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해보면 나는 썩 그리 할머니를 좋아하는 손녀는 아니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피가 닿아있는 혈연이고 명절 때가 되면 가서 얼굴을 뵈어야하는 분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할머니 이상으로 이해할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할머니에게 있어도 나는 둘째 아들이 낳은 막내딸, 손녀, 그 위치에서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를 벗어나 서로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그랬다는 이야기다.

2. 늙은 손. 마른 체구. 할머니는 예식을 퍽이나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제사 때마다 할머니는 매번매번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달필로 조상의 이름을 적어내렸다. 제사음식을 차리느라 고생하는 어머니나 큰어머니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던 어린 손녀는 그 곁에 앉아 구경하는 것만 마냥 즐거웠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를 보고 가늘게 웃으면서 자신이 죽으면 이 것을 누가 쓰겠냐고 농조로 말하셨다. 내가 쓴다고 하면 또 조심스레 웃었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붓펜을 들은 채로.

3. 할머니는 며느리의 어머니로 달가운 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엄마는 분가해서 나왔고 내 어머니는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자식과 함께 살기 위해 지었다는 이층집에는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계셨다. 예식을 중요시하는 할머니는 두어달에 한번 제사를 지냈고 나는 그 때마다 할머니를 보았다. 나에게는 친가에 가서 병풍앞에 차려진 음식에 절을 하고, 고개를 들고, 그 것이 전부인 제사였지만. 며느리들에게는 어땠을까. 음식값, 시간, 노력, 고생. 할머니를 못 견디고 나와버린 큰어머니와 비교해 어머니는 잘 참았고, 도리를 다하는 편이었다. 그랬다고 생각한다.

4. 종갓집도 아니면서 병풍과 제사상을 두어달 마다 한번씩 끄집어낸 이유는 할머니의 종교 때문이었다. 원불교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할머니는 열과 성을 다해 그 종교를 믿었다. 새해가 밝으면 할머니는 누구보다 먼저 집을 나서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제단 앞에 절을 하고 오곤 했다. 그 절은 이백배일때도 있고 8백배일 때도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종교 내에서 낮은 위치는 아니었다는 할머니는 그렇게 열과 성의를 다한 신자였다.

5. 나는 천주교를 믿었다. 아마 지금도 믿고 있다. 어릴 적부터 당연한 그 믿음은 몸에 스며든 것처럼 되어있어서 나는 아무리 해도 내 하느님을 부인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당이 싫다며 미사에 나가지 않게 된 것도 몇년인데 나는 여전히 성가를, 기도문을 외울 수 있었다. 한 때는 무교라며 고개도 저어봤지만 마음이 다급해졌을 때 저도 모르게 여전히 성호를 긋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순순히 내 종교에 순응했다.

6. 내가 그렇게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어머니 탓이었다. 어머니는 열 여덟살 때 처음 성당에 나간 이후부터 계속해서 그 종교를 믿어왔다. 기도문과 성지 방문, 묵주, 미사, 전례부, 구역장. 어머니는 20년도 넘게 종교를 믿었고 성당은 어머니의 일부같은 것이었다. 그 신앙과 믿음과 함께. 인간관계와 마음의 평화, 기도, 그런 것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종교를 열성으로,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싫든 좋든 천주교인 것처럼 어머니의 일상에는 성당이 자연스럽게 배어있었다. 당연히 나 이상으로 그러했을 것이다. 언제고 성당은 어머니를 배신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어머니의 지주였다.

7. 그리고 어머니의 20년이 성당과 함께한 것처럼, 아마 할머니의 삶에도 그렇게 할머니의 종교가 배어있었을 것이다. 천주교는 딱히 제사를 금지하지 않았고(금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애시당초 어머니는 율법을 그렇게 빡빡하게 지켜야한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냥 자유롭게 믿으셨다.) 어머니는 제사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종교를 알고 있었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종교를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의 종교에 말을 꺼내지 않았다. 늘 그랬다.

8. 할머니가 쓰러진 것은 부조리하게도 자신의 종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무리한 절이 할머니를 쓰러지게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웠고 의식을 되찾는 일 없이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떠났다. 그리고 의식불명의 그 기간동안,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세례를 주었다. 신을 믿는 자녀라고, 성인의 이름을 붙여주는 거다. 병자에게 병자성사를 하듯이, 설령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줄 수 있는 류의 세례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세례받는 것을 묵인했고 할머니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9.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있는대로 구겨진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어머니는 조금 화를 냈다. 어머니는 그 게 신자의 도리였다고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서 있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어머니에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뼛속 깊이, 살 전부에 어머니의 신앙이 배어있다. 그 것은 어머니를 충만하게 해주는 요소였다. 할머니는 반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이 믿는 충만한 신앙을 할머니에게 나눠주었다. 할머니의 세례명은 마리아였다.

10. 하지만 그건, 그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20년. 할머니의 20년. 혹은 그보다 더. 아마 할머니가 바른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눈을 감았다면 할머니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신의 자녀가 되는 걸 허락하지 않았겠지. 어머니에게는 틀린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있어 옳은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년, 혹은 그 이상의 시동안 믿어온 어머니의 신앙이, 종교가 어머니 자신에게 얼마나 정당한 건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신앙 또한 할머니에게 그랬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새벽기도. 기부금. 집안에 걸려있던 액자. 어머니의 20년이 옳았던 만큼 할머니의 20년도 무시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새로운 신의 이름을 주었다. 어머니의 신앙에 있어서는 그게 옳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할머니에게도 그게 옳았을까.

11. 나는 처음 할머니가 믿는 종교는 불교라고 생각했다. 천주교를 믿는 손녀딸을 탐탁치 않아 할 게 겁이나 어설프게 불교를 칭찬하는 동안에 할머니는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에 말했다. 천주교도 불교도 다 좋은 거지만 본토로 돌아가야한다고. 그 때 할머니가 믿는 신을 알았다. 유교와 단군신앙이 뒤섞인 것같은 그 것을 내가 믿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신앙은 할머니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소중한 것이었다. 

12.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반칙한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다른 어떤 종교를 믿게 되어도(아마 그럴리도 없겠지만) 엄마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절대 다른 종교로 개종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엄마를 옆에서 봐왔어요. 성당이 엄마에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소중한 건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여기를 떠난다면 엄마가 믿는- 내가 믿는 신의 천국에 가게 되기를 원해요. ..그것과 똑같은 거에요. 나는 엄마의 신앙만큼 할머니의 신앙을 아는 건 아니지만 그게 할머니에게 소중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옳은 신이건 옳지 않은 신이건 할머니는 긴긴 시간동안 그 신앙을 믿으면서, 할머니 안에서는 무엇보다 존귀하고 옳은 신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나는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가 믿는 신의 천국으로 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13. 죽은 후의 세계라는 건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천국을 믿지만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된다던가 하는 건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그냥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믿음대로 살다가 가는 게 가장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여전히, 엄마가 한 일은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이해할 수 있지만, 나쁜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걸 기꺼워할 수는 없었어요. 그저 그 것뿐이었어요.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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