아무 것도 없을텐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옳겨 인적 드문 산길에 멈추어섰다. 나와 내 친구가 발견된 것은 그 때였다. 인솔자로 보이는 선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곤란해하는 표정이었다. 너희들 따라오겠니? 아니, 따라와라. 원래대로라면 선택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시간이 없거든. 귀찮다는 듯 말한 그녀는 우리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서 있는 줄 속에 우리를 포함시켰다. 이동은 아주 짧았고, 순식간에 일어났다. 2010년의 거리에 우리들은 서 있었다. 그 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설명은 간단했으나 나는 훨씬 더 많은 부가 설명을 요구해야했다. 인류는 발전을 이루었고 그 발전 속에는 시공간 이동이 포함되어있었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지구가 망가지는 것을 대비해 그들은 과거 시점의 한 행성을 차근차근 발전시켜왔다. 과거의 지구에는 인류가 살고 있었으니 그 곳으로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그들은 이 행성으로 이주했다. 지구와 그다지 멀지 않은 행성에 초미래문명이 탄생한 셈이다.

그래도 우리들의 원류는 지구에 있고, 외견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러니까 다들 그 곳으로 여행을 가지. 가끔 너희같은 애들이 섞여들어오거나 발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과학이라는 게 참 편리하거든. 부분 기억을 지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원래는 그 자리에서 지우던가 여기서 평생 살던가 선택하게 해야되는데, 시간이 없었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녀는 조금 곤란해하더니 원한다면 그 때의 지구로 되돌려보내주겠다고 했다. 견학 기간이 주어졌고 그 동안 나는 미래 인류에 어울려 살게 되었다. 그녀는 꼼꼼하게 차트에 적는 시늉을 하더니 문득 생각난듯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하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옷이.. 너무 달라서. 더듬거리며 말하자 그녀는 아하, 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오래 살게 되면 둔해지나봐. 지구의 옷을 입으면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뭐야.

첫 수업은 정말로 평범했다. 중세시대 수도복을 입은 것같은 아이들과 하얗고 긴 순례자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섞여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느 쪽 옷도 아닌 옷을 입고 있던 내게 호기심의 시선이 몰렸지만 그들은 딱히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까불거렸고 수업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보고왔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저마다 다녀온 수학여행의 이야기를 했다. 지구를 다녀온 애들도 있었고 외각 행성을 다녀온 애들도 있었고 행성 내를 탐험한 아이도 있었고 여행의 이야기는 다채로웠다. 나는 주저주저하다가 내가 살다온 곳의 이야기를 했고 적절하게 호응을 얻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 갈색 수도복 차림의 아이들은 일제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나갔고,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은 등에서 날개를 꺼냈다. 내가 너무 놀라 굳어있는 것을 본 한 명이 빙긋 웃으며 이야기해주었다. 이 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수도자와 천사. 크게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수도자는 실질적인 일에 종사하고 천사는 정신적인 일에 종사해. 천사로 태어난 인종들은 도시적인 소음이나 파괴같은 것에 아주 약하거든. 반면에 수도자들은 정신적인 행위에 약하고. 사이가 안 좋아? 내가 질문했을 때 천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라 잘 모르겠어.
견학기간이 끝나고 내 친구는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남기로 했다. 가진게 별로 없었던 나는 떠나기도 쉬웠다. 친구에게 이별의 편지를 쥐어주었다. 원칙상 안되는 일이었지만 이곳의 규율은 왠지 모르게 느슨한 데가 있었다. 영원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들과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다. 이주자에게는 성별을 정하듯이 인종을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천사를 택했다. 바깥에서 도는 것보다 안에서 지내는 걸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때문이었다. 어째서 천사를 택했냐는 윗사람들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너털 웃었다.

