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바에서 만난 여자의 몸매는 끝내줬다. 굉장한 바스트에 굉장한 웨스트에 굉장한 힙.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해도 순수하게 괜찮은 여자다 싶어서 들떠 있었고 상대가 접근해 왔을 때도 간만헤하는 밀고 당기기가 즐거운 기분이 강했다. 키스를 해왔을 때는 확실히 좀 미안한가 하고 가벼운 자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야 싶어서 금방 잊어버렸다. 다행히 알량한 양심인지 뭔지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어울려주진 않았고, 밀고 당기기를 즐기던 그녀는 다음에 보자며 매혹적인 미소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 여자랑은 그걸로 끝. 하룻밤 즐기는 것도 뭣도 없이 기분 좋게 술잔을 마저 부딪치고 집에 들어왔다.
"일어나세요, 콜라사워씨."
"으.. 머리 아파.."
"어젯밤 너무 드신 것같더니.. 커피 타드릴 테니까 거실로 나오세요."
다음날 아침 숙취로 시달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을 때 상냥한 동거인은 변함없는 태도로 챙겨주었다. 비척비척 걸어나와 알렐루야가 타준 커피잔을 붙잡고 앉아있을 때는 이미 가벼운 자책감이고 뭐고 깨끗이 사라져있었다. 커피가 엄청 맛있고 웃고 있는 알렐루야가 좋은 것도 있어서 아픈 머리도 금방 개었다. 세탁물을 정리하던 알렐루야가 그 날 입고 있었던 셔츠를 따로 빼놓을 때까지만해도 기분은 마냥 좋았다. 왜 따로 빼놓냐고 생각없이 물어본 질문에 알렐루야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할 때까지는.
"립스틱은 따로 처리 안하면 잘 안지거든요."
..설마 그 여자가 남의 옷깃에다가 선물을 남기고 갈 줄은 몰랐지.
모처럼만에 맛있는 커피를 와장창창 쏟아버렸다.
"저기, 알렐루야. 진짜 그런 게 아니거든?"
"에? 뭐가요?"
"그..그, 그 자국 말이야."
"입술 자국이요?"
..화났다.
탁자 맞은 편에 알렐루야를 앉혀놓은지 약 12분. 더듬더듬 꺼낸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끌고 가면 좋을 지 몰라 콜라사워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렐루야는 그래요,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게 더 무섭다. 온화한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정도는 차라리 화를 내주는 편이 낫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을 억누르며 콜라사워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그게 말이야? 바에서 마시고 있는데 아가씨랑 부딪혀서 그런 거거든?"
"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
자기가 생각해도 구차한 변명이었다. 고개를 가볍게 저은 알렐루야는 커피를 닦느라 들고 있었던 행주를 식탁에 문지르며 예의 온순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상대분 많이 어지러우셨나보네요. 등쪽에도 두 세 개 있더라구요."
..선물은 하나가 아니었나보다, 젠장. 셔츠 얼룩 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신경 써야겠네요-하고 태평하게 중얼거리는 알렐루야를 앞에 두고 양심이 찔끔찔끔 세 배는 더 아파왔다. 항복이다! 콜라사워는 푹 엎드렸다.
"-미안! 미안! 내가 나빴어!"
"에? 부딪치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
"...미안해! 부딪힌 게 다가 아니야!"
"에..."
알렐루야의 얼굴에서 한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 한순간 놀란 얼굴을 하던 알렐루야는 이내 다시 웃어보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웃음이었다. 콜라사워는 당혹감마저 느끼며 고개를 푹푹 숙였다.
"미안, 진짜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괜찮아요. 그게 콜라사워씨한테도 좋은 일이잖아요."
"에?"
"저는 남자고, 강화인간이고.. 여자분과 잘 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아요."
"아,알렐루야-"
"저는 진짜 괜찮아요."
알렐루야는 상냥한 얼굴로 웃었다. 낭-패-다. 머리 속이 허옇게 굳어버리는 기분에 콜라사워는 한동안 벙쪄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얼룩도 없는 탁자를 문지르고 있는 알렐루야를 보다가 콜라사워는 허둥지둥 변명을 지속했다.
"정말 별 일 없었어. 진짜야, 알렐루야!"
"네. 이해할 수 있다니까요. 남자보다 여자가 좋은 건 당연한 일이고."
"아냐, 진짜 아냐!;;"
"괜찮아요."
"-그 여자랑은 키스한 게 다였다니까!"
거의 반 비명이 된 목소리에 알렐루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키스..요?"
"그래! 진짜 짧았어, 그게 다였어!"
탁자를 문지르던 손을 멈추고 알렐루야가 조심조심 물어왔다. 간신히 이해해줬나 싶어 콜라사워가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지금껏 어색하게 웃고 있었던 알렐루야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지더니 순식간이 투두둑 떨어졌다.
"어..어라? 어라라?"
"아,알렐루야?;;"
"아뇨.. 저.. 진짜 괜찮은데.. 왜 이러지.."
울.렸.다-!!
반 패닉이 된 콜라사워 앞에서 알렐루야는 당황하면서 눈가를 문질렀다. 그럼에도 눈물은 끊이지 않고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저기..저기, 잠깐 실례할게요!"
얼어버린 콜라사워 앞에서 눈물을 멈추려고 애쓰던 알렐루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입을 떡벌리고 있던 얼어있던 콜라사워는 죽고 싶은 자괴감 속에서 천천히 한 쪽으로 쓰러졌다.
끼익-
얼마나 지났을까, 차마 방문을 두드리지도 못하고 초조해하고 있던 콜라사워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살짝 고개를 숙인 알렐루야가 나오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달려간 콜라사워는 당장 알렐루야의 어깨를 붙들었다.
"알렐루야!!"
"..."
"진짜 미안해, 두 번다시 이럴 일 없을 거야! 약속해!"
"..."
"애초에 나는 너랑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
"알렐루야!"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지른 말에 알렐루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필사적인 태도로 알렐루야의 대답을 기다리던 콜라사워는 문득 이상한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헤에, 열변이시긴 한데 그거 나한테 해도 소용없거든?"
"..아,알렐루야?"
"그러니까 난 말했다고, 이런 하반신 가벼운 자식은 상대하지 말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알렐루야가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콜라사워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빈정대는 말투는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거칠었다. 어안이벙벙해진 콜라사워 앞에서 그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콜라사워의 손을 매정하게 쳐냈다.
"알렐루야는 지금 내 안에 틀어박혔다. 어쩔래 새끼야?"
위협적으로 쏘아보는 눈동자는 금빛으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처에서 수다떨다가 나온 콜라X알렐입니다. 알렐이는 상대가 바람펴도 웃으며 진짜로 보내줄 성격이죠OTL
올라운더 커플링 취향이라 죄송해요. 패러렐이라 죄송해요. 이 세상에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