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맛있다는 듯이 술을 마시는 여자였다. 커티가 쓰다며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놀리고 입안에 한잔의 술을 시원하고 털어놓고는 했다. 아직 미성년자가 아니냐며 농에 가깝게 주의를 주면 그녀는 야단맞는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도 금방 혀끝으로 술잔을 핥고는 만족스러운 고양이같은 얼굴로 웃곤 했다.
좋아했다. 쿠죠 리사를.
지금도 좋아한다.
「그만 마셔, 쿠죠.」
「빌리..」
쿠죠의 손에서 병을 빼앗자 그녀는 괴로워보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차마 그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억지로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병을 한쪽으로 치우며 그녀가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의학적 지식을 주워섬겼다. 몸에 안좋아, 그만해.. 그 때와 똑같다. 듣고 있지 않은 그녀와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신. 문득 술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때도 자신은 그녀의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연락이 닿았을 때는 기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밝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쿠죠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었다. 솔레스탈 비잉의 등장으로 임무가 바빠지며 만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그녀는 또다시 연락을 끊었다. 2년만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에밀리오를 잃었을 때처럼 망가져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곁에서 지켜주고, 그리고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자.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다짐했던 것들이 또다시 흐려졌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군 사이 탁자에 쓰러지듯 기대어있던 그녀가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쿠죠, 더는 안된다니까.」
「마시게 내버려둬..」
씁쓸한 어조로 말하고 쿠죠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다시 기울였다. 잔에 채워진 액체를 다시금 마시려 들어올리는 그녀를 견딜 수가 없어져서 그 어깨를 붙들었다.
「..제발 그만해!!」
「..」
「쿠죠, 네가.. 네가 이러면..!」
네 죽은 연인도 슬퍼할 거야. 입 속에 맴도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녀는 흐려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꺼낸다면 그녀를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순간에 자신이 쿠죠의 상처를 건드릴 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면 쿠죠는 다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몇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손에서 힘이 빠졌다.
「..이러면 안되잖아. 술말고 식사도 재대로하고 다시..」
유해져버린 말투로 그렇게 주억거리며 그녀를 잡은 손을 놓았다. 또다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타이르듯 하는 말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자신은 그녀의 재활을 강하게 권유할 용기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 싫은 것을 강요하면 쿠죠는 또 사라질 것이다. 술을 빼앗아도 그럴지도 모른다.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낼 생각도 없다.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쿠죠가 사라지는 것을 훨씬 더 겁내고 있었다.
「..빌리」
「응? ..!」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를 채운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당황한 사이에 입술 위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벌린 입술 사이에서 아찔한 향이 타고 흘렀다. 입술을 맞대었을 뿐인 키스였는데도 그 찰나는 지독하게도 길었다. 영원같은 순간이 지나고 입술을 뗀 그녀는 젖은 눈으로 응시했다.
「..나같은 사람 뒷바라지 같은 거 하지 말고, 당신 갈 길을 가.」
가라앉은 듯한 음성에는 술기운은 조금도 없었다. 얼굴이 타는 듯이 뜨거웠다. 상황에 밀리듯이 엉겹결에 손을 들어, 망설이면서 그녀의 어깨에 둘렀다.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쿠죠」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외면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쿠죠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그녀의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 망설이면서 끌어안자 조금 슬퍼보이는 눈을 하고 쿠죠는 순순히 몸을 맡겨왔다. 지친 듯한 그녀가 가엾고 사랑스러웠다. 다시 한번 입술을 겹쳤을 때 그녀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의지처가 되고 싶었다.
아니, 될 수 없어도 좋았다. 쿠죠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 것뿐이었다.
fin.
29. バラの種 (장미의 씨앗) / Rose Letter
빌리는 스메라기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좋은 건지는 알고 있었지만 재대로 그 것들을 권하지는 못했을 것같습니다. 너무 강하게 밀어당기면 쿠죠가 떠날 것같으니까. 그녀가 일어서는 것보다는 그녀와 함께 있는 쪽을 우선시한 빌리. 그렇게 방치하고 외면하면서 그녀를 붙잡아둔 결과가 CB선언.
빌리, 좀만 더 잘하지 그랬냐..orz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