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오 QV-100, 30만화소. 촬영일은 적어도 8년 전.

뭐부터 말해야할지.
맨날 저렇게 발을 뽈록 내밀고 있었습니다. 손도 작고 귀여웠고 발도 아득하게 예뻤어요.
바닥에 내려놓아도 절대 빠르게 안뛰고 '뭐해요?ㅇㅅㅇ'하는 것같은 얼굴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 이전에 손바닥 위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고 자는 애였어요. 귀위에 올려도 가만 있었고. 밥은 아무거나 잘 먹었고, 목걸이같은 금속을 싫어했고, 몸이 보들보들하고 죽죽 늘어나고 살이 뒤룩뒤룩쪘었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처음은 발로 중지와 약지를 꾸욱 잡았었는데 나중에는 전혀 힘주지 않았어요. '여기 안전하잖아요, 뭘 새삼스럽게'하는 것처럼. 살살 흔들어도 잠깐 힘주다가 말고.

밥은 진짜 아무거나 잘먹었고, 우리안에 있든 밖에 있든 손을 내밀면 쪼르르 타고 올라왔어요. 뭔가 주거나 쓰다듬어주거나 하는 걸 아는 것처럼. 한번은 참기름 종지에 빠져서 기름에 빠진 생쥐가 됐다니까요. 맛있었냐 요녀석아. 기름기때문에 몸이 안 말라서 결국 비누로 씻어야했습니다. 터프한 바보같으니. 피부병에도 한번 걸렸었지만 금방 나았고, 진짜 생명력도 강하고, 진짜 바보고, 영리하고, 귀엽고, 아무거나 잘 먹고, 예쁘고, 예뻐서. 응. 정말로 좋아했습니다.

카시오 QV100. 96년 모델이었나요? 지금은 핸드폰도 200만화소가 기본인 시대에 고작 30만화소짜리 디카였습니다. 게다가 일본 직수입품이고 사진파일 포멧도 현재는 지원하지 않고, 110v 충전어댑터라 그냥 꽂으면 폭발하는 디카. 그 디카로 이 얘를 찍었습니다. 22장, 함께 보낸 2년중에서 남아있는 사진은 그것뿐입니다. 뭐라해도 초등학생이었는걸요.

그 디카를 7년만에 찾았습니다. 건전지를 넣어보니 쌩쌩하게 작동했습니다.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가 몇번 울었습니다.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 애의 사진은 살아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3000mv 건전지도 15분만에 절단나는 이 전기흡수 디카에 110v짜리 충전기를 얼리어댑터 연결해서 붙이고, 컴퓨터와 연결하고, 디스켓이 되는 안방 컴에서 usb드라이버를 복사해서 노트북에 깔고, 사진을 불러들이고, pc에 보존시키고, cam 압축파일이라는-현재는 쓰이지 않습니다- 형태가 되어버려 일본에서 변환 프로그램을 찾아보다가, 그냥 어려워서 전체화면 캡쳐후 포토샵에서 잘라내는 방법을 썼습니다. 화상은 cam/jpg 양쪽 모두 보존하고 백업하고 인터넷에 띄우고.

아아, 진짜. 하나도 안 예쁘게 나와서는. 더 부드럽고 매끈거리고 귀엽고 따뜻한 애인데.
울다가 웃다가 정신없었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로요.
Posted by 네츠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