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
아침 창가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록온은 눈을 떴다. 그리고 즉시 창문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좀 감동했다. 물감이라도 부어놓은 듯이 새파란 하늘에 그림같이 흩어져있는 하얀 뭉게구름. 눈부신 태양. 맑은 날의 하늘이 아름다운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거진 반 년만에 내려온 지상에서의 아침은 한층 특별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태양을 보면서 눈을 뜨고 달 비쳤을 때 자는 법이라지. 인공조명이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톨레미에서의 기상은 아무래도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럼 의미에서 지금 기상은 10점 만점에 16점짜리다. yo, 오늘 아침 태양은 10점만점에 16점, yeah.
"뭘 멍청히 앉아계십니까, 얼른 나오시죠."
..마이너스 8점.
반쯤 열린 방문 틈으로 날아든 목소리는 되도 않는 라임을 붙여가며 흐뭇해하던 록온의 뒷통수에 용서없이 쑤셔박혔다. 티에리아, 언어구사가 많이 늘었구나.. 고꾸라질뻔 하면서도 미스 스메라기가 들었으면 한심하게 쳐다볼 팔불출같은 생각을 하다가 무슨 일 있냐는 듯 의심쩍은 얼굴로 (아마 걱정도 좀 섞여있었을 것이다) 쳐다보는 문 사이의 티에리아와 눈이 마주쳐서, 록온은 금방 간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티에리아-"
"무슨 일입니까."
"아침 누가 차린 거야?"
"접니다만."
"오, 왠일로?"
"제비뽑기에서 졌습니다."
'제비뽑기'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티에리아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닫혀있던 냉동창고문을 열어제낀 것같은 냉기가 쏟아져나오는 험악한 목소리에 록온은 애써 현장을 무마하려 어설프게 웃었다. 뭐든 재대로 해내는 게 마이스터의 기본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저 녀석이 아마도 능력밖이었을 아침식사 상차림을 떠맡고서 언짢아했을 기분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먹는게 좋겠지만. 옛날 상자를 열어제낀 아가씨가 지니고 있던 품성은 23세기의 아일랜드 청년에게도 다를바 없이 유전되었다. 5초후에 록온은 손을 들었다.
"근데 이거 뭐야?"
24살 청년의 목소리가 허용하는 최대 한도의 애교있는 목소리는 불행히도 개도 안먹는다고 소리지를 법한 톤이 되어버렸다. 그럼 좀 어떠냐, 신경 안건드리는 게 최우선인데. 다행히도 대범하게 넘긴 티에리아는 록온이 서툴게 쥔 젓가락-어젯밤 포크 대신 마이스터중에는 누구도 안 쓸 저 식사도구를 비품에 끼워넣은 것이 스메라기일지 왕류밍일지 알렐루야와 록온은 열띤 토론을 했었고 세츠나와 티에리아는 묵묵히 사용법을 익혔다-끝으로 가르킨 접시를 한번 쏘아보았다.
"조기구이입니다."
"조기구이?"
"아침상에는 쌀밥, 달걀말이, 생선구이, 김치, 된장찌개라더군요."
"..누가 그래?"
"베다의 정보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는 티에리아의 말투를 들으며 록온은 어제 젓가락에 관한 정보를 찾을 때 데이터베이스의 검색범위를 특정 국가에 한정지어놓은 것을 뼛속 깊이 후회했다. 익숙하지 않는 식사도구에 처음보는 반찬까지야, 뭐 그렇다고 치겠지만. 런던살적부터 영국요리로 단련된 혀에 뭔들 맛없겠냐만. 15초쯤 더 망설이다가 록온은 가까스로 물었다.
"..그래서, 조기구이라는 건 어떻게 만든 건데?"
"소금절인 생선을 기름을 둘러 불에 굽습니다."
"..근데 이렇게 돼?"
약간 애절해진 록온의 목소리에 티에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떨떠름한 침묵 후에, 티에리아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저는 생물의 형태가 남아있는 음식이 싫습니다."
"...어?"
"그래서 갈았습니다."
...........아.
여전히 이 이상 명확할 수 없다는 듯 당당한 티에리아의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미소년이 손가락 끝으로 집어든 생선을 그대로 믹서기에 투하하는 환영이 겹쳐졌다. 뭔가 문제가 있냐는 듯한 티에리아의 얼굴과 곤죽이 되어있는 접시 위의 생선반죽을 번갈아 보다가, 록온은 기어이 고개를 떨구었다.
"..잘 먹겠습니다.."
어색하게 말하며 손을 모은 후에, 록온은 젓가락을 들었다. 우수수 부서지는 생선반죽을 힙겹게 끌어모으며 그는 내일부터는 침대에서의 느긋한 기상이고 자시고 일찍 일어나 제비뽑기에 무력개입할 필요성을 곱씹었다.
그리고 약 10분 후에, 좀 늦게 나타난 세츠나와 알렐루야가 반찬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고 곧장, 그리고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며 록온은 번뇌의 방향을 무력개입의 필요성에서 세상의 허무함과 배신감으로 전환했다.
마이스터즈의 훈훈한 한 때라고 쓰고 록온엄마 이야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