쇼핑몰 플로어에 전시되어있는 옷을 사들인 후에야 옷의 단점이 눈에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내 경우가 그랬다. 견학기간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천사를 택한 이후에서야 그 사회가 조금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천사와 수도자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고 서로가 안중에도 없다고 동급생은 말했지만 실제로 봤을 때 그 것은 다분히 의도가 가득한 무시였다. 천사들이 생각하기에 그 것은 그냥 서로가 관심에 없을 뿐이었지만 수도자들이 보기에 그 것은 질투였고 시샘이었다. 나는 천사가 아니라 수도자인 아이들에게도 물어봤어야했다. 그나마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반목은 조용하고 평범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반목은 아이 때의 그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천사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을 몰랐다. 그들은 종족에서부터 순수했고 타인을 잘 믿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글을 창조할까, 자연의 나무 사이를 노니는 것은 얼마나 기쁜가. 그들은 누군가를 아낀다는 표현을 할 때 내 날개를 아끼듯이 너를 아낀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들은 정말 순수했다. 무구하고 무지한 순수함이었다.
수도자들은 현명하고 조용하며 다소 회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침묵을 좋아했기 때문에 쉽사이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개발하는 것과 자원의 소모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이야기했다. 화려한 먹을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묵묵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천사는 잇속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재대로 일하지도 않으면서 놀고 먹기만  한다, 멍청하다라는 식으로 천사를 싫어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 미움은 다분한 동경과 애정에서 비롯된 덧이었다. 사랑받는 막내를 미워하는 장남처럼. 한쪽이 한쪽을 미워하는 반목은 기묘하게 무너져내릴 듯이 균형을 잡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는 여행을 떠났다. 나는 거기서 나를 쫓아오는 어린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년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는 나의 뒤를 밟았다. 어린애를 상대하는 법은 더 쉬웠다. 나는 아이를 안아들고 놀아주다가 부모를 찾았다. 혼자하는 여행은 그 날의 수학여행처럼 정해진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기양양했던 내가 당혹감을 느낀 것은 잠시 후였다. 아무리 찾아도 아이의 부모가 나타자지 않았던 것이다.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들고 숙소에 온 나는 그날 저녁의 뉴스에서 왜 아이의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호텔에서 화재가 났고, 젊은 가족이 죽었다. 여자와 남자와 아들. 화면 속에 나온 아이의 사진은 내 옆자리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과 똑같았다. 망설이다가 아이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침일찍 눈을 뜬 아이는 부모를 내버려두고 정원으로 걸어나왔다. 아이가 정원을 걸어다니며 노는 동안 호텔 방안에서는 전기합선이 시작된다. 걷다가 지친아이는 문이 열려있는 관광버스를 보고 차 안에 올라타서 좌석에서 잠이든다. 관광온 사람들은 차내에 잠든 아이를 보고 다른 집의 애려니하고 생각한다. 뒤늦게 온 한 여성이 옆자리에 타자 그 것은 확실이 되었다. 잠든 아이를 건드리지 않고 짐을 무릎위에 올려놓은 여자가 어머니겠거니하고 차는 출발한다. 그 시각에 아이의 부모는 일산화탄소에 질식해서 죽어가고 있었다. 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 불꽃은 크게 타올랐다..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는 나였다. 나는 저도모르게 머리를 감싸안았다. 나는 당혹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인 여자는 그 때 헤어졌던 나의 친구였다. 그녀는 나에 대한 기억을 다 잊었을 테지만 나는 그녀를 잊고 있지 않았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린 소녀였던 그 때처럼 친구를 향한 감정이 애틋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나의 친구였다.

별의 규율에 따르면 너무 어린아이는 데리고 올 수 없었다. 아이들은 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별의 규율이 느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강보에 싸고 나는 내가 타야할 차로 향했다.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살짝살짝 날아가면서 나는 정거장에 도착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위장된 정거장에는 옛날식 기차가 서 있었다. 플랫폼에서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담당직원을 찾았다. 두건을 깊게 눌러쓴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규정상 안돼. 알고 있잖아? 당신만 모른척해주면 돼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이를 안고 그렇게 말했을 때 수도자는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학창시절 동급생이던 아이였다. 반가워하기도 전에 그녀는 독기 어린 눈으로 소리질렀다. 규율을 느슨하게 만든 건 너희들이야. 그 놈의 동정심으로 뭐든 불쌍하다 불쌍하다 하고 주워대니까.. 하지만 그 것도 이제는 끝이야! 차내에 보이는 것 거의 대부분 수도자들이었고, 이따금 보이는 천사들은 불안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반란. 머리에 그 단어가 스치자마자 나는 날아올랐다. 나를 잡으려다 놓친 수도자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날아봐!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것같아..?!! 날개를 펼친 순간 기차의 소음이 몸을 찌를듯이 밀려왔다. 일단 날개를 끄집어내고 날기 시작하면 모든 소음은 참을 수없는 고통으로 변한다. 하늘 위에서 소음을 피해 추춤거리자 다른쪽 정거장에 빠른 속도로 기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양쪽에서 쏘여오는 소음을 피해 나는 앞으로 날아갔다. 발 밑의 수도자가 그따위 날개로 오래 날 수 있을 것같냐며, 인간에게 걸리면 끝장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별에서 가장 뛰어난 날개를 가진 천사였다. 소음에 휩싸여도 나는 아이를 안은 채 곧장 앞으로 날아갔다. 내려다보이는 고속도로 사이로 천사들이 전신주 사이에 괴로운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도자들의 재촉하에 그들은 조그맣게 자신의 식별번호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사 1. 천사2. 천사 3. 괴롭게 만들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행위였다.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나는 식별번호를 묻는 수도자에게 천사 4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그런 식별번호는 없다며 나를 향해 돌아섰을 때 나는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하늘 위를 날 때는 괴로움이 덜했지만 고가도로 사이를 가야할 때는 정말 괴로웠다. 천장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만큼 인간의 눈에 띄기도 쉬워 비행에 주의를 기울여야했다. 차량이 드문 다리 내부의 빈공간에도 카메라들이 설치되어있었다. 나는 어렵게어렵게 그 사이를 날았다. 날개도 지치고 품 안의 아이도 가늘게 울음소리를 냈었을 때 나는 기어이 땅에 내려섰다. 수도자들은 아직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날개를 접어넣었다. 몸의 일부였던 것을 집어넣으며 나는 웃고 있었다. 날개를 자랑으로 여기고 몸의 일부로 여기는 천사들은 비행 도중에 날개를 접어넣는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지상의 인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히치하이커를 했다. 어느 트럭 운전수가 나를 태워주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잠들었다.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품안의 아이만이 따뜻했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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