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을 때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잠든 사이에 보았던 영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섞여드는 와중에 옆을 바라보자, 늘 살갑게 웃어대던 남자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를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바깥의 우주가 비쳐보이는 브릿지에서 그는 홀로 서 있었다. 목소리를 내어 부를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그가 돌아보았다.
"어, 세츠나. 왜 나왔어?"
그의 목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이 자신은 그를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놀란 듯이 이쪽을 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에는 그다운 빛깔이 배어있었다. 상냥함과 다정함, 그런 것들이. 문득 견딜 수가 없어졌다.
"세츠나?"
"..."
정신이 들었을 때는 그의 옷자락에 거의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어린애처럼 보일 것이라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그런데도 손은 멋대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이 곳에, 여기에 있는 그를.
록온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가와 다짜고짜 매달리더니, 이제는 손을 떼려고 애쓰고 있는 열 네 살의 어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나이에 비해 한참 작은 체격에도 언제나 어른스러워 쉽사리 어린애취급 할 수 없었던 그가 왠지 모르게 무척 작아보였다. 이런 말을 하면 실례겠지만. 록온은 속으로 쓰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그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 닿는 것만으로도 질색하던 어린아이는 의외로 얌전히 있었다. 토닥,토닥. 두드리듯이 해서 달래주자 옷자락에 달라붙어 있던 작은 손이 그제서야 스르르 힘을 뺐다. 포옹이라기에는 너무 멀고 떨어져있다기에는 너무 가까운 어정쩡한 거리에서, 세츠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가 없었다."
"..?"
"없었어."
이해하지 못하는 록온에게 세츠나는 다만 그렇게 말했다. 당황하면서도 록온은 웃었다.
"뭐야, 옆자리 비웠다고 불안해 진 거야? 세츠나답지 않게."
"..아냐."
소년은 드물게도 평소처럼 편하게 넘기려는 록온의 말을 부정했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이 마주쳤다.
"..꿈 속이었다."
낮게 가라앉아있는 소년의 목소리는 그 것으로 끝이었다.
꿈 속에서, 네가 없었다.
소년의 말을 반추해보다가 나온 결론에 록온은 문득 세츠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가라앉아있는 진갈색의 눈동자가 록온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좀더. 그 시야 밑에 가려진 것을 읽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꿈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소년의 얼굴 위로 과거의 기억들이 옅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거의 충동적으로 록온은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래도록 해보지 않았던 동작은 이상하게도 서툴렀다. 입을 다문 소년은 조용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조심스럽게, 그야말로 유리세공을 다루듯이 소년을 품에 안았다.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온 세츠나는 그 품 속에 고개를 묻었다. 아이의 까만 고수머리에 얼굴을 묻고, 록온은 나직나직하게 속삭였다.
"괜찮아. 어디에도 안 가. ..아무 일도 없어."
부드러운 목소리는 평온하게 소년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 말을 얼마나 믿어주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품에 안긴 아이의 몸은 정말로 작고 여렸다. 의지하듯 몸을 기댄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부러진 늑골이 욱신거리며 쑤셔오던 감각도 이미 사라져있었다. 펼쳐진 우주는 기묘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자주 내려다보던 그 풍경이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 곳에 오점처럼 박혀있는 붉은 기체만을 쫓고 있었다. 라일. 에이미. 어머니. 아버지. 머릿 속을 떠다니는 말들이 어지럽게 술렁였다.
‘세츠나.’
문득 그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적갈색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 날의 새벽을 떠올렸다. 아이는 자신에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았던 아이. 어린아이로서 보내야할 시간을 무엇하나 지니지 못하고 있었던 소년. 약속했었다.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웃고있음을 알았다. 그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콘트롤러를 붙잡았다. 온 몸이 쑤셔왔다.
미안, 미안해. 세츠나.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망설임은 없었다.
fin.
13. ずっと昔についた嘘 (먼 옛날에 했던 거짓말)
Cocco 30제중 처음으로 썼던 겁니다. 작년 11월.21. 백일몽과 세트일지도..아니 전혀 상관없어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