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밤이군요, 플라티나님."
하릴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 플라티나의 곁으로 웃는 목소리의 음영이 다가왔다. 달빛을 받은 녹색의 머리칼이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을 보며, 플라티나가 그 이름을 불렀다.
"..제이드인가."
"그렇습니다만, 방해였습니까?"
"아니.. 그냥 깨어있었다."
"그렇군요."
별다른 무리 없이 긍정한 제이드는 플라티나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잠시 고요가 흘렀다.
"..제이드."
"무슨 일이십니까, 플라티나님?"
".... .... ... 손을."
플라티나의 부름에 의아해하면서도 제이드는 손을 건넸다. 플라티나는 그 손을 잡았다.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는 것처럼 힘껏 움켜쥔 모습에, 제이드는 얼핏 당황하는 것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플라티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제이드. 너는 나를 믿고 있나?"
"글쎄요-"
어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말하려던 제이드는 이내 말을 멈추고 말았다. 은백색 달빛 아래서 처연할 정도로 빛나고 있는 플라티나의 모습은 진지했다. 장난으로 넘길만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제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그리고 제이드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고 있습니다, 분명."
"..그런가."
"당신은 이 나락의 왕이 될 겁니다."
시야를 맞추지 않고, 잡혀진 손에 힘을 넣지도 않고 달을 응시하며 말하는 그 옆모습을, 플라티나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얼굴에 살짝 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플라티나는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끌어당기듯 제이드에게 다가섰다.
"프,플라티나님?"
그리고 제이드가 당황하는 사이, 순식간에 가까워진 플라티나의 얼굴이 다가왔다. 감은 속눈썹을 보며 제이드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제이드가 자신의 입술에 가벼운 감촉을 남긴 그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플라티나는 제이드에게 안겨들었다. 의외의 행동에 제이드는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었다. 상대가 놀라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품에 기대듯 안겨 옷자락을 움켜쥔 플라티나가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게 이 목숨을 맡기고 싶다."
"....?"
"...네가 어떤 존재라도, 내게는 소중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네게."
"..플라...티나님...?"
"...이 목숨을 맡기고 싶다."
옷자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제이드의 심장의 고동.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는 그 심장소리를 들으며, 플라티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굳은 것처럼 꼼짝 안하고 있던 제이드는, 천천히 손을 올려 어린 왕자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었다. 무척이나 어색하고 경직된 듯한 동작이었다. 적어도 그 동작에만은 계산된 행동이 들어가있지 않았다. 플라티나는 다소 안도하고있는 자신을 느꼈다.
...나는 네게 이 목숨을 맡기고 싶다.
........설령 네가 나를 배신한다해도.
네 손에 죽게 된다면, 그걸로 좋아.
fin.
050328
읽는 것도 두렵지만 여전히 왕자님들은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