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중에 문득 눈을 떠보니, 가슴 위에 하얀 손이 얹어져 있었다. 비명이라도 지를 것같은 기분을 억지로 삼키고 손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어디선가, 귀신과의 기싸움에서 지면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던 건아니다. ..아니라니까.
가슴 위의 하얀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白い手(새하얀 손)>
이럴 줄 알았으면 갑옷을 벗고 자는 게 아니었는데. 저 손이 움직여서 심장을 꿰뚫으면 어떡하지.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반쯤 두려움에 차서 어둠 속에서 새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기싸움에 지면 끌려갈 것같아서. 어둠이 눈에 익으니 손의 형태가 더 잘 보였다. 여자의 것 마냥 새하얗지만, 어딘가 단단한 손. 손톱은 짧지만 다듬어져 있었다. 남자 귀신의 손일까 여자 귀신의 손일까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을 참으며 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매끈한 팔에, 새하얀 손에, 그리고 손목 조금 위 쪽에 나 있는 초승달같은 손톱무늬의 상처. ....상처?
"?!"
반코츠는 그제서야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가슴 위에 올려져 있던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때서야, 새하얀 손에 집중했던 시야가 넓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새하얀 손, 매끈한 피부의 팔 , 그 팔 너머의 어깨, 그리고 어깨까지 밀려올라가 있는, 얼마 전 자신을 조르고 졸라서 산 난초무늬의 자색 기모노, 그리고 감람색의 오비. ....마지막으로 태평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자고 있는 얼굴.
"..쟈...쟈코츠으으...."
분명, 잠을 청했을 적만해도 옆방으로 들어가 자고 있던 녀석이 왜 여기있는 거냐, 쟈코츠!!!
밤 중 자신의 심장을 떨어지게 만든 주제에 편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자고 있는 동생을 보며, 반코츠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삼켰다. 네 놈 때문에 놀랐다고 야단을 쳐봤자, 이 녀석은 헤헤 웃고 끝날 것이다.
속으로 이를 박박 갈면서도, 태평하게 잠든 동생에게 뭐라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반코츠는 다시금 배개에 머리를 대었다.
"우응..."
어이, 쟈코츠, 왜 자연스럽게 달라붙는 거냐, 네 녀석.
머리를 배개에 대자마자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다시 팔을 감아오는 쟈코츠의 행태에 반코츠는 어이없음을 금치 못했다. 분명, 이 녀석은 지금 옆에 누워있는 게 형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껴안고 잘 수 있는 따끈따끈한 것’이라고 보고 있을 거다, 아, 진짜 때려줄 수도 없고.
참자, 참자. 바싹 달라붙어서 옆구리를 파고들어오는 녀석을 깨워 한 대 치기라도 했다간 분명 쟈코츠도를 휘두르던가 깽알깽알 칭얼거리던가 이 절이 떠나가라 울든가 삐져서 말도 안하던가, 넷 중 하나다.
쟈코츠도를 휘두르면 까짓 거 반류로 막아내고 알밤 한대 먹여주면 끝이지만 칭얼대는 걸 달래려면 귀찮고 울면 수가 없고 삐지면 틀림없이 비단집을 찾아서 새 옷을 사주던가 방물 장수에게서 손거울같은 걸 사주기 전까지는 틱틱 댈 녀석이다.
그리고 쟈코츠도를 휘두르건 칭얼대건 울어대건 간에 최후에는 반드시 삐짐행이다, 하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전후 상황이 뻔할 미래 예상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대며 달래고, 반코츠는 좋은 꿈이라도 꾸는 지 입꼬리를 올리고 파고들고 있는 동생을 내버려두었다.
"..내일 깨어나면 보자, 쟈코츠."
꿀밤은 각오해라,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령 잠결이었다해도 밤중에 이 반코츠님이 자고 있는 방으로 기어들어온 죄는 크다. 물론, 자신을 놀라게 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지, 아니고 말고.
‘뭐, 남자 손인지 여자 손인지 몰랐던 건 당연한 셈인가. 이 녀석의 손이었으니.’
"으응.."
"그래, 그래. 자라, 자."
기왕 버린 몸이라는 심정으로, 허리께를 껴안고 얼굴을 부비대는 쟈코츠의 머리에 팔 배개를 해주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었다. 엄마 품 찾은 아기 마냥 헤헤거리는 쟈코츠의 잠꼬대가 어이없으면서도 그다지 싫은 기분이 들지 않아, 반코츠는 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ㅡ그리고 다음 날, 벼르고 벼르며 일어났음에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주기는커녕 자신이 왜 형의 옆에서 자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눈꼽만큼도 품지 않고 어젯밤에 잠결에 걸어다니가다 잃어버린 매화꽃무늬의 비녀를 찾으며 울고불고하는 쟈코츠를 달래기 위해 (불쌍하게도) 새 머리장식를 사주기 위해서 눈물을 삼키며 방물장수를 찾아가야한다는 것을. 지금 내일을 기약하며 잠드는 반코츠는 모른다.
fin.
050207.
이거 힘들어.. 견디기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