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 세달만에-정말로 세 달만에- 시청역을 다시 다녀왔습니다. 비 내리는 거기는 '우리 소원은 통일'이 연주곡으로 흐르고 서울광장인지 시청광장인지에는 하얀천막이 다소곳하게도 서 있더랍니다. 넓게 펼쳐진 시야에 한번 울컥했고, 제복을 차려입고 우비를 두른 채 몇 명씩 서 있는 경찰을 보고 한번 더 울컥했습니다. 비 탓인지 그리 길지 않은 줄을 섰습니다. 방명록에 뭐라 남겨야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이름 석자만 적고 하얀 꽃을 받았습니다. 제 바로 앞차례에 취재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양복 빼입고 서 있는 분들을 향해 카메라가 돌아가고 플래시가 터지더군요. 취재진이 그 사람들을 따라 우르르 나가는 걸 보며 제가 최초로 꽤 좋은 사람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대통령의 영정 앞에 서서 하얀 꽃을 바치고 왔습니다. 방송에서 울려퍼지는 말을 들으며 어쩌면 절을 할 수도 있었는데, 묵념하고 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상주분들과 한분한분 악수를 하고, 돌아 나와 북한교류를 위한 성명을 하고, 시민 애도 광고를 낸다는 서명첩에 돈을 기부하고-제게 적은 돈은 아니었습니다만- 풀 받 위의 하얀 천만을 보다가 대안문쪽으로 돌아서왔습니다. 박살난 영정은 없었습니다. 당연하지만.
2. 아마 그 때 이렇게만, 아니 이렇게까지도 아니라.
3. 헌화할 수 있는 공간과, 대통령을 향한 예의, 최소한 완전무장하고 서 있는 전경과 비좁은 전경버스로 틀어막힌 대안문만 아니었더라도. 오늘 그 장소는 덜 쓸쓸했을까요.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그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4. 시청 앞 광장을 처음 찾은 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여름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시청을 찾았을 때 그 곳은 꽉도 막혀있었지요. 오늘 본 시청 앞 광장은, 그 분을 위한 장소는, 그냥 왠지 모르게 쓸쓸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천막과 사람들과 넓은 공간과, 대안문 앞이 바로보이는 그 자리에서, 꽃에 둘러싸인 영정 속의 그 분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5. 3개월 전의 그 일만 없었어도, 지금의 광장에 그 분의 사진이 걸릴 일은 없었겠지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더랍니다. 박살나 부서진 영정과, 가로수 나무를 따라 달렸던 노란 리본과, 그 상황을 만든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절을 했던 그 순간과, 헌화한 꽃을 다시받아 또 헌화했던 그 때. 그 모든 일이 없는 것이었다면, 그랬었다면.
그랬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