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는 것이 얻기 위해서라면 헤어지는 것도 다시 만나기 위해서에요
안녕하고 헤어진 다음은 또 반가워요 하고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다소곳히 앉아서 옷을 개서 쌓아올리고 있었다. 조그만 옷은 아마도 아이들의 것이다. 문득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어딘지 모르게 안심했다. 그녀의 곁에 있는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상처입히는 여자가 아니니까.
「세츠나」
인기척에 눈치챈 듯 마리나가 돌아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온화한 빛깔이 퍼졌다. 머리색도 눈동자도 다르지만 아주 옛날에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 목소리는 그 사람과 꼭 닮아있다고 새삼 실감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의 뒤로 작은 오르간이 보였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노래를 들으러 왔어.」
「어서 와」
무심결에 입에서 새어나간 말에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앞에 두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마리나가 맞은 편에 앉았다. 아이들 옷이야, 하고 가볍게 덧붙이며 그녀는 한켠에 밀어두었던 옷가지들을 다시 무릎 위에 올렸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그에 맞추듯 부드러운 노래소리가 다시금 울려퍼졌다.
녹색의 잔디밭에서 잠들고 싶어요
동물들도 함께 새근새근 잠들었으면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는 무언가를 생각나게했다. 이대로 여기서 편안히 쉬어도 좋아.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같았다. 마리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와 같은 목소리였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잔뜩 있었으니까
내일도 좋은 일이 잔뜩 있을 수 있도록
햇님이 뜨고 저녁이 오면 별에 비는 내일이 올 거에요
'이제 돌아오렴, 소란'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노래소리 사이에서 말을 걸었다. 대답하지는 않았다.
눈을 떴다. 콕핏 안의 좁은 장소는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능좋은 건담의 시야는 바깥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접근해오는 기체를 확대해 보여주었다. 비슷한 외형의 MS들이 몇 기나 떠 있었다. 곧 다가올 그들을 바라보며 머리 속에서 분석했다. 외부 통신이 수월치 않은 지금 이들을 격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판단해야한다. 손에 잡혀오는 조종대의 감각은 익숙하고, 마주한 적들 또한 익숙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전투로 몸은 조금 지쳐있었다. 상처는 아직 아파왔다. 그래도 길게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츠나 F 세이에이. 미션을 수행한다.」
냉정하게 적 기를 판단하면서 입속으로는 익숙해진 단어를 내뱉었다. 잠깐 본 풍경 속에서 평화롭게 노래하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한번 눈꺼풀 뒤에서 반짝였다. 그래도 목소리에 망설임은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평화도 휴식도 아니었다.
어째서 가버리는 거야.
같이, 돌아가요.
아직도 들리는 음색을 뇌리 속에서 지웠다.
익숙한 손 놀림에 맞추어 녹색의 입자가 부드럽게 퍼지고, 기체는 위로 떠올랐다.
'이제 돌아오렴, 소란'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노래소리 사이에서 말을 걸었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fin.
22. 白昼夢 (백일몽) / Dream's a dream
세츠마리가 나오는 걸 쓰고 싶었을 뿐인데..? 어라라?
Posted by 네츠케